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란 존재는?

남자의 삶

by B급 인생

나는 갈대다. 갈대는 물과 땅이 만나는 경계지대에서 살아간다. 이쪽에서도 살고 싶고 저쪽에서도 살고 싶다. 유혹이 많다. 여자의 마음은 갈대라지만 남자의 마음도 갈대이긴 매 한 가지다. 나이가 들면 그동안 쌓아 올린 삶의 내공으로 나머지 삶의 무게를 거뜬히 지탱하며 살 줄 알았다.


하지만 세월이 흘러도 속절없이 흔들리는 모습은 여전하다. 선택의 갈림길에서 포기했던 다른 삶이 한참이나 지난 뒤에도 새삼 아쉬움으로 다가 오기 때문이다. 이젠 내려놓아도 좋을 욕망들을 아직도 붙잡고 있다는 증거이다. 어쩌면 내가 선택한 길에 점점 자신이 없어지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많은 시간, 내가 선택한 삶이 옳은 방향이라 믿어 왔다. 그 정당성을 찾아 나 자신에게 이해시킬 수 있으리라 확신했다.


아직도 이런 삶을 보면 이렇게 살고 싶고 저런 삶을 보면 저렇게 살고 싶다.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은 없다고 했지만, 이렇게 오랫동안 흔들릴 줄 몰랐다. 공자는 그의 50을 ‘知天命’으로 회고했건만, 50을 한참이나 지난 나는 40의 ‘不惑’에도 못 미치고 여전히 흔들린다.


신경림의 <갈대>는 내 마음과 같다. 시인의 말처럼 ‘산다는 것이 속으로 조용히 울고 있는 것이란 것을’ 나이를 한참이나 먹어서야 알았다. 내 몸은 젊은 날이나 지금이나 흔들리는 것은 마찬가지인데, 다만 이제 울음소리가 나지 않는다. 속으로만 울다 보니 가슴에 강물이 흐른다. 바다로 흘러가지 못하는 강물은 출렁이며 강가의 갈대를 마구 흔들어 댄다.


바깥에서 부는 바람에 흔들리고, 안에서 출렁대는 강물에 흔들려도 갈대는 소리를 낼 수가 없다. 겉으로 우는 것은 사나이가 아니라고 배워서 그렇다. 아빠는, 남편은, 장성한 아들은 딸들 앞에서, 아내 앞에서, 노부모님 앞에서 눈물을 보여서는 안 된다고 했다.


소리를 못 내니 그 소리가 안에서 진동하여 몸을 흔드는 것이다. 끝없이 흔들리는 갈대, 하지만 갈대는 휘청일 뿐 쓰러지지 않는다. 아니 쓰러지면 안 된다. 올여름 태풍에 하늘 곧게 뻗은 메타세쿼이아가 쓰러 질 때도 갈대는 용케 버텼다.




요즘 트롯이 대세다. 나도 조항조의 노래 한번 불러보고 싶다. 나도 한번 소리 내어 울고 싶다.


누구나 웃으면서 세상을 살면서도
말 못 할 사연 숨기고 살아도
나 역시 그런 저런 슬픔을 간직하고
당신 앞에 멍하니 서있네
언제 한번 가슴을 열고 소리 내어
소리 내어 울어볼 날이
남자라는 이유로 묻어두고 지낸
그 세월이 너무 길었어

(김순곤 작사, 조항조 노래 <남자라는 이유로> 1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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