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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티하이커 Oct 09. 2017

월드 베스트바를 만나다

뉴욕 파이낸셜디스트릭트

감자튀김이 제일 맛있는 Dead Rabbit



나의 숙소는 월스트리트였다. 일반적인 관광지가 밀집되어 있는 미드타운, 타임스퀘어 주변이 아닌, 지하철로 20분 이상 떨어져있는 월스트리트였다. 서울로 치자면, 외국인 관광객이 중구나 강남, 혹은 서초가 아니라 여의도에 숙소를 잡은 격이다. 아침에는 증권맨들이 출근을, 낮에는 그들이 식사를, 저녁엔 모두 귀가하여 텅 비어버릴 그런 공간 말이다. 아, 저녁이라도 일 끝나고 한 잔하는 직장인 정도는 볼 수 있겠다. 관광지와 거리가 있는 곳에 숙소를 잡은 이유는 가격 때문이었다. 어리석게도 비행기 티켓은 작년에 예매했음에도 숙소 예약은 차일피일 미루다보니 미드타운 숙소의 가격이 너무 올라버렸다. (심지어 1박에 40만원을 가볍게 뛰어넘었다)

관광지에 대한 접근성은 살짝 떨어지지만, 이 숙소가 좋은 이유가 하나 있었다. 2016 월드 베스트바 1위를 수상한 '데드 래빗 Dead Rabbit'이 걸어서 5분 거리였다.



이번 나의 여행의 모토는 아트 트립과 바투어였다. 뉴욕엔 월드 베스트바가 14개 리스팅 되어있는데, 다른 바들은 가깝지 않더라도 1등과 가까우니 충분히 만족스러웠다.






공항에서 택시를 타고 호텔에 내렸다. 애석하게도 체크인은 세 시부터라고 하는데, 시계를 보니 두 시가 살짝 못되었다. 사우스 포트 TKTS를 구경하는 등 월스트리트를 배회하다가 데드 래빗으로 들어갔다. 그곳은 오전 11시에 오픈하기 때문에 낮에도 칵테일이나 맥주를 마실 수 있는 곳이었다.



30 Water St, New York


다행히 이곳은 숨겨진 스피크이지바가 아니라 구글맵으로 쉽게 찾을 수 있었다.



스펙이 빵빵한 칵테일바


작년 월드 베스트바 1위였고, 그 전에도 항상 상위권이었기 때문에 매우 유명하다.



3층의 바


1층은 아이리쉬 펍, 2층은 식사 전용 테이블, 3층은 바가 있다. 낮에 갔기 때문에 만석은 아니라, 3층 바 자리에 앉을 수 있었다.



바의 구석 자리에서


그러나 바 자리는 인기가 높은지 가장 끝쪽 자리 하나만 남아 있었다.



한국보다 칵테일 가격이 훨씬 저렴했다



안주 라인업은 풍성하며, 가격도 부담 없다


진토닉에 해당하는 Gallus Mag와 트러플 감자튀김을 주문했다.



아로마틱 비터가 들어가 붉은 빛을 띠는 진토닉


탱커레이 진, 토닉 워터, 라임, 아로마틱 비터가 들어간 Gallus Mug 진토닉이 나왔다. 비터 때문에 루비빛을 띠고 있었으며, 맛 또한 쌉싸름했다. 그러나 월드 베스트바 1위라는 타이틀에 걸맞지 않게 칵테일은 실망스러웠다. 진토닉의 핵심은 상큼함과 탄산인데, 김 빠진 콜라처럼 밍밍했다. 여기만 김이 빠졌나 생각했는데, 다른 뉴욕의 바도 방문해본 결과 탄산이 들어간 칵테일은 전체적으로 별로였다. 상큼함도 없었다. 비터의 향이 너무 강해 쓴맛이 지배적이었다.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감자튀김


그러나 이 모든 실망은 잇따라 등장한 트러플 감자튀김(Hand Cut Truffled Chips) 앞에서 불식됐다. 바삭하고 노릇한 감자튀김에 트러플 향이 배어 정말 고소했다. 게다가 소스는 무려 세 종류나 제공되는데 커리 마요, 몰트 비니거 아이올리, 케찹이다. 몰트 비니거 아이올리는 식초가 함유돼 상당히 시다. 개인적으로는 커리 마요 소스가 최고였다. 중독성이 엄청나, 감자튀김 양이 많은 편임에도 커리 마요 소스의 힘으로 순식간에 해치우게 된다.

아이러니하게도, 월드 베스트 바는 칵테일보다 안주가 훌륭했다. 저 감자튀김은 내가 태어나서 먹은 감자튀김 중에 가장 맛있었다.



상당히 선방했던 칵테일, 아메리칸 허슬


엄청난 안주 덕분에 맛 없는 진토닉을 다 마실 수 있었다. 다음 잔은 데드 래빗만의 시그니처 칵테일을 마시고 싶었다. 메뉴를 훑어보다가 아메리칸 허슬을 주문했다. 동명의 영화가 있기 때문이기도 했고, 버번위스키에 수박이 섞인다는 레시피가 호기심을 끌었다.

결과는 대만족이었다. 이 칵테일만큼은 개성과 맛 모두를 건졌다. 바텐더가 맛이 어떠냐고 물었을 때, "버번과 수박이 좋은 친구인줄 그동안 몰랐어요." 라고 대답했다.





모에 샹동 샴페인을 잔으로 판다


파리를 여행할 때 좋았던 것 중 하나가 샴페인을 잔으로 마실 수 있다는 것이었는데, 뉴욕도 마찬가지였다. 심지어 모에 샹동도 잔으로 팔았다.



비터의 종류가 굉장히 많았다


일본의 바를 방문했을 때와 달리, 클래식 쉐이커를 사용하는 바텐더는 한 명도 없었다. 모두 보스턴 쉐이커를 사용했으며, 양 손 모두 쉐이킹을 해 한 번에 두 잔 이상씩 만들었다. 바텐더들이 모두 여자라는 것도 독특했다. 쎈 언니들이 터프하게 동시에 여러 잔을 쉐이킹하는 모습이 멋지긴 했다.



뉴욕이니까 뉴욕 사워


바 자리는 비좁았다. 내가 서너 잔을 마시는 사이에 옆자리에 앉은 손님들이 바뀌었다. 서로 대화를 나누길래 일행인 줄 알았던 사람들도 알고보면 처음 만난 사람들이었다. 내 옆자리에 앉은 일행 중 한 명이 말을 걸었다. 어디서 왔는지, 그리고 이름을 물었다. 한국에서 왔다고 하자 미드타운 근처의 샤브샤브집을 소개해줬다. 인근의 The Growler의 바텐더인 매튜라고 했다. 토요일에 일하니 한 번 오라고 했다. 가장 늦게 합류한 금발의 남자는 단테에서 일한다고 했다. 아, 단테라면 월드 베스트바 아닌가요? 네, 맞아요. 그로울러와 단테를 남은 일주일의 위시 리스트에 넣었다.





Kathie

먹고 마시는 것, 그리고 공간 그 자체에 대한 글을 씁니다. 감성에세이 <솔직하지 못해서>를 썼고, 여행에세이 <예술과 술의 도시, 뉴욕>, 술에세이 <바에서 쓰는 일기>를 연재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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