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력일까, 매력일까
6월 23일 화요일
전날 저녁의 멸치 사건으로 소란스러웠던 부뚜막은(우리는 급식소가 있는 화단 위를 부뚜막이라고 불렀다) 다음날이 되자 언제 그랬냐는 듯이 조용해졌다.
찰리가 암컷인 줄 알고 ‘예삐’란 이름이었던 시절, 새벽의 부뚜막에 홀로 엎드려 있었다. 밥그릇 안 멸치에 다가가던 궁예를 윽박질렀던 호랑이가 생각나서 너무 웃겼다.
다들 바빠서 아침 점심에는 밖에 나가보지 못했으나, 6시가 넘으니 저녁 식사하러 온 노란 고양이 두 마리를 발견했다.
덕랑이(덕이와 랑이)는 항상 붙어 다니더니 밥도 같이 먹고 사이가 좋았다. 그때만 해도 호랑이가 암컷인 줄(다름이의 엄마라고) 알았다. 그래서 호랑이가 다름이뿐만 아니라 덕이의 엄마일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저 둘은 모자 관계일까요?”
“글쎄.”
“아님 부부일까요?”
“둘이 닮았으니 부부는 아닐 거야.”
며칠 전에 급식소 근처에서 만났던 젖소종 불한당도 저녁을 먹으러 등장했다. 그때 불한당과 덕랑이 사이에 묘한 긴장감이 흘렀다. 길고 긴 눈싸움 끝에 불한당이 기싸움에서 지고 물러났다.
호랑이는 불한당이 사라진 자리를 곧게 앉아 지켜보았다.
조금 후, 호랑이가 거동했다며 어머니에게 메시지가 왔다. 친구에게 호랑이의 사진을 보내줬더니, 거리를 두는 모습이 아직 경계를 하는 것처럼 보인다고 했다.
호랑이는 급식소에서 아파트 건물 쪽을 등지고 편안하게 앉아있었다.
한편, 이날은 회사에서 상사에게 잔뜩 깨진 날이었다. 나의 상사는 종종 모두가 있는 자리에서 차갑고 매몰차게 지적을 할 때가 있는데, 이날이 바로 그날이었다. 멘탈이 나간 후에 회사 선배가 옥상에서 위로를 해줬고, 가족들과는 힐링을 위해 외식을 하기로 했다.
저녁식사 장소는 동네의 해물찜을 파는 식당이었다. 일찍 문을 닫으므로 빨리 도착해야 한다고 하셨다. 그러나 회사에서 식당까지는 한 시간이 소요되어, 나를 기다리는 동안에 아버지는 호랑이를 보러 가셨다.
아버지가 호랑이를 보러 부뚜막에 가셨을 때, 호랑이는 옥탑에 올라가 있었다. 아버지는 호랑이의 모습을 가까이에서 보기 위해 사잇길에 있는 바위로 올라가셨다.
호랑이는 옥탑에서 ‘고양이 세수’를 시작했다. 아버지가 사진을 찍는데도 개의치 않고 그루밍을 멈추지 않았다. 호랑이는 항상 카메라 앞에서 더 당당했다. 사람으로 태어났더라면 연예인 기질이 있었을 것 같다.
그런데 아버지가 사진을 다 찍고 바위에서 내려오시다가 발을 헛디뎌서 넘어지시는 바람에 등과 다리에 타박상이 조금 생기셨다고 한다. 여기저기 상처와 멍이 드셔서 약을 발랐고, 다시는 호랑이 사진을 찍느라 바위에 올라가지 않겠다고 하셨다.
마성의 호랑이였다. 사람을 끄는 매력도 있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마력도 가지고 있는 듯했다. 고양이에 너무 빠져버린 것일까.
그 후 식당에서 해물찜을 먹고 집에 돌아오는 길에 홀린 듯이 부뚜막에 들러 어김없이 호랑이의 사진을 찍었다. 부리부리한 눈망울은 여전히 마력을 가지고 있었는지, 호랑이를 만나고 집에 오자마자 배가 아팠다. 호랑이 때문은 아니었고, 회사에서 스트레스를 잔뜩 받고 매운 음식을 먹어서 배탈이 나버렸다. 아픈 배를 잡고 뒹굴뒹굴 굴렀고, 그 여파는 다음날까지 지속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