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금을 배우다가
대금을 시작한 지 일 년 반쯤 지났을 때의 일이다. 기본기를 익히기 위한 곡을 몇 달째 연습 중이었다. 그중엔 영화 <서편제>의 테마곡 <천년학>도 있었다.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서편제>에서 들은 그 절절한 맛을 흉내조차 낼 수가 없었다. 음계도 조금 차이가 있는 듯했다.
“선생님, 전 왜 맛이 안 날까요?”
“<천년학>은 원래 정악대금으로 연주해야 합니다.”
그동안 익힌 대금은 산조대금이었다. 정악대금은 10여 센티미터 더 길어서 호흡을 길게 가져가야 제대로 소리가 난다. 산조가 격정적이라면 정악은 그윽하다. 산조가 민초들의 한풀이라면 정악은 선비의 절제된 슬픔을 표현한다. 굳이 비교한다면 산조가 재즈이고 정악은 클래식이다. 이런저런 선생님의 긴 설명이 이어졌다. 그 설명을 다 듣기도 전에 나는 이미 작정했다. 아내에게는 한마디도 하지 않고 오랫동안 모아둔 비상금을 흔쾌히 질렀다.
정악대금을 연습하던 나는 또 다른 욕심이 생겼다. 언젠가 선생님이 들려주시던 <청성곡>이 매일 환청처럼 들렸다. 사극의 배경음악으로 자주 들어 본 적 있는 대금연주의 대표곡이다. 연주해 보고 싶었다. 문제는 대개 정악대금을 이삼 년 숙달시켜야 배울 수 있다고 했다. 고음 위주의 연주로 ‘떠이어’라고 하는 기법을 완벽하게 구사해야 맛이 제대로 나기 때문이다. ‘떠이어’는 손가락 두 개로 지공을 순식간에 막았다 열었다 하면서 소리를 강하게 내는 연주기법이다. 말로 설명하기보다 연주하는 모습과 소리를 들어야 이해할 수 있다. 국악전공생들도 제대로 구사하기 위해 매일같이 습관처럼 연습하는 기법이다.
코로나 사태로 강좌가 중지되었다. 선생님을 뵐 수 없어 답답했다. 우연히 인터넷에서 온라인 국악강좌를 발견했다. <청성곡> 강좌도 있었다. 하지만 녹화 강좌로 진행하여 쉽게 이해하기 힘들었다. 선생님의 시범을 가까이서 보고 질문도 해보고 싶었지만 아쉬웠다. 머리로는 이해가 되는데 도무지 손으론 실행할 수가 없었다. ‘나는 이제 내 몸도 내 맘대로 못하는 나이가 되었구나’하는 생각으로 지쳐갔다.
그렇게 매일 습관처럼 <청성곡>을 흉내 내면서 서너 달 때쯤 지났을까? 그날도 아무런 생각도 없이 음계만 짚어가며 악보를 외우려는데, 첫 음부터 소리가 꽤 청아하게 나면서 내 맘에 쏙 들었다. 그러더니, 그토록 흉내조차 낼 수 없었던 ‘떠이어’ 비슷한 소리가 나질 않는가? 더구나 떠듬떠듬 하긴 했지만 <청성곡> 가락을 흉내 내고 있질 않은가? 이게 웬일일까? 가슴이 벅차올랐다. 선생님이 들으시면 아직 어린애 장난 수준이겠지만, 내겐 크나큰 한걸음이었다. 배움의 과정은 경사형이 아니라 계단형으로 나타난다고 하더니, 그 한 계단을 올라가는 순간이었다. 주방에 있던 아내에게 소리쳤다.
“나도 떠이어가 되네!”
“떠이어가 뭔데?”
“있어 그런 거, 오늘 저녁 막걸리 한잔 하자.”
아내는 저 인간이 또 무슨 사고를 쳤나 걱정스레 쳐다봤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행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