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공대생 Feb 19. 2022

설렘이란 이름의 감정에 대해서

설렘이 가진 무서움

마음에 폭풍이 휩쓸고 간지 2주정도 지난거 같다. 아직 이것저것 복구하느라 정신이 없는 와중이지만 생활리듬은 점점 본래의 것으로 돌아가고 있는 중이다. 나의 가장 최대의 장점이 멘탈이 강하다는 점이였는데 이번 기회에 나에대해서 다시 생각해보게 되는 좋은 기회였다고 생각한다. 어떤 면이 약한지에 대해서 늦었지만 잘 알게되었으니 손해보는 장사는 아니다. 조금 마음이 힘들뿐 역시나 새로운 경험을 한다는건 소중한법이다. 


나에게 있어서, 직장상사와의 다툼, 친구들과의 갈등, 가족간의 분쟁 뭐 이런 것들은 아무런 영향을 주지 못한다. 아니, 영향이 없다기보단 오래가지 않는다. 빠르면 1,2시간 늦으면 다음날이면 바람한점 없는 호수처럼 잠잠해진다. 현실부정인지, 받아들이는건지, 포기하는건지 옆에서 보면 애매해보이긴하지만 사안에 따라 적절히 분배하여 관리중이다. 그런와중에도 마음 한구석에 숨겨두었던 보따리가 하나있었는데 이번에 그게 열려버린것 같다.


잔잔한 호수에 풀려버린 외래종은 호수생태계를 박살내기 시작했다. 잔잔히 떠다니는 물고기들을 마음껏 먹어치우며 호수를 장악해나갔다. 면역이없는 호수는 하나의 부분으로 받아들이는데 꽤 오랜시간이 걸렸다. 그 외래종은 설렘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었다. 정확히말하면 사람에 대한 설렘이라고 할 수 있다. 학교를 졸업하고, 직장생활을하며 나의 인간관계는 어느정도 완성되어버렸다. 물론 남은 인생동안 만날 사람들에 비하면 한없이 좁은 관계이지만 앞으로 만나게될 사람들이 나의 깊은곳 어느 이상으로 들어올수 있을까 라는 질문에는 회의적이다. 더 이상 순수하게 호감만으로 사람을 만날수있는 시기는 지난것 같다. 그리고 그런 인간관계를 만드는 과정이 여간 어려운게 아니다. 기존 관계를 충실히 유지하는 것만으로도 벅찬 요즘이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도 여자친구에 대한 자리는 여전히 비워져있었고, 채워진적이없었던 이 자리는 나에겐 아직도 생소한 부분이다.


어릴때는 이 빈자리를 어떻게든 채워보겠다고 노력도해봤지만 없던 기간이 점점 길어져 작년 말까지만 해도 기억속에서 지워버린 상태였다. 그런상황에서 소개를 받고 연락하고 만나는 과정에서 설렘이란 감정을 정말 오랜만에 느껴봤던것 같다. 정말 달콤하고 몇주간 온몸과 정신이 붕붕 떠다니는 느낌이였다. 그런 설렘이 손바닥 뒤집듯이 얼굴을 바꿔 나의 모든 좋은 감정들을 갉아먹을때서야 뭔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소개팅이란게 이렇게 무서운건지 이번에 처음알게되었다. 사람이 사람을 만나는데 목적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지 몰랐었다. 한쪽이 일방적으로 목적을 가진것이라면 상관이없는데 서로 같은 목표를 가지고 만났다고 생각했는데 한명이 먼저 접어버린다면 나머지 한쪽이 얼마나 애처로운 신세가 되는지... 알아야만했다. 처음이였던 나는 마지막이 되어서야 알게되었고 그에 대한 대가는 작지않았다.


설렘이란 감정에 취해 뒤도 안돌아봤던 것 같다. 동업자와 창업을했는데 성공만을 바라보다가 동업자와 엇갈려버린 그런 느낌이다. 그래서 결국 창업이 흐지부지 되어버린것 마냥 상실감이 엄청났다. 정말 처음에는 이럴바에야 차라리 다시 몰랐던 때로 돌아갈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판도라의 상자를 열기전으로 돌아가고싶었다. 잊으려고해도 밤마다 떠오르고, 꿈에서도 나오고, 일은 손에안잡히고, 운동이고, 기타고 뭘해도 잊어지지가 않아 집중을 할 수가 없었다. 한주, 두주가 지나면서 설렘을 대체할 수 있는 것을 찾느라 분주했다. 새로나온 게임도 해보고 탈진할때까지 운동도 해보고 이렇게 글도쓰고, 책도읽는 등 내가 동원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다써봤지만 단기간에 잊는건 힘든것같다. 


고작 소개팅이 안된것도 이정도인데 만약 연애하고 헤어진다면 어떤기분일까.. 상상도 하고 싶지 않다. 처음으로 이별하고 술을 진탕마시는 사람들이 이해가 가는 순간이였다. 그 순간 취하는 것만이 가장 잊기 쉬운방법이니깐. 그래도 난 술은 마시지 않았다. 취하면 어떻게, 어디까지 망가질지 가늠이안되었다. 


이렇게 쓰고보니 엄청 웃기긴하다. 연애한것도아니고 소개 받은 사람이랑 찰나의 시간동안 만난것으로 이 난리라니. 누가 보면 몇년을 절절히 연애하다 헤어진것으로 착각할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이번 경험을 통해 설렘이라는 감정에대해 그 감정이 나에게 어떤 영향을 주는지 알게되었다. 감정에 안다는 표현을 하는게 얼마나 이과적인 생각인지는 알지만 어쩔 수 없다. 태생이 이과생인걸. 감정조차 분석하고 적응하려고하는게 나란 사람인걸 어떡하겠는가. 


참 즐겁고, 슬프고, 아련한... 복잡한 몇주간이였다.  



매거진의 이전글 두려움에 대하여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