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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티하이커 Aug 15. 2018

갓파더의 추억

서교동, 내자동, 청담동에서

구운 브리치즈

2016년 7월의 어느 비 오던 날, 구운 브리치즈와 견과류는 와인 안주로 제격인 것 같았지만, D는 위스키를 주문했다.

글렌리벳 15년

코냑과 쉐리와인의 풍미가 반반씩 느껴지는 글렌리벳 15년이었다. 나는 아직 위스키를 마실 수 없었다. 잔에 들어있는 위스키를 한 모금 마셔봤지만, ‘도대체 이걸 뭐가 맛있다고 먹는 거지?’라는 의문만 남겼다. 은희는 예전에 가족과 테이블 자리에 몇 번 왔던 모양인지, 나보다 위스키의 향과 맛에 익숙했다.

발베니 14년 캐리비안 캐스크

위스키 행진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럼을 숙성했던 오크통을 거치기 때문에 캐리비안 캐스크라는 별칭이 붙은 발베니 14년이 D의 마지막 잔이었는데, 이것은 D의 의지가 아니었다.

이곳의 사장님은 카리스마가 있었다. 칵테일도 잘 만드셨고, 위스키에도 박식하셨다. D가 처음에 글렌리벳을 고르자, 글렌리벳에 대한 설명을 이어가다가,

“이 위스키가 마음에 드시면 발베니 14년을 한 번 마셔보시겠어요?”

대략 이런 느낌이었던 것 같다. 우리가 주문하지 않은걸 마셔보겠냐고 권하시길래 당연히 서비스인가 했는데, 서비스라 하기엔 잔에 담긴 양이 많았다. 마지막에 영수증을 확인하니, 발베니 14년이 구석에 웅크리고 있는 게 보였다. 물론, 총금액도 무시무시했다.

당시엔 이건 강매 아닌가?라고 생각했던 게 사실이다. 심지어 그 바의 이름을, 우리끼리 강매라는 단어 대신에 은어로 사용한 적도 있었다. 당시엔 영수증 때문에 적지 않은 상처를 받았지만,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니 그곳은 안주도, 칵테일도 정말 손에 꼽힐 만큼 맛있는 곳이었다.

구운 브리치즈

먼저, 안주였던 브리치즈. 느끼해서 치즈를 안주로 선호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양이 적은 게 아닌가 한탄까지 하면서 가루까지 남기지 않고 먹었다. 그래서 ‘브리’라는 이름을 달고 있으면 모든지 맛있을 줄 알았는데, 마트에서 온 브리치즈는 한 조각을 먹은 후 느끼해서 더 이상 먹을 수 없었다. ‘브리치즈’라서 맛있는 게 아니라, 바에서 브리치즈를 맛있게 조리했기 때문에 맛있었던 게 아닌가 싶었다.

갓파더를 만드는 디사론노와 조니워커 더블블랙

다음은 이곳의 갓파더. 갓파더는 영화 대부를 기념해 만들어진 위스키 베이스 칵테일이다. 디사론노라는 리큐어와 위스키를 섞어 만드는데, 이 바에서는 기주로 조니워커 더블 블랙을 사용했다. (각 바마다 위스키 베이스 칵테일을 만들 때, 기주로 쓰는 버번위스키가 달라 그걸 비교해보는 재미도 있다)

디사론노는 살구씨에서 추출한 리큐르이지만 체리향이 난다. 이곳의 갓파더는 디사론노의 매력을 가장 잘 살린듯한 갓파더를 선사한다. 난 여기서 갓파더를 마시고, 내가 디사론노를, 그리고 갓파더를 좋아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건 오산이었다.



#1 디사론노의 맨 얼굴


어느 날, 내자동에 갔다가 낮술이 가능한 바에 들렀다. 메뉴가 딱히 없는 곳이라 무얼 마실까 고민하다가,
“갓파더 비슷한 걸 마시고 싶은데, 위스키는 마시고 싶지 않아요.”라고 말했다.

디사론노 사워

그렇게 디사론노 사워를 만났다. 디사론노는 있지만 위스키는 없는, 그야말로 디사론노의 맨얼굴을 만났다. 시큼한데 상큼함은 없었다. 위스키가 갓파더에서 얼마나 큰 역할을 했는지 되돌아보는 시간이었다.



#2 넌 너무 강했어


갓파더

일요일엔 커버 차지가 없어서, 한 때 ‘일요일의 바’라 불렸던 곳에서 갓파더를 주문했다. 서교동에서 마셨던 갓파더는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었다. 그래서 ‘꽤 맛있었던 칵테일이지’ 라며 갓파더를 시켰는데, 바텐더님이 기주를 와일드 터키 101(도수가 50도가 넘는다)로 쓰는 바람에 다음날 엄청난 숙취로 고생했다. 게다가 당연한 얘기지만 슬프게도 일요일의 다음날은 월요일이다. 이날을 마지막으로 일요일에는 그 어떤 바에도 가지 않았다. 겸허한 마음으로 월요일을 준비할 뿐이었다.




서교동 팩토리는 내가 방문한 첫 칵테일바이고, 갓파더는 나의 첫 번째 클래식 칵테일이었다. 아직 바가 대중화는 안되었기 때문에, 그곳의 영수증은 익숙하지 않았지만 갓파더의 맛과 풍미만큼은 일품이었다. 그 후 다양한 갓파더를 만났지만, 서교동만큼 맛있는 갓파더를 만드는 곳도, 디사론노를 맛있게 다루는 곳도 없었다.

갓파더라는 그 이름처럼, 과연 나의 대부가 되어줄 만한 곳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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