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 by 색시
주간 <시선> 이번 주제는 '계절'입니다.
계절들을 서른한 번째 맞이하고 있다. 다행히 아직 권태롭지 않아, 사계절이라 그런 걸까 환절기라는 중요한 계절 두 꼭지가 없으면 질릴 수도 있을 것 같아. 올해 봄과 여름 역시 참 어렵사리 맞이하고 있다. 역병이 극으로 달해 이제는 보이지 않는 순번표를 뽑은 채 내 차례를 기다리던 시기를 지났음에도 좀처럼 바닥으로 꺼질 줄 모르는 확진자 그래프에 대한 권태감이 만연해. 와중에 하나둘 다시 열리는 페스티벌 속 관중들은 그 어느 때보다 상기되어 있지. 사람들은 제각기 톡 쏘는 무언가를 갈망하나 봐. 나는 어떨까, 짜릿함과 두근거림을 넘어선 두려움, 한 치 앞을 알 수 없던 불안 따위에 지쳐서 반대로 그만 쏘아대길 갈망하고 있는 것 같기도.
태양의 주위를 도는 ‘나’라는 존재의 자전축은 그 기울기도, 자전의 템포도 엉망이었다. 그래서 가장 오래 멈춰있던 계절은 우습게도 가을. 사계절 중 가장 짧아 눈 깜짝할 새에 머리 위의 단풍이 신발코에 가 붙어있다 눈길을 헤집는 그 찰나의 가을이, 내겐 잦고 또 길었다.
반팔에 긴 바지가 조금 쌀쌀해 집을 나서며 걸쳤던 남방은 꽤 로맨틱해. 동경하던 그 친구는 아무래도 사내애라 그런지 9월이 다 지나는데도 반팔에 반바지야. 꽤 추워 보여 손사래치는 모습에도 조용히 내 남방을 벗어 입혀줬다. 고맙대 따뜻하대. 가을과 ‘따뜻해’라는 말은 어째 안 어울리네. 어쨌든 그날 버스 정류장에서 한 대만 더, 한 대만 더 하다가 기어이 막차를 타고 헤어질 수 있던 건 내 남방을 잠시 빌려 입었던 그 친구의 데워진 체온과 내 참을만하던 추위 덕이었을까. 이듬해 가을, 집 앞 빌라 가로등 아래서 긴 입맞춤 끝에 상기된 얼굴을 뒤로 빼며 스쳤던 시월의 밤공기 역시 따뜻하고 또 시큰했지. 안녕 드디어 말끔히 정리할 수 있겠다며 맑은 얼굴로 하이파이브를 나누었던 아침도 흘러 흘러 맑은 가을이었고.
다시 이듬해 좋아하는 재즈 레이블의 전시를 보러 십일월의 종로를 찾았던 날은 비가 내렸어. 입시의 불안을 떨치고자 수시철에 디지털카메라 하나 들고 쏘다니던 을지로에서 그리 멀지 않던. 스무 살 처음으로 느껴보던, 깊이를 알 수 없는 우울감과 막막함 쓸쓸함 그리고 와중의 패기, 어떤 드라마가 묻어있던 공기 그대로의 가을밤이었어. 조금 찬 기운이 감도는 로비와 빗속을 막 뚫고 온 무리의 웅성거리는 습한 기운은 묘한 긴장감을 만들었지, 살짝 무겁고 차가운. 그 당시 만나던 친구가 조금 늦어 내가 먼저 줄을 서 있었는데, 티켓팅을 하려 공간을 빙 돌아 가득 메운 머리들 너머로 익숙한 얼굴이 보여 숨이 잠깐 멎었다. 그대로 뛰쳐나와서 우산도 잊어버리고는 빗속에서 엉엉 울어버리는 바람에 뒤늦게 온 친구는 깜짝 놀랐고. 다시 돌아가지 말걸.
애써 진정시키고 차근히 둘러보다 마지막 3층 계단을 올라 모퉁이를 돌았을 때 정통으로 마주쳤지 뭐야. 어, 안녕. 안녕. 남자친구? 응, 혼자 왔어? 응 같이 오려던 형이 못 와서.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 전시 너무 좋다 그치? 그러게 좋다 잘 돌아보고. 응 너도, 안녕. 안녕.
혼자 남산 벤치에 앉아, 지는 해를 바라보다 어둑해져 버리면 슬 걸어내려 오곤 했다. 여자친구가 있던 놈 하나가, 여자친구도 너도 동시에 사랑하고 있다며 주정 부렸을 땐 알았으니 감기 걸리지 말고 들어가서 푹 쉬라며 전화를 끊었다. 15분 겨우 눈 붙이며 며칠 밤을 새웠는데 원하던 만큼 공연을 잘 해내지 못했다. 합주가 끝나고 차가운 버스 차창에 머리를 대고 졸다가 차고지에서 깨버리면 아, 곧 겨울이 오려나 하고 옷깃을 여미곤 집으로 겨우 돌아왔다. 나는 뭐가 되려나, 생각했다. 홍대입구역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새벽의 강변북로 택시 안에선 늘 이소라 6집이 흘렀다. 그렇게 나는 가을에 꽤 오래 머물러 있었다.
이전의 여름은 언제나 성당 여름캠프와 물놀이, 시원한 성당 지하 회합실에서의 이런저런 보드게임들로 들떠 있었다. 밤이 짧고 선선해 새벽 내내 놀이터에서 친구와 앉아있다가 아이스크림이나 사 먹을까 하고 24시 맥도날드로 넘어가던 언덕 뒤로 동이 튼다. 십 대의 치기 어린 설렘은 가슴에 박하향을 터뜨리는 듯해, 여름은 나에게 첫사랑이었고 축제이자 일탈이었다.
8월 2일의 조조영화 코엑스 메가박스 M 관 R 열 12,13석. 영동고등학교 후문. 삼성아파트 놀이터와 청담공원. 금기시되던 것들이 파괴되어 아슬아슬한 밤들의 연속. 록 페스티벌에서의 광기. 음악, 끝없이 들락날락하던 술과 담배연기. 상기된 호흡. 광안대교를 바라보며 운율 섞인 부산 사투리 사이에서 서울깍쟁이는 만취해 휘청거린다. 자유. 허리춤에 걸친 얇은 카디건은 아무 데나 앉을 때 유용하다. 그러려고 갖고 나온 옷은 아니었는데. 깔끔을 적잖이 떠는 성격이라 생각했는데 어째 여름밤엔 어디든 앉고 눕고 풍덩 빠지며 사랑할 수 있었다.
용기 내어 생전 안 해본 걸 해본다 치면 역시 여름밤이었다. 모 대학 신입생 공연을 보고 홀에서 머뭇거리는데 동행했던 친구들이 아무리 등 떠민다 해도 추리닝에 쪼리 바람은 좀 아니지 않나. 유독 인상 깊던 신입생 하나에게 쭈뼛거리며 다가가 연주 잘 봤다고, 혹시 전화번호 좀 알려줄 수 있냐며 고개 푹 숙인 채 몇 마디 웅얼거리는데 추리닝에 반바지 쪼리 바람은 좀 아니지 않았냐는 거다. 모르겠다. 그렇게 가을로 넘어가 반팔에 긴 바지를 입은 채 걸치고 간 내 남방을 벗어주었지.
봄날을 제대로 만끽할 수 있던 건 대학에 들어가서였다. 초중고 내내 학교생활에 대한 고민이 많아 딱히 새 학기가 반갑지 않았으니. 지겨운 1년, 또 1년. 좋아 6학년이다, 중3이다, 드디어 고3이다! 였지. 게다가 길었던 입시 기간 중 맞이했던 봄의 기운은 나를 사정없이 야단치는 것 같았다. 너는 또 낙방했어, 낙오자, 패배자, 재능도 없는 음악을 아집으로 부여잡고 또 한 해를 골방에서 썩을 처지인 삼수생… 학원에서 문 닫을 때까지 연습하다 터덜터덜 돌아오는 밤길, 집 앞에서 마주친 성당 동생은 모 회식자리가 끝난 후 거나하게 취해서는 양 팔에 꽃다발, 케이크를 가득 안고 “언니~”한다. 나름 반가워하며 인사를 받고 도망치듯 뒤돌아 오는데 주책맞게 볼이 젖는다. 부러워. 품 속의 꽃이, 케이크가, 상기된 바알간 볼이, 경쾌한 발걸음이, 예쁜 새내기의 파우더 향이, 여기저기 묻어있는 술자리의 흥이. 너무 부러워 화가 나 눈물만 줄줄 흘렸다.
하루는 엄마의 호출로 뒤뜰에 불려 나갔다. 우리 엄마의 놀이 공간 ‘맘스 가든’은 성수기를 맞아 유례없는 화려함으로 어지러울 만치 향과 색을 내뿜고 있었고 부스스한 단발, 회색 추리닝의 칙칙한 나는 마치 실수로 놓여 있는 듯 전혀 어울리질 못했고. 진분홍색 진달래와 새하얀 철쭉 사이에 잠깐 섰다. 여기 봐, 하시곤 디지털카메라 셔터를 누르시는 엄마. 예쁜 새내기의 향은 아직 아니지만 엄마와 온갖 봄꽃들의 향으로 무장한 나는 그날 퍽 설레는 걸음으로 학원엘 갔지.
봄날의 로맨스는 대부분 첫인상의 지분이 많은 상태에서 성사된다. ‘시작’을 부추기는 듯한 분위기에 떠밀려 깨나 성급했던 커플매칭 속에서 이듬해까지 살아남는 이들은 몇 없다. 그럼에도 어쨌든, 사랑에 빠진다. 유독 눈이 자주 마주치다 오늘 처음 봤는데도 집엘 데려다주겠다 한다. 추위가 가시며 음지의 눈덩이도 모두 녹는 판에 안 춥다니까 그러네, 해도 굳이 두꺼운 패딩을 벗어 걸쳐준다. 벚꽃이 흐드러지게 핀 길 위를 걷다가 가로등 불빛에 비친 그림자에는 내가 첫 여자친구라던 학교 선배의 망설이는 오른팔이 보인다. 어깨를 감쌀까 말까 올렸다 내렸다 흩날리는 벚꽃잎과 어울려 넘실대는 풍경이 귀엽다. 삐뚤빼뚤 몇 자 적은 생일카드를 건네던 학생의 수줍은 고백, 꼭 원하는 대학에 들어가서 당당하게 고백할 거라고 했다. 그리곤 이내 내 생일선물을 같이 사러 갔던 학급 친구와 연애를 하더라.
더위보다 추위를 더 탔음에도 왜 겨울을 가장 좋아했을까. 입고 싶던 옷들을 뭐든 껴입을 수 있어 좋았고, 둔해 보이는 신발이 귀여워 보여 좋았다. 어렸을 땐 학원 끝나고 집 오는 길 트럭에 서서 먹던 오뎅이 좋았고 나중엔 2월마다 갔던 일본 여행에서 서서 먹던 이른 아침의 역전 우동이 좋았다. 황량한 마음의 서늘함이 좋았다. 연말 분위기로 화려한 거리 장식의 늦은 밤 쓸쓸하던 발광(發光)을 좋아해서 자정 즈음 동네 한 바퀴를 종종 돌았다. 쾌청하고 시린 공기가 살갗에 닿으면 그와 똑 닮은 내 마음까지 괜히 위로받는 듯해서 좋았고. 종종 수족냉증으로 차갑던 손을 잡아주는 혹자의 손은 유효기간이 짧다는 걸 알고 있다며 으스대곤 했다. 그마저 나름 좋았다. 무엇이든 아는 건 좋은 거 아닐까.
학창 시절 크리스마스이브의 캐럴 방문과 올나이트에 이어, 그저 관조할 뿐이던 포근한 겨울을 현실로 선물해 준 건 매주 수요일 눈 내리던 밤들의 L 이었다. 겨울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계절이다. 좋아한다 해서 오래 머물러 있진 않았지만 그래도 서른 살 겨울부턴 나의 자전이 적당히 느리고 일정해졌다. 이제 삐걱거리지 않고 사계절을 지나 다시 봄을 맞이하게 됐고.
결혼이라는 축의 출현.
겨울다운 겨울, 봄다운 봄은 뭘까 하니 겨울처럼 시리고 봄처럼 설렘이 태동하는 꼭 그 계절같은 마음을 시기맞춰 겪어내는 게 아닐까 싶어지네. 계절이 넘어가는데도 그 마음에 머물러 있지 않고 적절히 리듬에 맞추어 흘려보낼 줄 아는. 내 가을은 지나치게 길었고 여름은 너무 깊었고 겨울은 겉돌았으며 봄은 항상 일찍 져버렸다. 지난 서른 해 동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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