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백

by 아천


한국화(동양화)의 가장 큰 매력은 여백에 있다고 합니다. 여백은 작가가 그림으로 말하려고 하는 것을 화선지에 나타내고, 부분적으로 공간을 남겨서 작가 자신을 포함하여 그림을 감상하는 사람들에게 각자의 생각을 그 남겨진 공간에 그려 넣을 수 있는 창의적 여유 공간을 제공하고자 하는 배려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작가가 아니라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대체로 우리는 빈 공간이 있으면 그 곳을 채워 넣는 일에 익숙해져 있습니다. 채워 넣지 않거나 비워 놓으면 불완전하고 불안해보여서 무언가로 채워 넣으려고 하는 조바심을 억제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여백 없이 공간을 꽉 채운 작품을 완성품으로 인식하는 습관은 비워 둔 공간을 통해 다양한 상상의 가능성을 차단해 버립니다. 빈 공간은 그 공간을 바라보는 사람의 생각에 따라 새로운 공간이 되기도 하고 쓸모없는 자투리처럼 되기도 합니다. 지금 당장 쓸모없어 보이는 공간도 보는 사람의 인식체계에 따라 새로운 공간으로 변모시킬 수 있습니다. 다양하고 제약 없는 상상력의 도움으로 넓고 높은 미답의 세상이 됩니다.

여백은 영어로 margin이라고 합니다. margin은 이윤(利潤)을 가리키는 말이기도 합니다. 이윤이란 판매가격과 제작비용과의 차이를 말합니다. 작품의 경우 margin은 감상자가 받는 감동(느낌)과 작가가 기대하는 감동(느낌)과의 차이라 할 수 있습니다. 작가가 기대한 것보다 큰 감동을 감상자가 느끼게 된다면, 그 작품은 margin을 만든 셈이 됩니다. margin은 작가의 세상을 뛰어넘는 다른 세상을 가리킵니다. 한국화(동양화)의 작가들은 (표현이 중복되는 느낌은 있지만) 여백을 통해 margin을 만든다고 할 수 있습니다. 서양화의 경우 많은 작가들이 구상(具象 figuratif)보다는 비구상(非具象 non-figuratif) 또는 추상(abstraction)의 형태로 작품의 시각적 한계를 벗어나려고 합니다. 구상화(具象畵)는 대체로 대상물을 완벽하게 나타내기 때문에 해석에 있어서 혼란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대신 작품으로부터 얻을 수 있는 상상력은 그만큼 줄어들게 됩니다. 때때로 비구상은 2차원적인 평면을 사용하여 3차원적인 공간을 나타내고자 하는 노력이기도 합니다. 2차원을 통해 3차원을 만드는 것은 작가의 몫이기도 하지만, 2차원적인 것 또는 3차원적인 것 이상으로 발견해내는 것은 감상자의 몫으로 남겨지기도 합니다.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삶은 항상 불완전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채우지 못한 공간을 남기게 됩니다. 그러나 치열하지만 겸손하게 살아 온 사람들이 남겨놓은 여백은 남겨진 사람들에게 큰 의미와 가르침을 줍니다. 시인 고정희는 사라지는 모든 것은 여백을 남긴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사라진 그것 자체가 우리가 감당하고 있는 삶에서 여백이 되기도 합니다. 그리움이 되기도 합니다. 우리의 삶에서 가장 의미 있는 여백은 아무래도 어머니가 아버지가 우리에게 남긴 여백일지 모릅니다.

<모든 사라지는 것은 뒤에 여백을 남긴다>

고정희

무덤에 잠드신 어머니는

선산 뒤에 큰 여백을 걸어두셨다

말씀보다 큰 여백을 걸어두셨다

석양무렵 동산에 올라가

적송밭 그 여백 아래 앉아 있으면

서울에서 묻혀온 온갖 잔소리들이

방생의 시냇물 따라

들 가운데로 흘러흘러 바다로 들어가고

바다로 들어가 보이지 않는 것은 뒤에서

팽팽한 바람이 멧새의 발목을 툭, 치며

다시 더 큰 여백을 일으켜

막막궁산 오솔길로 사라진다

오 모든 사라지는 것들 뒤에 남아 있는

둥근 여백이여 뒤안길이여

모든 부재 뒤에 떠오르는 존재여

여백이란 쓸쓸함이구나

쓸쓸함 또한 여백이구나

그리하여 여백이란 탄생이구나

나도 너로부터 사라지는 날

내 마음의 잡초 다 스러진 뒤

네 사립에 걸린 노을 같은, 아니면

네 발 아래로 쟁쟁쟁 흘러가는 시냇물 같은

고요한 여백으로 남고 싶다

그 아래 네가 앉아 있는

후인(後人)들은 선인(先人)들이 남기고 간 흔적과 그들이 떠남으로서 만들어진 여백에서 오는 충만함을 통하여 더 나은 삶을 살아갈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후인들도 그 후인들의 발 아래로 쟁쟁쟁 흘러가는 시냇물 같은 고요한 여백으로 남고 싶은 절실함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그것이 더 나은 삶으로의 진전입니다. 더 가치 있는 삶으로 한 발짝 더 나아간다는 의미입니다. 새로운 탄생이 되는 것입니다. 여백은 단순한 미완성으로 인한 것이 아니라 의도적으로 넘겨놓은 여유를 말합니다. 옷을 만들다가 남은 자투리 같은 것이 아닙니다.

살다가 문득 자신을 돌아보는 휴식시간은 여백을 만드는 일과도 같습니다. 지쳐서 쓰러지듯 가지는 여유가 아니라, 자신을 되돌아보기 위해 적극적으로 취하는 휴식으로부터 소중한 깨달음을 얻기도 합니다. 그 깨달음을 이내 곧 잃어버린다고 하더라도 이것이 반복되면 단단한 깨달음의 바위로 될 수 있을지 모릅니다. 삶에 두는 여백은 우리의 삶에 아침의 해를 기다리는 밤과 같은 요소가 될 것입니다.

잎이나 꽃잎, 과실 등이 식물의 몸에서 떨어져 나갈 때, 이들이 연결되었던 부분에 특별한 세포층이 생기는데 이것을 떨켜(absciss layer, 離層)라고 합니다. 떨켜는 식물에 있는 수분이 빠져나가는 것을 막고, 미생물이 침입하는 것을 막아내는 기능을 한다고 합니다. 마치 상처 난 피부에 생기는 딱지와 같습니다. 잎이나 과실은 그들이 나무에서 차지하고 있던 공간을 내어주고 그 나무에 떨켜를 남겨놓아 나무가 상하는 것을 막아냅니다. 어쩌면 인생을 마무리하는 단계에 있어서 남겨놓을 여백은 떨켜 같은 것인지도 모릅니다. 화려한 여름이 지나가고 때가 되면 남겨진 나무가 여전히 잎을, 꽃을, 과실을 맺도록 떨켜를 남겨놓고 떠나가는 자연의 순환은, 뒤를 생각하지 않고 마구 파헤치며 마치 내일은 나와 상관이 없는 것처럼 살아가는 인간의 생활방식에 대해 조용하게 귀띔하지만 매우 강력하게 들려주는 경고와도 같습니다. 나무에게서 배우는 가르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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