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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티하이커 Jan 11. 2018

줄서서 먹어서 맛있는지도 모른다

줄서서 먹는 문화에 묻다

맛집에서 밥을 먹으려면 줄을 서는 경우가 많다. 특히 일본여행을 할 때, 밥을 먹기 위해 줄을 길게 늘어선 사람들을 많이 봤다. 예전에 어떤 일본인이 쓴 자기계발서에서 시간을 절약하는 방법에 대한 예시로 밥을 먹을 때 줄서는 식당을 피한다는 구절이 있는걸 보니, 일본에서는 이런 경우가 흔한 것 같다.

물론 우리나라에서도 인기 많은 식당에서 줄을 서긴 하지만 대부분 대기시간은 30분에서 1시간 미만이다. 그러나 오늘 소개할 모토무라 규카츠에서는 2시간을 기다렸고, 도쿄 츠키지 시장의 오마카세 초밥을 먹기위해서는 최소 3시간에서 5-6시간까지도 기다려야 한다고 들었다.


카야바 커피와 야부소바의 대기줄, 도쿄 다이토구 / Photo by 은희


맛있는 음식을 먹기 위해서는 기꺼이 시간을 할애하는 ‘기다리는 문화’, ‘줄서는 문화’, ‘미식문화’가 일본 현대문화의 일부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들었다. 맛있기 때문에 사람들이 줄을 서는 걸까, 아니면 줄을 서서 맛있는 걸까. 계란이 먼저냐 닭이 먼저냐는 질문과 비슷해 보이지만 사실 맛있기 때문에 줄을 서는 확률이 클 것이다. 그러나 ‘여긴 이렇게 기다리는 사람이 많은데 당연히 맛있을거야.’ 라는 심리도 분명 가게의 이미지에 영향을 끼칠 것이다.

내가 이런 의문을 품게된 계기가 된 도쿄에서의 첫 식사에 대해 소개해보고자 한다.




#1 두 시간의 기다림, 도쿄 야에스


은희와 함께 여행을 가면, 각자 맡는 역할이 있다. 나는 돈, 카드키 등의 귀중품 관리를 하고 길눈이 밝은 은희는 목적지까지 길을 찾는다. 또한 미식에 조예가 깊은 그녀가 대개 식사 장소도 정한다. 은희가 계획한 첫 식사 장소는 도쿄역 근처 야에스의 모토무라 규카츠였다.


모토무라 규카츠, 야에스


도쿄역을 지나 '이곳에 식당이 있을까?' 싶을 법한 허름한 골목을 지나면 위와 같은 3층짜리 건물이 등장한다. 그럼 절반은 성공한 것이다.


모토무라 규카츠의 긴 줄


나머지 절반은 무엇이냐고? 바로 길고 긴 웨이팅이다. 처음엔 이 정도면 30분쯤 기다리면 되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러나 우린 모토무라 규카츠의 웨이팅을 과소 평가했다. 알고보니 식당에 좌석이 바 자리 9개밖에 없어서 결국 2시간이나 기다렸다.

식당 앞에 서서, 2시간이나 기다려 식사를 한건 난생 처음이었다.

기다리는 인파 중에는 생각보다 일본인들이 많았다. 우리가 본 한국인 관광객은 우리 뒷줄의 2명이 유일했다.


감격스러운 점심 식사


결국 거의 3시 경이 되어서야 점심을 먹을 수 있었다. 도쿄는 더웠기 때문에 얼음물을 들이키고, 콜라도 주문했다.


화로에 구워 먹는 레어 상태의 규카츠


규카츠를 한 조각씩 화로에 구워 먹었다. 마치 스테이크처럼 레어 상태로 제공되어 구워먹기에 제격이었다. 육즙도 풍부하고, 고기도 고소한데 튀김옷까지 바삭하여 나무랄데 하나 없었다.


마를 좋아하는 사람은 마가 포함된 세트를 주문할 수 있다


간장 소스에 와사비를 풀어 찍어 먹어도 맛있고, 겨자 소스에도 잘어울린다. 두 시간 기다려 먹은 보람이 있을만큼 맛있었다.




#2 10분의 기다림, 도쿄 우에노


우에노의 모토무라 규카츠, 2018년 1월


그로부터 1년 반 후 한겨울이 한창인 1월, 도쿄에 다시 방문했다. 도착한 첫날, 야간개장 덕분에 늦게까지 국립서양미술관에서 전시회를 보고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 모토무라 규카츠를 발견했다. 아메요코 시장으로 들어가는 입구쯤에 있었다. 저녁을 먹지 못해 배가 너무 고팠기 때문에 무작정 들어갔다. 대기는 없었다. 그러나 현금으로만 결제가 되는 곳이어서 부족한 현금을 가지러 다시 숙소로 들어갔다. 다행히 숙소와는 5분 정도 거리였다.



현금을 가지고 오느라 시간이 지났더니, 비었던 자리에 누군가 앉는 바람에 대기를 하게 되었다. 다행히 대기 시간은 10분이었다.



고기를 큰 사이즈로 시키고 마가 들어가지 않은 밥에 콜라를 주문했다. 야에스에서 먹었던 것과 똑같은 차림이었다. 그런데 무언가 달랐다. 더운날 땡볕에서 두 시간 기다려 먹었던 식사와 확연히 달랐다. 그 때는 똑같이 먹어도 전혀 물리는 느낌이 없었는데, 이번엔 절반 정도 먹고나니 느끼해지며 남기고 싶어졌다.



물론 지점이 달라서 그럴 수도 있다. 야에스의 모토무라 규카츠가 우에노보다 맛있게 조리할 수도 있으니까. 그러나 그로부터 3개월 후 다시 도쿄를 방문했을 때, 점심시간에 늘어선 우에노점의 긴 줄을 보건대 우에노 지점이 다른 점포에 비해 특별히 맛이 떨어지는건 아닌 것 같았다.

어쩌면 두 시간을 기다렸기 때문에 맛있을지도 모른다. 오랜 대기시간이 만든 기대와 환상, 체력적인 지침과 허기 때문에 원래의 맛보다 맛있게 느꼈을지도 모르겠다.

은희가 츠키지 시장에 다녀온 얘기를 듣고, 이러한 의구심은 더 강해졌다. 2018년 4월, 은희는 츠키지 시장의 유명한 초밥집 스시다이에서 아침을 먹기 위해 네 시간을 기다렸다고 했다. 오픈시각이 새벽 5시인데 새벽 2시부터 줄을 서는 곳이라고 한다. 네 시간의 웨이팅도 놀랄 정도로 매우 긴 대기시간이 틀림없는데, 아침 7시 정도에 도차간 사람들은 대여섯 시간을 기다려야 점심식사를 할 수 있다고 한다.

그런데 그렇게 기다려 먹은 초밥의 맛은, 물론 맛있기는 했지만 너다섯 시간을 바깥에서 잠도 못자고 기다려 먹을 맛은 아니라고 했다. 그래도 여전히 관광객들은 비행시간을 초과할만큼 오래 기다려 스시다이의 초밥을 먹는다. 식당이 관광지처럼 된 것이다.

어쩌면 오래 줄서서 기다려 먹는 식당의 명성은 전설적인 웨이팅 시간이 만들어낸 허상이 아닐까. 물론 맛은 있겠지만, 절반 정도는 관광객들의 환상이 만들어낸 맛이 아닐까 싶었다.




Tip. 다소 과대평가되어 있는 느낌은 있지만 도쿄에 갔다면 들러볼만한 곳이다. 그러나 자리가 9석밖에 없어서 두 시간이나 기다려서 먹어야 하는 야에스점보다는, 공간이 좀더 넉넉한 우에노점을 추천한다.

ADD 手塚ビル, 4 Chome-10-17 Ueno, Taitō-ku, Tōkyō-to 110-0005, 일본

TEL +81 3-6284-2780






Kathie

식도락과 예술, 도시에 관심이 많습니다. 먹고 마시는 것, 그리고 공간 그 자체에 대한 글을 씁니다. 도시의 자연과 로컬문화를 사랑하므로, 여행에세이보다는 도시에세이를 지향합니다. 여행에세이 <나고야 미술여행>을 썼고, 도시에세이 <나는 아직 도쿄를 모른다>를 연재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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