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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비전재복 Jul 30. 2023

*나는 敎師였습니다

    쓰담쓰담 나를 응원해(96)


나는 敎師였습니다. 가르칠敎, 스승師 (가르치는 스승이니 어찌 지식만을 전달하는 일에 국한되겠어요?)  

36년간 초등교단에서 아이들과 살았지요. 길다면 길 수도 있는 세월 동안 선생노릇을 다 잘했을 리 있으려고요. 선무당이 사람 잡는다고 열정만 앞세워 학생을 힘들게 하고, 교사 자신도 애먹는 시간인들 왜 없었겠어요? 선생은 이쪽으로 끌어오고 싶은데 학생들은 저쪽으로 한눈을 팔고, 알게 모르게 상처를 준일도 있었겠지요.

하늘 같은 교장선생님이 무섭게 군림하던 시절, 겁 없이 대들기도 했고 억울해하며 견디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안 좋은 몇 개의 기억보다 아이들과 함께 엮어간 시간 속에 반짝이고 따뜻하고 말랑말랑한 기쁨들이 너무너무 많아서, 내 평생 직업이 선생님이었기를 참 잘했다고 생각합니다.


남들이 부러워할 만한 부를 이루지도 못했고, 사회적으로 출세한 사람은 못되었지만 궁핍은 면했으며, 빛나는 작품 하나 써낸 일 없는 무명의 말단문사이지만 꾸준히 시를 쓰고, 잡문이나마 써낼 수 있음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 생각하면 그런대로 괜찮은 삶을 살아온 것 같습니다.


가르치는 일이란 소를 몰 듯 앞에서 끌지 말고 뒤에서 살살 몰고 가야 한다는 것을 경험을 통해 깨닫고, 아주 더디게 날 선 각이 다듬어져 가며 관계와 거리의 유연성이 보일 즈음, 나는 과감히 교단을 떠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좋은 기억만 안고 스스로 걸어 나오기로 했지요.

2007년 명퇴를 신청하고 2008년 2월 말로 자유인이 되었습니다.

나름 최선을 다했다고 자부했으므로 미련을 두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살다 보니 바람처럼 구름처럼 걸림 없이 살아지지만은 않더라고요. 주변에서 가만 놔두지를 않았어요.

배운 도적질이라던가요?

잊혀지지 않을 만큼 교사라는 이름으로 나를 불러내는 일이 생겼습니다. 한동안 기간제교사로 불려 나갔었고, 2014년부터는 평생학습관 글쓰기강사로 지금까지 부름 받고 있네요.


이렇게 다시 남 앞에 가르치는 입장으로 서다 보니 미안한 마음이 종종 있습니다. 젊었을 때 더 공부하고 승진도 해서 좀 더 근사한 프로필 한 줄쯤 마련해 둘걸 그랬다 생각합니다.

뭐 그러나 어쩌겠어요. 뒤늦게 만학의 열정을 불태우는 대단한 사람도 있지만, 놀며 쉬며 느린 걸음으로 남은 생을 살고 싶은 마음이 지배적인데.ㅎ~


70대 노인이 90대 노인을 모시며 정신적 중압감없이 살았다면 거짓말이겠지요.

한집에 모시고 살던 시모님을 보내드리고 마음의 짐을 벗은 지 겨우 넉 달입니다. 아직 초등1학년 손녀를 밤낮으로 돌보는 일은 벗지 못했지만요.


쌓아놓은 화려한 이력도 없고 축적된 지식도 두텁지 않으니 학습관에 공부하러 오시는 분들을 대할 때 마음으로 정성을 다하려 합니다.

가르친다기보다는 경험을 나누고, 경청하고 마음을 열 수 있도록 판을 깔아주는 일에 마음을 쏟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나에게 집중하고 나의 남은 시간을 응원하고 싶습니다.

뒤늦게 시작한 타악기 젬배와 시낭송에도 재미를 붙여가고, 가만 놔두면 한없이 불어날 체중관리를 위해서 일주일에 한 번이라도 음악에 맞춰 신나게 땀 빼는 일도 멈추지 않을 겁니다.



그럴 일도 흔치 않지만, 새로운 인연을 맺는 일은 삼가고 신중해야겠습니다. 내가 감당하기 벅찬 일은 애당초 끊어내야 근심이 적어짐을 알겠습니다.

'때문에'가 아닌 '덕분에'를 마음에 쌓아가도록 스스로를 잘 다스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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