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청약 로또
"덕분에 당첨되었습니다."
이런 메시지를 보내왔다. 나와 그는 한 달에 한 번 정도 만나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이다. 어느 날인가 그는 전셋집을 구하느라 골머리를 앓고 있다고 했다. 자연스럽게 전세, 월세에서 시작하여 내 집 마련(2021년, 대한민국의 상황이라면 이제 '내집마련'으로, 하나의 단어로 인정되어야 하지 않을까!)까지 이야기가 이어졌고, 나는 그에게 주변 주택을 매수하기 보다 주택 청약을 하는 것은 어떤지 의견을 물었다. 최근의 주택시장 상황과 당첨 가능성을 모두 생각해 본 끝에 나온 조심스러운 질문이었다. 그는 관심이 있다고 하였다. 이후로도 나는 틈틈이 당첨 가능성이 보이는 각종 입주자 모집공고며 관련 정보를 문자로 보내주고 만날 기회가 있을 때에는 긴 시간 고민을 들어주기도 하였다. 특히 그가 궁금해하는 분양 단지나 당첨 가능성이 높은 특별공급의 유형, 당첨 가능성이 높은 평면에 대해서는 적극적으로 의견을 들려주었다.
몇 번은 지나치고 몇 번은 휴일을 맞춰 모델하우스를 찾아가기도 하며 오랜 기간을 기다린 그는, 드디어 수색증산 재정비촉진지구의 재개발 아파트에 당첨되었다는 소식을 보내왔다. 여러 구역의 단지가 한꺼번에 분양하는 바람에 경쟁이 조금 분산된 터였다. (그래서 로또처럼만 보이는 청약에도 전략이 필요하다 말하는 사람도 있다.) 그가 보내 온 메시지의 '당첨'은 이 청약 당첨을 이야기하는 것이고, 그렇게 된 것은 내가 도와준 덕분이라는 것이다. 조금 민망하다고 생각했고, 청약이고 뭐고 이게 다 뭐길래, 싶었다.
그렇지만 아파트 청약 당첨이란, 요즈음의 대한민국에서라면 원하던 학교로의 진학, 원하던 직장으로의 취업, 승진, 이직만큼이나 아니면 그 이상으로 기다리고 반가워하는 인생의 뉴스 아닌가. 나의 민망함이나 순간의 회의감은 잠깐, 인사를 건넸다. "잘 됐어요." 신디, 김신영씨가 진행하는 <정오의 희망곡>에서도 "오랜 기다림 끝에 청약에 당첨되었어요"라는 사연에는 "잘하셨다"는 축하인사와 함께 더 기분내라는 뜻으로 선물을 주더라. 물론 내 집 마련이라는 미션을 클리어해서 일 수도 있지만, (모두가) 시세보다 저렴하게, 수도권이라면 거의 절반에 가까운 가격으로 분양된 단지라는 것을 알아서 그런 것일지도 모른다.
몇 년 전에는 이런 메시지도 받았다.
---
"되면 4억 번대"
강남에 보기 드물게 등장한 개포 8단지 일반분양 청약을 두고 하는 이야기였다. 서울에는 개발 가능한 나대지가 거의 없고, 있다고 해도 규모가 작거나 비주거용 건물을 짓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재개발이나 재건축에 의한 것이 아닌 아파트의 공급은 매우 드물다. 그런데 이 단지의 경우, 당초 공무원 임대주택으로 쓰던 단지를 통으로 건설사가 매입하여 짓는 터라 조합원 분양 없이 약 1700세대를 일반분양만으로 분양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물론 정해진 법령 및 지침에 따른 임대주택은 있다.) 분양가는 당시 주변 단지 시세와 비교하여 4억원 정도가 저렴했다. 그렇게 도착한 메시지였다. 4억원의 로또라면! 당신이라면? 아니, 나라면? 모델하우스 개관 당일에는 대기 행렬만 1km가 넘었고, 평일이었음에도 불구하고 1만5천여명이 방문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상담원과 상담을 받으려면 10시간을 기다려야 한다고도 했다.
그런데 이 곳은 로또이기는 하되, 말하자면 참가비가 필요한 로또였다. 당장 당첨이 된다면 계약금을 내야하고, HUG(주택도시보증공사) 보증은 물론 시공사 자체 보증을 통한 중도금 대출도 불가하므로 중도금 역시 조달할 수 있어야 한다. 즉, 최소 7억원부터 가장 수요가 많은 전용 84제곱미터의 경우 약 10억원이 있어야 분양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도 이러한 자금계획 없이 청약한 사람이 많았는지 당첨자 200여명이 계약금 부족으로 계약을 하지 못 하였으며 이후에도 100여명이 중도금을 연체했다고 한다.
당첨 시 4억원의 차익이 예상되는 로또라는 것도, 그렇지만 최소 7억원이 있어야 로또에 참여할 수 있다는 것도 놀랍지만 가장 놀라운 것은 4억원짜리 로또인 줄 알았던 그것이 입주가 임박한 2021년 현재에는 진짜리얼찐 로또 1등 금액과 같은 로또가 되었다는 것이다. 이 단지의 주동과 부대시설이 열심히 올라가는 동안, 조금 더 일찍 준공한 주변 단지들의 시세 또한 무럭무럭 올라주었기 때문이다. 2018년 3월, 13억3천만원(전용 84제곱미터 기준)에 분양하여 약 17억원에 달하는 주변 단지 대비 4억원이 저렴했다는 이 곳은 주변 단지 실거래가가 24억원이 되며 11억원짜리 로또가 되었다. 그리고 2020년 8월에는 약 30억원에 예외적으로 전매가 허용된 이 단지의 분양권이 거래되면서 17억원짜리 로또가 되었다. (서울시의 경우, 일반적으로 등기 전 분양권 전매는 불가하다.) 현재에도 네이버 부동산에서 "P 17억" 이라는 표기를 확인할 수 있다. 4억원짜리 로또가 17억원짜리 로또가 되는 데에 걸린 시간은 단 2년 5개월이었다. (이 단지 외에도 유사한 형태로 시세차익이 발생한 분양단지가 다수 있었으며, 최근에 입주자 모집공고가 공개된 반포의 재건축 단지 역시 분양가 상한제 적용으로 상당한 규모의 차익이 예상된다는 기사가 연달아 나오고 있다.)
---
이 포스팅의 두번째 문단까지 쓰고 나서 문득 '내 집 마련'이라는 표현의 띄어쓰기가 궁금해져 '내집마련 띄어쓰기'라는 검색어로 구글링을 해 보았다. (틀린 줄 알면서도 쓰고 싶지는 않아서!) 이런 사람이 나뿐만은 아니었는지 아예 기사 하나가 나왔는데, '내 집 마련'이라고 할 때는 '내'와 '집'을 붙여쓰는 관행이 있으며 심지어 '내집마련'으로 복합명사처럼 쓰기도 한다는 것이다. 그래, 나도 '내 집 마련'이 혹시 '내집마련'이 아닌가 싶었어. 그런데, 다음에 이어지는 문장은 이러했다.
"집에 대한 집단적인 소유 욕망이 띄어쓰기 맞춤법을 넘어선 결과일 것이다. '빈 집'대신 '빈집'이 처음부터 맞춤법은 아니었을 테고, '짜장면'이 어느날 '자장면'과 동렬에 올랐듯이, '내집'도 머잖아 표준어로 등재되지 않을까. '내 집'은 사용 개념이고 '내집'은 소유 개념이라는 국립국어원의 뜻 풀이와 함께. 그러나 사용 개념으로서의 집이 어느덧 사멸하고 나면, '내 집'도 결국 사어가 될 것이다."
나는 바로 조금 전에 "이제 '내집마련'으로, 하나의 단어로 인정되어야 하지 않을까"라고 썼는데. 이제 이 이야기는 점점 1절로 끝낼 수 없는 곳을 향하여 가고 있네. 끝.
---
수색증산재정비촉진지구
http://naver.me/5Ujnyjta
디에이치자이개포
http://naver.me/5pORI1pa
<‘내 집’인가 ‘내집’인가>, 한겨레, 2020.7.2.
https://www.hani.co.kr/arti/opinion/column/954703.html
<'디에이치자이 개포' 견본주택 새벽 6시부터 대기…1km 행렬>, 연합뉴스, 2018.3.16.
https://www.yna.co.kr/view/AKR20180316083051003
<강남 로또 아파트' 포기·연체 속출···현금 부자들은 잔치>, 중앙일보, 2018.12.15.
https://news.joins.com/article/2321124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