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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비전재복 Nov 15. 2023

*은파호수공원의 이상한 황톳길

황토색깔 시멘트길(114)


맨발 걷기가 전국적인 유행을 타고 있다. 땅에서 올라오는 건강한 기운을 맨발로 걸어서 온몸으로 받아들이고, 맨발을 통해 몸에 쌓인 탁한 기운을 배출한다니 이 얼마나 좋은 일인가?

그것도 탁 트인 자연 속에서 어떤 장비도 필요 없이 맨발로 걷기만 하면, 발바닥의 수많은 혈자리를 자극하고, 땅에서 올라오는 무한한 지력地力좋은 에너지 파동이 내 몸을 들고 나며 심신이 건강해진다 하니 이보다 좋을 수가 없다.

돈이 드는 것도 아니고, 혼자여도 좋고 두셋이 도란거리며 걸어도 좋다.


보드라운 흙(황톳길이면 더더욱 좋음)을 밟으며 문명이라는 이름으로 양말과 신발에 갇혀 지낸 두 발을, 캄캄한 어둠에서 해방시킨다니 이 얼마나 신나는 일인가?

긴 시간이 아니어도 좋고, 옷을 갖춰 입을 필요는 더더욱 없다.

맨발 걷기를 위해 만든 그 황톳길이 은파호수공원에도 생겼다.




군산에는 참 아름다운 공원이 세 군데가 있다.

월명공원, 은파호수공원 그리고 청암산 둘레길이다.

그중 시내 중심부에 있는 은파호수공원은 접근성이 좋아서 시민들이 언제라도 가볍게 산책하기 좋은 곳이다.


봄에는 꿈길 같은 벚꽃길이 펼쳐지고, 여름에는 짙푸른 녹음이 은빛 물결을 감싼다. 가을은 가을대로 겨울은 겨울대로 사계절 시민들과 이곳을 찾는 관광객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월명산과 설림산 등을 거느리고 금강과 서해바다를 조망하며, 산의 능선을 타거나 숲길을 걸으며 산의 정취를 흠뻑 즐길 수 있는 월명공원이 남성적인 대공원이라면, 은파호수공원은 나지막한 산들이 넓고 아름다운 호수를 품고 있어서 호숫가를 굽이굽이 돌며 쉼과 사색을 즐길 수 있는 여성적인 아기자기함을 가지고 있다.


호수의 가운데를 동서로 가로지르는 물빛다리가 시작되는 곳에는 넓은 광장이 있어서 주말은 물론 평일에도 소규모의 많은 공연을 한다.

아름다운 분수쇼와 오색찬란한 불빛이 휘황하게 물빛다리를 밝히는 저녁이면, 은파호수에는 누구라도 가슴설레게 하는 낭만이 흐른다.

호수의 남쪽 가장자리를 따라 데크길로 길게 놓인 별빛다리 이야기는 여기서는 건너뛰어야겠다.



은파 물빛다리 끝 점에서 시작하여 한쪽은 잔잔한 하늘빛 담은 물결, 다른 한쪽은 정겨운 숲 가장자리를 따라 체육공원까지 걷는 구간에 <황토 맨발 걷기 길>이 생긴다는 소식을 듣고 얼마나 기다렸는지 모른다. 그리고 드디어 개통되었다는 소문을 들었다.


며칠 전, 친구 하나를 불러 점심을 먹고 설레며 고대했던 그 황톳길을 만나러 갔다.


오메, 이것이 뭣이다냐?

이런 희한한 황톳길이 있을 수가!


얼마 전에 고창 선운사에 갔을 때 선운사 맞은편 녹차밭 속에서 만났던 그 흙길을 상상하고 기대했던 나는 어이가 없어서 말이 안 나왔다.

색깔은 황토색깔인데 흙이 아니라 황톳빛 시멘트 길이 떡하니 자랑스럽게 펼쳐있었다.

시멘트로 만들어진 길을 구태여 맨발로 걸을 필요가 있는 건지, 색깔은 황토색이니 효능은 같다는 것인지... 속았다는 낭패감이 확 몰려들었다.


그래도 맨발로 흙길을 걸어보자고 나선 시간이 억울해서, 친구는 그냥 신발 신고 걷자고 했으나

나는 양말도 신발도 벗고 그 엉터리 황톳길을 걸었다. 차갑고 딱딱하기만 해서 화가 났다.

이왕에 발바닥은 더러워졌으니 한참을 걸어서 발을 씻는 세족장에 도착했다.

이곳도 어설프기 짝이 없다. 수도꼭지 네댓 개, 돌의자 몇 개...

발을 올려놓고 편하게 씻을 수 있는 거치대는 아예 없어서 수도꼭지와 발과의 거리가 멀고 불편했다.



모르긴 해도 이 알량한 시설물을 설치하기 위해 막대한 돈이 들어갔을 텐데 돈이 아까웠다.

표지판을 보니 이 지역의 뜻있는 분이 기증을 했다고 적혀있었다. 아무리 우리가 낸 세금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해도, 좋은 뜻으로 기증한 분의 큰 뜻이 빛날 수 있도록 행정적 지도나 조언이 있었는지, 그랬다면 이런 졸속시설물로 시민들을 실망시키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번 만들어놓으면 쉽게 바꾸기도 어려울 텐데...

만들기 전에 기증자와 행정관계자 간에 충분한 소통이 있었는지, 하다못해 도내의 선진지 시찰이라도 하고 진행했다면, 이렇게 졸속으로 만들어서 형편없는 황톳빛 시멘트길을 만들어 놓고 , 맨발 걷기 하라고 선심 쓰듯 시민들을 실망시키지는 않았을 것 같다.


아무리 좋은 뜻으로 뭔가를 해놓았다 해도 건성으로 눈 가리고 아웅 식으로 해서는 안될 것이다. 

사람의 마음을 얻는 것은 눈에 보이는 거창한 일보다도  작은 것 하나라도 정성을 들이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한 가정의 일도 아니고, 시민들이 오래 사용할 시설물인데 좀 더 신경을 써서 실용성 있게 만들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다.

이런 짝퉁 황톳길에 고마운 마음이 생기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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