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의 변화
봄, 무서운 것이 없었던 시기. 아니, 무서운 것을 몰랐기에 무엇이든지 할 수 있던 어린 시절. 엄마가 알려준 분홍색 꽃을 찾아다니던 때가 있었다. 처음에는 그 꽃에서 꿀 같은 단물이 나온다는 엄마 말을 믿지 않았다. 엄마가 시범을 보여주며 나에게 먹어보라 권했고, 신기하면서도 달콤한 그 분홍색 꽃은 항상 내 사냥감이었다.
여름, 주황색 세상이 열리면서 온몸에 따뜻한 기운이 감돌았다. 눈을 뜨면 보이는 건너편 아파트를 비추는 햇빛은, 항상 밝고 따뜻했다. 매번 부모님의 알림으로 일어났지만 일요일만큼은 디즈니 만화동산으로 자동 기상이 됐고, 프로그램이 끝나면 같은 아파트 또는 건너편 아파트의 또래 친구들과 주차장에서 팽이치기를 했다.
가을과 겨울, 노란색으로 변한 은행나무에서 잎이 떨어지는 게 신났었고, 일부러 발로 나무 몸퉁이를 힘껏 차서 비처럼 쏟아지는 은행잎 샤워를 하며 웃고 놀았다. 첫눈이 내렸을 땐 언덕이 있던 초등학교를 찾아가 슈퍼 한구석에 쌓여 있던 종이박스를 썰매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놀았다.
성인이 된 후 1년의 시간, 사계절이 만끽할 순간도 없이 지나간다. 정확하게는 만끽할 수 있는 시간이 없어졌다. 성인이 되고 행동 하나하나의 책임이 주어진 순간부터, 이유 없는 시간에 쫓기며 산다. 하나하나 뜯어보면 시간이 없지도 않지만 그래도 신기하게 없다.
시간은 빠르다 라는 것을 느꼈을 때, 이유가 궁금했다. 왜 빨리 가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인지. 그리고 생각보다 답을 구하는데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보이지 않는 속도
너무 느려서 그 속도가 보이지 않을 때, 멈춘 것처럼 보인다. 분명히 움직이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우리는 알고 있다. 느려서 보이지 않는 것이지만 분명 변화하는 것을. 그럼에도 우리는 매 순간 보이는 속도에 익숙해졌고, 계절과 시간처럼 보이지 않는 속도를 가진 그런 것들에서 속도를 느끼지 못한다. 분명 변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그 속도를 느끼는 때는, 변화가 완벽하게 이루어진 순간이다. 그제야 우리는 말한다. 시간이 참 빠르다고.
계절과 시간만이 아니다. 생각보다 보이지 않는 속도를 가진 것은 많다. 우리는 속도를 가늠할 순 없지만, 그 순간을 함께 할 수 있다. 지금도 그 순간이고 함께하는 중이다. 우리는 보이지 않는 속도로 삶을 살아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