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의 시작 전에 갑자기 위경련이 왔다.
팀즈 메신저 알림 하나에 심장이 너무 빠르게 뛰었다. 자리에 앉아 있다가 이유 없이 눈물이 났다.
감기면 감기약, 두통이면 진통제를 먹을 텐데.
하루는 머리가 아프고 하루는 위가 아프고 하루는 심장이 너무 뛰고 하루는 온몸에 힘이 없고.
아프긴 아픈데 병명을 모르겠어서,
어느 순간부터는 무슨 약을 먹어야 할지도 몰랐다.
살면서 이런 적은 처음이었다.
처음에는 피로라고 생각했다.
프로젝트가 커서, 책임이 많아서, 그냥 좀 힘든 거라고.
누구나 이 정도는 버티는 거라고. 근데 버티면 버틸수록 신호는 더 선명해졌다.
중요한 회의 전날 밤 잠을 못 잤다. 임원 앞에서 발표해야 하는 날 아침엔 손이 떨렸다. 좋은 소식을 들어도 기쁘지 않았다. 칭찬을 받아도 실감이 안 났다.
그렇게 버티다 생일날, 휴가를 내고 처음으로
엉엉 울며 정신과로 향했다.
대기실엔 중년의 아저씨들이 눈에 띄었다.
저 사람들은 왜 여기 있을까? 나는 왜 여기 있을까?
당시엔 직장생활 스트레스로 정신과까지 오는 게 이해가 안 갔다.
의사 선생님한테 말을 제대로 못 했다.
2회, 3회 차까지 너무 울어서 얘기를 거의 못하고 돌아왔다. 그냥 신경을 쓰면 위가 아프다는 말 정도밖에 못 했다. 내가 지금 어떤 프로젝트의 PM인지도,
일이 구조적으로 얼마나 이상하게 몰려 있는지도,
그 안에서 내가 얼마나 혼자 인지도
— 아무것도 설명하지 못하고 그냥 울기만 했다.
진단명은 비정형 우울이었다.
지금은 의사 앞에서 말 한마디도 못하고 통곡을 할 뿐이지만, 회사 가서는 나름 웃는 얼굴로 일도 척척 하고, 잠도 잘 자고 밥도 잘 먹어서 그렇다고 했다.
뭐 정형 우울보다는 덜 심각한 거겠거니
생각하고 약을처음 받아왔다.
1회차. 빈속에 먹으면 쳐지고 어지럽고 울렁거렸다.
오전에는 굉장히 멍했다. 보통 7시 반에서 8시 반 사이에 먹으면 11시까지 아무것도 못 할 정도로. 뇌가 조용해지는 느낌이 들긴 했는데 그게 좋은 건지 나쁜 건지 몰랐다. 그래도 먹었다.
2회차. 감정 반응이 줄었다.
회의 중에 공격을 당해도 예전처럼 심장이 아프거나 위경련이 오거나 무너지는 느낌은 없었다. 근데 감정이 너무 죽은 느낌이 들었다. 울지도 않고 그냥 모든 순간을 무표정으로 지나갔다.
3회차. 오히려 눈물이 더 자주 터졌다.
예전엔 회사에서 눈물이 또르륵 났다면 이젠 길바닥이나 지하철에서 갑자기 엉엉 울게 됐다. 하고 싶은 것도 즐거운 것도 없었다. 아침에 눈은 떠지는데 일어날 이유가 없었다. 그러면서도 출근은 했다.
약에 적응하는 기간 동안 여러 경험을 했다.
어떤 약은 감정을 평평하게 균일하게 다림질해주기도 했고, 어떤 약은 감정에 무거운 추를 달아 진정을 시켜주기도 했고, 어떤 약은 흔들어 깨워주기도 했다.
버스에서도 눈물이 났다. 요가 가는 길에도. 약속 나가는 길에도. 근데 또 어떤 날은 감정이 메말라서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내가 늙은 건지, 약 때문인지, 그냥 너무 많이 닳은 건지헷갈렸다. 어느 날 새벽 두 시에 깼다. 이유 없이 통곡했다. 뭐가 그렇게 서러웠는지 몰랐다.
친구한테 처음으로 정신과에 간다고 말했다.
누구한테 그렇게 차분하게 자초지종을 얘기한 건 처음이었다. 슬픈 기분도 잠잠해졌지만 대신
기쁘고 즐거운 기분도 잠잠해졌다고.
그게 솔직한 표현이었다.
아마 지금쯤 이런 생각이 드는 게 당연하다.
그럼 왜 안 그만뒀는데? 고작 회사 일인걸.
나도 그랬으니까.
의사도 같은 말을 했다.
일에 나의 자아를 의탁하고 있다고.
근데 그만두라는 말은 생각보다 아무도 안 해줬다.
엄마는 빨리 고쳐주고 싶어 했고, 그 마음 하나에도 상처를 받았다. 내가 진짜 듣고 싶은 말은 그만둬도 된다는 말 같았는데. 근데 사람들은 내가 갖고 있는 게 꽤 괜찮은 딜로 보이면 그만두라는 말을 쉽사리 못한다.
나 스스로도 마찬가지였다.
왜 계속했냐고 물으면
하나는 책임감이었다. 나 한 명 없어도 돌아가는 곳이 회사라는 건 안다.
근데 무언가를 머리로 낳아본 사람들은 알 것이다.
내가 없으면 배가 계속 항해를 했을지언정
목적지에 도달하진 못했을 거라는 그 느낌.
다른 하나는 정체성이었다. 나는 일을 잘 해내는 사람이어야만 했다.
입사 초에 심어진 믿음 — 내가 잘하면 된다, 능력이 있으면 억울한 상황은 피할 수 있다 — 그게 여기서도 작동하고 있었고 나는 항상 시키지도 않은 일을 했다.
안 하면 안 될 것 같아서.
그 책임감이, 그 잘하고 싶은 마음이, 나를 조용히 갉아먹고 있었다는 걸 — 그때는 몰랐다.
그리고 무엇보다, 끝을 보고 싶었다. 이번만 잘 싸워서 이기면 다 끝나고 다 괜찮아질 줄 알았다.
이 상황이 몇 개월 지속되고 이제는 가족들 앞에서도 숨기 지를 못하고 통곡을 하는 상태였을 때
아빠가 너는 딸린 식구도 없고 대신 너를 지원해 줄 가족이 있으니 힘들면 그만두라고 했다.
막상 남의 입으로 그 "허락"을 받았을 때 내게 든 생각은 하나였다. 지금 그만두면 억울하다. 이기고 싶다.
나를 괴롭히는 그 사람도 일도 상황도
다 이겨야 성에 찰 것 같았다.
그냥 내 발로 걸어 나오면 분에 못 이겨 더 괴로울 것만 같았다. 그래서 약을 먹으면서라도 버티는 게 이기는 거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 싸움만 이기면 끝날 줄 알았던 게
가장 큰 오해였다.
런칭도 하고 안정기에 들어섰을 무렵, 다시 정신과 진료실에 앉아 우는 날들은 줄어들었지만 여전히 심장은 뛰고 목구멍이 조여 오는 증상이 있었다고 설명하니
의사 선생님이 말했다.
"살만하고 인정도 받고 일도 잘 끝났는데,
이제 뭐가 남았냐고 묻는다면 — 불안인 것 같아요.
뭐가 아직도 불안해요?"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아니요, 저도 잘 모르겠어요. 왜 불안한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