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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비전재복 Sep 03. 2023

* 9월의 문턱을 격하게 넘으며

    쓰담쓰담 나를 위로해(105)


다소 요란하게 조금 낯설게 8월을 빠져나왔다.


10여 일 넘게 코로나처럼 심한 여름 독감을 앓으며 8월 값을 톡톡하게 치르고, 마스크를 떼지 못한 채 26일부터 마구마구 달렸다.

대전 찍고, 광주 찍고, 담양 소쇄원으로 장항 송림으로...



그리고 9월 첫날은 대천 바닷가에 있었다.

마음을 몽땅 털린 밤 파도소리, 아침이 오는 바다의 우람한 품에 안겨 숨이 딱 멎을 뻔했다.


9월의 첫 밤, 생애 처음 발 디뎌본 해변시인학교라는 곳에서 넉장거리하는 낯선 체험도 해봤다는.ㅎ~

잘 외운 詩가 하얗게 지워져서 보기 좋게 미끄러졌다.


그런데 별로 속상하지 않았다.

정일근시인, 공광규시인, 김순진시인, 정영희 스타낭송가의 강의를 지척에서 들을 수 있었고,

보령에 사시는 페친님(알고 보니 보령의 거목이신 상재선생님)을 만나 인사도 나눴다.


하룻밤 동침하는 귀한 인연으로 울산, 인천, 서울 수원 등에서 오신 분들과 만리장성을 쌓았으니 그까짓 시를 잊어버려 미끄러진 일쯤이야 무슨 대수겠는가?


밤 이슥토록 바닷가 모래톱을 간지럽히는 파도소리에 마음을 탈탈 털리며 맨발로 즐거웠다.

8월 마지막 밤을 장식했던 슈퍼문이 아직도 하늘에 떠서 밤을 지켜주고 있었다.

'내일은 새벽에 나오리라!'



밤새 뒤척이며 잠을 이루지 못해서 머리가 조금 아팠지만, 새 날이 열리는 바다의 표정을 포기할 수는 없었다.

가만히 옆사람을 흔들어 깨워주고 먼저 바닷가로 내려왔다.

오! 이 신선함이라니!


새벽이라 그런지 사람도 별로 없고 신발을 벗는 사람은 없었다.

맨살에 닿는 고 보드랍고 기분 좋게 차거운 유혹을 어떻게 떨쳐낼 수 있단 말인가?

나는 주저 없이 신발을 벗어 들고 맨발로 모래밭과 물살을 영접했다.

맨발로 바다로 간 내 발, 내 마음!



우렁각시가 너무 요란하게 9월을 열어젖힌 건 아닌지 모르겠다.


돌아와 세탁기를 돌리고 식사를 준비하고 어린 손녀를 돌보고...

변함없는 일상이 묵은 살림살이처럼 내 손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래, 콧바람도 넉넉히(실은 아직도 많이 부족하지만^^) 쐬었으니, 한층 다정한 목소리로 내 자리를 확인해야지.


"여보, 커피 한 잔 드려요?"


"이쁜 우리 강아지, 간식 먹자!"


달려와 덥석 안기며 목을 휘감는 우리 은성이가 달콤한 멘트로 화답한다.


"할머니, 사랑해요~"


이제 다소 달뜬 마음을 마알간 바람에 흔들어 빨아야겠다.

파란 하늘 흰구름 빨랫줄에 널어 고슬고슬 말려 둬야지!

멀지 않은 어떤 날의 일탈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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