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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시연필 May 04. 2017

삼촌이 미안해

너의 소중한 클릭을 방해해서

2017년 5월. 듬성듬성 있는 휴일에 직장인들은 환호 또는 좌절을 경험하는 주.


18년 동안 친구였다가 100일도 안된 신생 커플이 된 두 사람이 10월에 결혼 날짜를 잡았다. 그 커플의 각자의 생각과 고민들과 맛있는 식사로 저녁을 보내고 곧장 엄마 집으로 왔다. 일요일마다 들리려고 노력하지만, 매번 내 몸은 엄살을 부리며 움직이질 못 한다. 이번 주말에는 못 올 것 같은 기분에 '오늘이구나'하며 막차를 탔다.


새벽 2시. 고2. 나보다 키가 커진 조카의 방에 들어왔다. 잠이 올 때까지 일이나 할 겸 원격 프로그램을 틀어놓고 왔고, 원격을 연결하기 위해 내 PC명을 클릭하는 순간, 쥐고 있던 마우스가 의도치 않은 더블클릭이 되었다.


울컥했다. 마음이 너무 아팠다.


2014년 12월. 서른 살이 되기 한 달 전. 불효라는 대출을 받고 자취를 결심했다. 그리고 새로운 마음으로 마우스와 키보드를 샀고, 쓰던 마우스를 조카에게 줬다. 싸구려 마우스를 쓰던 조카는 '이거 좋은 거 아니에요? 삼촌껀데 써도 괜찮아요?'질문하며 조카 특유의 신난 표정을 지었다. 난 그 표정을 집들이 선물로 받아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엄마 집에 갔을 때, 내 조카는 마우스 클릭이 이상하다고 말했다. 테스트를 해 봤지만 이상은 없었다.

"삼촌, 이거 마우스 클릭이 이상해요"

"또 이상하면 큰삼촌한테 말해. 새 거로 사줄게"

"아니에요. 겉모습이 멋있어서 좋아요. 불도 들어오고"

"클릭이 안 되면 다 필요 없어. 그러니까 또 이상하면 큰삼촌한테 말해"

장난스럽지만 열정 가득한 포옹을 하고 다시 나의 작은 공간으로 돌아왔다.


2016년 9월. 걸어서 20분 거리가 전철로 1시간 30분 거리가 되었다. 이사 전 그리고 이사 후, 어디에서건 내 조카는 매번 엄마 집에 올 때마다 그 마우스로 게임을 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 예전 일은 내 기억의 방으로 올라오지 않았다. 그리고 오늘, 기억의 방조카가 남긴 대사가 가득 차 있다.


"삼촌, 이거 마우스 클릭이 이상해요"

"삼촌, 이거 마우스 클릭이 이상해요"

"삼촌, 이거 마우스 클릭이 이상해요"








아무리 타인을 배려하는 삶을 살아도, 기본적으로는 나를 기준으로 사고하고 생각하고 느끼게 된다. 내 앞에 있는 사람과의 대화 - 행동 - 느낌은 결국 나의 방식으로 기억하고 넣어둔다. 절대적 상황에서도 결국 상대적인 상황을 담게 된다.


완벽한 이타적인 삶은 안될지라도, 지향하는 삶을 사는 것이 좋았다. 그 삶의 행동으로 타인이 도움을 얻을 때, 나에게 오는 성취감은 상당히 크다. 단지 이게 나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스트레스와 지친 마음을 다스리는 방식이 독특할 뿐이다.


나름 자부했던 것 같다. 이렇게 하다 보면, 그나마 상대방의 마음 온도를 높일 수 있지 않을까 하면서.


결국 우리는 사람이다. 지칠 수 있는 사람이고 그 지치는 순간만큼은 상대를 생각할 수 없는 상태가 된다. 오늘 나는 그 상태를 울컥하며 인정했다. 하지만 인정 안에 다음과 같은 불안이 가득 차 있다.

 

'불편해도 적응돼서 괜찮아요. 그냥 쓴 거예요.'

라고 생각했으면 그나마 다행이지만


'삼촌이 좋은 마우스라고 해서, 그냥 쓴 거예요'

라고 생각한 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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