[청소] by 선장
주간 <시선> 이번 주제는 '청소'입니다.
색시야, 안녕?
주변에 보면 청소하는 걸 유독 즐기는 애들 있잖아. 이를테면 시트콤 ‘프렌즈’의 모니카처럼. 평소 과하게 깔끔해서 방바닥에 머리카락 한 개라도 발견하면, 대대적으로 집 전체에 청소기를 돌리고 물걸레질까지 마쳐야 직성이 풀리는 그런.
너도 알다시피 나는 그런 타입은 아니거든. 물론 청소하고 나면 다른 누구나처럼 상쾌하고 기분이 좋아지긴 하지. 하지만 깨끗함도 그때 잠깐 뿐인걸. 이후에도 계속해서 끊임없이 밀고 닦아야 이 쾌적함이 유지가 된다는 사실이 가끔 짜증 나지 않아? 어차피 내일도, 모레도 또 치워야 할 텐데, 하는 이런 게으른 생각도 들고. 다시 할 청소의 무용함이란.
다행히 집에서는 청소 스트레스가 크지 않은 편이야. 부모님이 이제 연세가 꽤 드셔서 새로 모신 이모님 두 분이 열 일하고 계시거든. 중국에서 오신 이모님은 가끔 덤벙 대시긴 해. 한국 이모님처럼 빠릿빠릿하지도 않고 종종 집안에서 길을 잃기도 하시는데, 그렇다고 우리 집이 뭐 100평짜리 저택은 아니잖아? 그러니 속 터질 때도 왕왕 있지. 그래도 맡은 바 최선을 다하시는 것 같고 무엇보다도 인건비가 매우 저렴해서 우리 가족은 꽤 만족하고 있어.
큰맘 먹고 마련한 로봇청소기를 우리 가족은 ‘이모님’이라 부르는데, 국내 로봇청소기 하나 값이면 중국산 샤오 땡 로봇청소기 이모님을 두 세분 더 모실 수 있거든.
해외 직구 특성상 A/S도 안되고 여러모로 단점도 많지만, 이상하게도 부모님은 물걸레 담당 한국 이모님보다 먼지 제거 담당 중국 이모님에게 애착이 더 가나 봐. 처음에는 구매를 반대했던 나도 자주 뵙다 보니 꽤 정감 가더라고. 실컷 일하신 뒤 방전된 이모님이 허겁지겁 충전 장소로 향하시는데, 결국 자리를 찾지 못 한 채 코 앞에서 뺑뺑 돌고 계신 모습도 꽤나 ‘인간적’ 이랄까.
이모님들이 오시기 전에는 청소할 거리가 꽤 많았지. 내가 스무 살이 되던 해에 엄마가 본격적으로 집안일을 할당해 주셨는데, 바닥 물걸레질은 온전히 내 몫이었어. 무릎 꿇고 쪼그려 앉아 거실 바닥을 닦고 있는 내 모습이 상상 안 된다며 믿지 않던 구썸남이 생각나네. 걸레질 덕에 무릎에 멍이 꽤 많았거든. 무릎 멍은 섹스 많이 하는 여자들이 주로 생긴 다나? 미친놈이었지, 걔도.
8년 전, 제주도 게스트하우스에서 스탭으로 일할 때는 그래도 나름 청소에 진심이었던 것 같아. 그게 내 주 업무였으니까 당연한 건가. 이불 빨래, 객실 정리, 화장실 청소 등등… 스탭 일 시작하기 전에는 그중에서도 화장실 변기 청소를 해야 된다는 게 제일 끔찍하고 역겨웠는데, 다행히 실눈 뜨고 청소하면 할만하더라.
하여튼 매일 오전 10시가 되면 손님들은 퇴실하고, 나는 그들이 묵었던 방을 청소하러 가. 매일 같은 시간에 같은 방을 가는데도 목격하게 되는 광경은 생각보다 천차만별이야.
사실 어차피 직원이 이불과 베개를 다 걷은 뒤 빨래를 돌려야 하니까 손님이 침대 정리를 하고 갈 필요는 없잖아. 그런데 굳이, 처음 세팅되었던 그대로의 모습으로 침대를 깔끔하게 정돈하고 가는 손님들이 간혹 있어. 그 외에 방 상태도 정말 처음 온 그대로의 모습으로 복구해 놓고 떠나는 사람들.
여행객들은 퇴실 전 시간이 꽤나 촉박한 걸 알잖아. 부랴부랴 자기 짐 챙기기도 바쁜 와중에 객실 청소까지 마치고 나가려는 그 무용한 노력은 어디에서 오는 마음일까. 후광효과 덕분에 그 사람에 대한 전체적인 인상마저 좋아져 버려.
물론 그 손님들 성격 자체가 애초에 워낙 깔끔쟁이라 단순 자기만족으로 그랬을 수도 있어. 그럼에도 분명한 건, 방 문을 열었을 때 정리되어 있는 모습을 보면 직원은 훨씬 기분이 좋다는 거야. 청소하는데 드는 수고에는 차이가 없는데도 괜히 배려받은 느낌이 들지.
처음 모습으로 어느 정도 원상복구가 되어있는 방을 볼 때면 내가 이곳을 청소하며 애썼던 마음과 노력들을 고맙게 여겨주는 기분이 들기까지 해. 드문 일인 만큼 매번 감동까지 했다니까. 그 후 나 역시 어딜 가든 최대한 처음 그대로의 객실 모습으로 만들어놓고 나가야겠다 다짐했지.
색시야. 사람의 마음도 청소해야 할 때가 있잖아. 요원할 것만 같던 이별이 찾아와 관계를 싹둑 끝내야 할 때. 여기저기 펼쳐져 있는 너저분한 감정과 추억들을 억지로 치워야 할 때.
그럴 때 그 엉망인 상태에 무심하지 않았던 사람들이 생각 나. 나의 혼란한 감정의 파편들까지 차곡차곡 같이 정리해준 뒤 떠나는 그런 깔끔쟁이들. 어차피 내가 알아서 다시 치워야 하는 마음 인걸 알면서도.
그런 사람들을 볼 때에도 비슷한 감정이 들어. 내 나름 청소해 놓은 공간에 그 사람이 머무는 동안, 나의 성의를 알아채 줬구나. 그리고 다시 공간이 처음 그 모습이 되기까지 내가 오롯이 쏟아야 할 앞으로의 노고에 대한 연민까지 느껴준 것 같다, 고하면 조금 과하게 생각하는 걸까?
그러니 연인 사이에서 끝맺음은 부질없는 수고라는 생각이 들더라도 조금은 과하게 배려해야하는 것 같아. 심리학에서도 Primacy recent effect 라고 있잖아? 아무리 첫인상이 좋아도 마무리가 형편없으면 그와 함께했던 만남 전체가 퇴색되고, 또 반대로 그리 행복하지 않던 연애였더라도 마무리가 더할나위없이 세심하면 언제고 추억할 때 마다 애틋해져. 치우는 데에 있어 우리 집 이모님들 만큼 도움이 되진 않겠지만, 그 ‘알아주는 마음’이 전부인 것 같이 느껴질 때가 있어. 덧없지만 따뜻하잖아.
그러니까, “어차피 이따 또 할 건데 왜 했냐”는 청소의, 그리고 그 행동의 무용함은 역설적이게도 무용하기에 그 의미가 있는 것 같기도 해. 나에 대한 감사함과 책임감을 보여주고 떠난 자리는 내가 홀로 청소하는 동안에도 덜 고된 기분이 들어.
그렇게 다시 청소를 시작할 수 있어.
괜히 좋아하는 노동요라도 틀어놓고.
대충 흥얼거리면서 밀대를 밀고.
곧 다시 깨끗해질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을 가지면서.
추천 영화 <데몰리션, 2015>
모든 완벽해 보이는 사람과 사물에도 뜻밖의 비밀과 아픔이 있다. 그리고 이 균열을 발견하기 위해서는 세심하고 부지런한 관심이 필요하다. 하지만 때때로 타이밍을 놓쳐 모든게 망가진 것만 같은, 좌절스러운 순간이 찾아오기도 한다. 이럴 때에는 우선 청소를 하자. 제이크 질렌할처럼 온갖 가구를 깨부수고 포크레인으로 집을 밀어버릴 순 없겠지만, 우선 내 마음을 모조리 분해해 보는 일부터 차근차근. 그리고 하나하나 맞춰보며 균열을 찾아내고는, 다시 시작하면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