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로카네다이
인연
아사코는 피천득 선생님의 수필, <인연>에 등장하는 일본 소녀이다. 은사님의 딸로, 하마터면 배필이 될 뻔했던 여자였다.
어떤 분의 소개로 사회교육가 미우라 선생 댁에 유숙을 하게 되었다. 시바쿠 시로가네에 있는 그 집에는 주인 내외와 어린 딸 세 식구가 살고 있었다. 눈이 예쁘고 웃는 얼굴을 하는 아사코는 처음부터 나를 오빠같이 따랐다. 아침에 낳았다고 아사코라는 이름을 지어 주었다고 하였다. 그 집 뜰에는 큰 나무들이 있었고 일년초 꽃도 많았다. 내가 간 이튿날 아침, 아사코는 '스위트피'를 따다가 꽃병에 담아 내가 쓰게 된 책상 위에 놓아주었다. - 피천득, <인연> 133p
아사코가 살던 곳은 ‘시로카네’라는 동네였다. 피천득 선생님이 머무를 당시에는 시바구 소속이었지만, 지금은 미나토구로 편입되었다.
<도쿄 일상산책>을 읽고 피천득 선생님과 시로카네가 ‘인연’이 있다는걸 알게 된 후 그 동네에 호기심이 생겼다. 그래서 마지막 날은 이곳에서 여정을 마무리해야겠다고 결심하게 되었다. 아침식사를 마치자마자, 우에노 오카치마치에서 시로카네로 출발했다.
시로카네라는 역은 없었고, 시로카네다이역이 있었다. 시로카네다이 또한 시로카네에 포함된 지역이었다.
하포엔을 지나
시로카네다이역에서 나오자마자 나를 반기는건 하포엔이라는 규모가 큰 일본식 정원이었다. 하포엔 주변부터 부촌의 분위기가 물씬 풍겼다.
나카메구로와 다이칸야마 사이의 아오바다이도 부촌이었지만 느낌은 사뭇 달랐다. 아오바다이가 신흥부촌이라면, 시로카네는 전통적인 부촌처럼 보였다.
미나토구 자체가 도쿄뿐 아니라 일본 전역에서 가장 부유한 부촌이다. 화려하기로 이름 높은 롯폰기, 아자부주반, 아카사카와 오다이바까지 모두 시로카네와 함께 미나토구에 속해있다.
하포엔에서 플라타너스 가로수길을 향해 걸었다. 사람 사는 모습을 보고 싶어서 큰길이 아닌 골목길을 걸었다. 젊은 아버지와 세발 자전거를 탄 아들이 총총 앞서 나갔다.
담벼락엔 진분홍색 꽃잎이 활짝 만개했다. 꽃이 너무 예뻐서 잠시 멈춰 사진을 찍는동안, 젊은 부자는 점점 멀어졌고 이내 하나의 점이 되어버렸다.
막다른 골목에 도달하자, 높다란 야자수를 심을만한 재력이 있는 부잣집을 마주쳤다.
이렇게 담도 높고 꽃도 아름답게 핀걸 보니, 아사코의 집이 아닐까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아사코와 나는 밤늦게까지 문학 이야기를 하다가 가벼운 악수를 하고 헤어졌다. 새로 출판된 버지니아 울프의 소설 <세월>에 대해서도 이야기한 것 같다. - 피천득, <인연> 135p
도쿄의 5월은 시로카네에서 활짝 피었다.
플라타너스 가로수길
골목을 벗어나니 큰길이 나왔다. 이곳은 큰길도 운치 있었다. 시원시원하게 높은 플라타너스가 서 있었다. ‘프라치나 가로수길’이었다.
각종 부티크샵과 스타일리시한 레스토랑, 외국인 아파트가 있는 거리였다.
이름은 가로수길이지만, 신사동 가로수길과는 달랐다. 명동처럼 되어버린 지금의 ‘가로수길’ 보다는 젠트리피케이션이 휩쓸기 전의 십수년 전의 ‘가로수길’이 떠올랐다.
시로카네다이
다시 처음 도착했던 시로카네다이역으로 향하던 길이었다. 돈키호테가 건물 하나를 통째로 쓰고 있었다. 사람들은 자전거를 세우고 쇼핑했다. 돈키호테 앞에는 자전거뿐 아니라 강아지들도 목줄에 묶여 주인을 기다렸다.
오후 다섯시를 향할 무렵이었다.
Kathie
식도락과 예술, 도시에 관심이 많습니다. 먹고 마시는 것, 그리고 공간 그 자체에 대한 글을 씁니다. 도시의 자연과 로컬문화를 사랑하므로, 여행에세이보다는 도시에세이를 지향합니다. 여행에세이 <나고야 미술여행>을 썼고, 도시에세이 <나는 아직 도쿄를 모른다>를 연재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