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 살지 않는 서울 사람
2018년 8월 5일 일요일
나는 서울에 살지 않는다. 심지어 단 한 번도 서울에 살아본 적이 없다.
사실 뼛속까지 경기도 토박이다. 과천에서 태어나 유년시절 의왕을 거쳐, 17년 동안 구리에서 살고 있다.
그러나 심적으로는 서울 사람이다. 엄밀히 말하면 서울 생활자이다. 서울에서 살아본 적은 없으니 서울 사람은 아니지만, 내 인생 거의 절반의 생활 반경은 서울이었다.
고등학교를 서울로 다녔고, 대학도, 직장도 쭉 서울이었다. 거의 모든 친구들과 지인들이 서울 사람이다.
정신적으로는 서울에 동화되어 있지만 물리적인 한계를 느끼는 건 선거철과 출퇴근 시간이다. 단 한 번도 서울시장을 뽑아본 적이 없고, 출퇴근 시간은 편도로 한 시간이 조금 넘게 소요된다. 지하철 역이 없어서 (아직 공사 중이다. 아마 몇 년째 계속 공사 중일 거다) 버스에서 지하철로 갈아타야 하니 매우 번거롭다. 귀찮아서 버스를 생략하고 택시를 탈 때도 꽤 많아 택시비 지출이 크다. 택시비가 나의 시발 비용의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다.
그래도 대학시절에 비하면 많이 좋아진 상황이다. 동쪽 끝에서 서울 서쪽에 있는 학교를 다니느라 집에서 출발해 강의실까지 도착하려면 1시간 40분이 걸렸다.
이렇게 10년 넘게 지냈더니 긴 이동 시간에 대한 내성이 너무 강해졌다.
“ㅇㅇ씨는 어디 살아요?”
“저 구리 살아요.”
그럼 상대는 헉하며 놀라며 회사까지 얼마나 걸리는지를 묻는다. 내가 표정 하나 안 변하며 1시간 10분 정도 걸린다고 대답하면 고생스러워서 어떻게 다니느냐 묻는다. 그럼 장단 맞춰주느라 “그러게요...” 라며 말끝을 흐리지만, 사실 이런 생활에 익숙해져서 전혀 고되지는 않다.
서울에 단 한 번도 살아본 적은 없지만, 서울의 몇몇 장소는 서울 사람보다도 속속들이 알고 있다. 회사가 이사 가기 전에는 태평로, 서소문, 북창동, 순화동, 을지로를 주로 다녔고, 근 1~2년에는 서초와 강남을 여기저기 돌아다녔다. 개인적으로 사람 만나는 약속을 많이 잡았던 도산공원 인근과, 집에서 가장 가까운 서울인 광진구는 거의 고향 같다.
나는 서울이 좋다. 여행을 가더라도 시골이나 교외보다는 도시 여행을 좋아하다 보니, 인구 천만의 메트로시티 서울이 좋은 건 당연하다. 비록 도시화 때문에 한 달 가까이 엄청난 폭염에 시달리고 있는 도시이지만, 그래도 서울이 좋다.
한강과 강 둔치의 한강시민공원, 야경이 아름다운 서울의 불빛이 좋다. 여행을 가고 싶지만 여력이 되지 않을 때는 서울로 여행을 떠난다. 서울로 여행을 떠나기는 참 쉽다. 집 앞에서 서울로 가는 경기버스를 타면 된다. 사실 평일엔 매일 서울로 출근하기 때문에 하루하루가 여행과 마찬가지이다. 매일 서울로 여행을 떠난다고 생각하면 틀에 박힌 일상이 덜 지겹다. 서울은 내 삶에 다양한 색을 덧칠하는 특별한 도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