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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시연필 Sep 16. 2016

목소리를 보고 있습니다

듣는 것보다 보는 게 편한 사람들

01411. 마치 암호처럼 쓰이는 번호였다. 접속을 하면 번호를 누르는 소리와 함께 기계음이 울렸다. 그 소리는 지금의 팩스 연결음과 같았다. 접속에 성공하면 파란 배경에 하얀 글씨들이 안내를 시작했다. 그 파란 세상에서 자기 전 한 시간을 모험하곤 했다.


시간이 지나고 '천리안'이라는 세계로 진화했고, 나름의 현재 브라우저와 같은 역할을 하게 됐다. 그래도 그 가상 세계와의 연결음은 그대로 존재했었다. 그 연결음을 듣는 것이, 가상세계로 들어가는 하나의 노크와 같았다.

분명한 경계선 역할을 했던 신호이자 소리였다.


인터넷 통신사의 발전은 생각보다 빨랐다. 과한 모험을 통해 전화요금이 10만 원 단위를 넘어선 그때의 일화들은 더 이상 나오지 않았다. 인터넷 정액제와 함께 가상세계로 들어가기 위한 노크는 사라졌다. Windows에서 제공하는 익스플로러 브라우저 아이콘을 두 번 빠르게 클릭하는 것으로 가상세계는 연결되었다. 그때부터 현실과 가상세계의 구분이 없어졌다고 생각했다. 그 연결음을 듣지 못하는 것으로부터 그렇게 생각하게 됐다.


더 이상 파란 배경의 모험은 없었고, 야후 / 라이코스라는 포털 등이 신문에서 나올 법한 기사들을 가상 세계에 올려놓곤 했었다. 신문을 사서 보지 않아도, 가상세계에서 현실세계의 소식을 보게 된 첫 시작이었다.


가상세계의 발전은 기술적 변화만을 가져온 건 아니었다. 중학교로 진학 후, 같은 반이 된 어색한 친구들 사이를 가상세계의 새로운 도우미가 역시 현실세계를 도와주기 시작했다. 그건 '버디버디'와 'MSN'이란 메신저였다. 이 메시저를 통해 소심한 친구들도 컴퓨터만 할 줄 알면, 깊은 대화를 나누는 베스트 프렌드를 만들 수 있었다. 그렇게 친구들의 목소리는 학교에서 듣기보단, 컴퓨터에서 볼 수 있었다. 








가상세계와 현실세계의 경계가 무너진 것의 기준은, 그 연결음의 부재가 아닐까 싶다. 그 연결음을 들을 수 있을 땐 분명 내가 가상세계로 들어가는 과정을 알 수 있었으니까. 설렘과 기다림 속에서 현실 안에 있음을 인지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 소리가 사라진 뒤 어디가 현실이고 어디가 가상인지의 구분은 쉽지 않다.


몇 년 전 아르바이트를 통해 알게 된 지인에게 연락을 할 때 자연스럽게 전화를 했다. 문자로 이야기를 나누기엔 길고 편하게 대화를 하기 위해서였다. 통화가 끝나고 나에게 돌아온 대답은 문자로 이야기하는 것이 편하다는 고백이었다. 사실 통화하는 중 지인의 말투와 억양은 약간의 어색함과 불편함을 드러냈다. 이후 그 지인에게는 전화를 하지 않는다. 이미 목소리를 보는 것이 익숙한 사람이기 때문에 이해할 수밖에 없다.


모든 목소리를 소리 내어 전달할 수 없다. 가상세계의 등장 전에도 신문, 책, 편지가 목소리를 대신하는 훌륭한 전달자였다. 그런데 이건 어디까지나 정보, 지식, 소식에 대한 내용이 주가 되었을 뿐. 대화를 대신해주진 않았다. 지금처럼 개인의 목소리까지 '보는'상황이 될 줄 예상하지 못했다.


목소리를 통한 대화, 글을 통한 대화는 작지만 무시할 수 없는 큰 차이를 가지고 있다. 그것은 각자가 가지고 있는 개성, 즉 개인의 색을 구분할 수 있는가 없는가의 차이다. 만약, 우리 핸드폰에 이름과 번호 없이 누군가 글로 말을 걸어오는 상황이 온다면 우리는 어떻게 상대를 구분할 수 있을까.

결국, 상대를 구분하는 능력마저 기계에게 맡긴 상황이라 할 수 있다.


이미 현실과 한 몸이 되어버린 가상세계를 떠나는 건, 많은 손해와 제약이 따른다. 단지 우리 모두에게 좋아질 수 있는 작은 실천 정도. 또는 글을 쓰는 내 개인의 작은 바람이 있다면, 소중한 이들의 목소리만큼은 많이 듣고 많이 들려주는 것이다.


기계, 가상세계는 우리에게 편리와 효율을 주면서 인간미를 지워간다. 그 편리와 효율을 잠시 내려놓으면, 우리는 크진 않지만 오래가는, 작은 행복을 얻게 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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