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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얼랩 May 05. 2020

갈라디아서와 빅뱅의 태양

매일매일 일상에서 도시계획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갈라디아서 2:20, 개역개정판)


I have been crucified with Christ and I no longer live, but Christ lives in me. The life I live in the body, I live by faith in the Son of God, who loved me and gave himself for me. (Galatians 2:20, NIV)




지도 보는 것이 취미인 사람답게 어제도 사무실 듀얼 모니터 중 하나에 전체화면으로 지도를 켜놓고 보고 있었다. 요새는 웹에서 제공되는 지도의 종류도 다양해서, 전엔 다음 지도나 네이버 지도를 번갈아 보는 정도였다면 이제는 이런 지도 서비스에 각종 데이터가 얹혀져 있는 지도까지 골라서 볼 수 있다. 아파트 실거래가 정보로 유명한 호갱노노나 주거지역의 필지를 선택하면 건물을 시뮬레이션 해서 보여주는, 신기방기한 랜드북이 바로 그런 서비스이다.


호갱노노와 랜드북을 약간 합쳐놓은 것과 비슷한 서비스로 '디스코'라는 서비스도 있다. (이름이 왜 디스코인지 갑자기 궁금하네) 랜드북처럼 지적도의 필지 단위로 정보를 보여주는데, 호갱노노가 아파트 실거래가만 보여준다면 '디스코'는 아파트를 포함한 각종 단독, 연립, 다세대등 주택 전부와 토지, 근생시설, 업무시설 등 주거 외 용도에 대해서도 거래사례를 보여준다. 어제는 '디스코'를 보고 있었다.


(좀 더 확대하면 이런 형식)

  


디스코 지도에서는 실거래가와 함께 해당 지역 내 매물도 시범적으로 보여주는데, 아직 매물 노출의 효과가 검증되진 않았는지(개인적 추측) 매물의 개수가 많지는 않다. 그래도 호갱노노나 네이버 부동산으로 아파트 시세만 보다가 빌딩 수준의 매물까지 위치정보와 함께 볼 수 있으니 나름 재미가 있다.


서울 여기저기를 (마우스로) 휘젓고 다니다가 역시 뜨는 동네를 봐야할 것 같아 성수동과 연남동 일대를 살펴보고, 그래도 결론은 용산이라는 마음으로 한남동과 이태원동 일대를 보고 있는데 동네가 동네인지라 이걸 내가 산다면, 하는 상상 비슷한 것 조차 할 수 없는 가격이었다. 당연하지 뭐. 그래도 어때, 매물을 살펴보았다.


  


화면 하단의 '매물'을 클릭하니 리스트 형태로 정보가 떴는데 다가구 40억, 정형외과 건물 350억, 순천향대 병원 부근 토지 980억원... 980억짜리를 이걸 보고 사는 사람이 있을까, 하는 생각이 잠깐 뭉게뭉게.


그러다가 한남동의 예상가 94억원짜리 건물에 눈이 멈췄다.


  


건물 이름이 THE VIII(갈 2:20), 갈라디아서 2장 20절이었다. 갈라디아서 2장 20절. 성경 중에서도 신앙생활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구절이 아닌가. 예수님의 고난과 죽으심과 부활과 이 모든 것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자의 신앙고백. 어쩌면 많은 기독교인들이 뭐랄까, 약간 인생 verse로 삼고 있는 구절 아닌가. (저는 사 43:19...를 좋아한다는 tmi 드립니다)


이러한 성경구절을 자기 소유의 건물에 붙이는 사람은 대체 어떤 사람일까 궁금해졌다. 축복의 대명사 격인 야베스 빌딩 같은 이름이라면 그냥 그렇구나 할텐데. 고난과 역경을 딛고 믿음으로 부를 일군(대체 그것이 무엇인지 모르겠지만) 사람일까. 갑자기 하나님과 악세사리 밖에 모른다던 남대문 상가의 신실한 크리스천 거상 분의 이야기도 떠오르고.


이러한 호기심과 부러움과 아주 아주 약간의 소망을 품고 트위터에 '예상가 94억' 이미지와 함께 "제가 사겠습니다 ㅠ" 라고 올렸다. 그치 뭐 ㅠㅠ 눈물이지. 새벽같이 출근 준비는 해야하는데 잠은 안 오고~ 새벽 한 시에 이런 트윗이나 올리고~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안녕둔촌주공아파트'님께서 답글을 달아주셨다.


내가 사는 것이 아닙니다.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94억쯤은 사실 수 있습니다...


너무 천재 아니신지?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buy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buy 것이라. 세상에 믿음으로 빌딩 정복! 너무 좋지 않은가.




그렇게 자고 일어난 오늘, 여전히 주인이 누구인지 궁금했다. 그래 할 수 있는만큼 마우스품을 팔아 주인이 누구인지, 왜 이런 이름을 빌딩에 붙였는지 알아낼 것이다! 등기부 등본을 떼어야 하나 뭘 해야하나, 아니다 검색부터 하자, 하고 구글에 빌딩이름을 입력했더니 바로 결과가 나왔다.


"오늘은 아이돌 중에 가장 TOP인 그룹 빅뱅의 멤버 태양의 빌딩 투자사례를 알아보려고 합니다. 빅뱅 멤버중에 가장 먼저 빌딩을 매입하고 결혼도 가장 먼저 하고 좋은 건 가장 먼저 하시네요?? *^^*"



빅뱅의 태양, 동영배씨 소유의 건물이었다.


이런저런 매체를 통해서 독실한 기독교인인 것은 알려진 바였으며 결혼까지 교회에서 했으니 말 다했고. 조금 더 찾아보니 태양이 이 건물을 매입했을 당시엔 '지오브레스 빌딩'이었지만 매입 이후 이름을 바꾼 것으로 보였다. (현재 건축물 대장 상에는 여전히 지오브레스 빌딩임)


그렇다면 갈라디아서 2장 20절이 영배씨가 가장 좋아하는 구절인가. 잠깐 그것까지 찾아봐야 하나 싶었지만, 여기에서 멈출 순 없어. 2016년에 데이즈드 코리아 100호 특집으로 빅뱅 다섯 멤버(탈퇴한 그 포함) 각각을 표지로 한 빅뱅 10주년(...) 화보를 발행했었고 태양 버전의 경우 뒷표지에 갈라디아서 2장 20절이 프린트 되어있다는 것을 발견. 빙고!



태양이 데이즈드 코리아를 태그하여 개인 인스타그램에 올린 사진에도 마찬가지였다. 아마도 화보집 안에 있는 사진이었겠지. (실물 잡지로는 못 봐서 갈라디아서와 관련된 사진이나 텍스트가 더 있는지는 모르겠음)



한편, 이 빌딩은 매입 당시에도 지구단위계획 상 특별계획구역이고 공원부지인데 일부러 공원부지로 보상받을 것을 염두에 두고 산 것이 아니냐, 놀라운 재테크다 하는 기사가 있었다. 당시엔 그냥 그런가보다 하고 넘겼는데 마침 여기까지 다다른 김에 이 부지의 상위계획인 한남지구단위계획을 찾아보았다.


특별계획구역인 것도, 지침도 상 도로와 공원에 걸쳐있는 것도 맞았다. 하지만 공원부지로 수용될 것을 노린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특별계획구역이란 일종의 개발단위를 묶어 지침을 준 것이라 공원이나 도로 역시 지침 성격으로 그려만 놓은 것이고, 그렇기에 영배씨 건물은 정부에서 보상해줘야 하는 대상이 아니라는 것.


향후 특별계획구역(정식명칭은 한남지구단위계획구역 특별계획구역 1)을 제시된 지침대로 개발하게 된다면, 지침도 대로 공원이나 도로를, 공공기여 성격으로 조성하여 기부채납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개발사업을 추진하려면, 태양 빌딩을 포함한 구역 내 토지(약 6천평)가 모두 확보되어야 하기에 그 시점에 민간 사업자가 매입할 수는 있을 것이다. 물론 이런 종류의 사업은 빨리 추진되기 어렵기 때문에 영배씨 입장에서는 그 전에 임대수익과 시세차익을 누리고 파는 것도 가능하다.





부동산 지도에서 시작하여 갈라디아서를 거쳐 빅뱅에 도착. 그것도 다른 멤버의 빌딩이 불법적으로 이용되고 있다는 뉴스가 나오는 중에, 그래서 다들 태양만 남는 것 아니냐, 혹시 태양 소유의 빌딩은 괜찮을까 하는 와중에. 최근에는 이 건물 역시 일부가 등록된 용도와 다르게 이용되고 있긴 하지만 법적으로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라는 기사도 있었다. 다시 생각해보니 왜 디스코에는 이 건물이 매물로 등록되어 있는 것일까. 4월에 등록된 것으로 나오던데 정말 매도 의사가 있어서일까. 찾아보는 건 여기까지.


다시 갈라디아서로 돌아가서. 끝.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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