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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비전재복 Dec 13. 2022

*詩가 있는 풍경 (18)

    - 만약에

망가져 보기로 작정하고 내 흉보기에 돌입했다. 가족얘기를 꺼내들자니 밴댕이 소갈딱지같은 내 흉부터 드러나고,

지혜롭게 못 넘기고 상처로 끌어안은 못난 처신머리에 무슨 할말이 있느냐는 지청구가 사방에서 날아오는것 같다.

이왕에 참는 길에 끝까지 참지 무슨 좋은 일이라고 떠벌려서 자기얼굴에 침 뱉는 일을 자초하느냐고 뭐라 해도 좋다.

참고 참고 또 참는 것만이 여자의 길이라고 내 어머니는 가르치셨지만, 이제 봉인을 해제하려한다.

칠십을 훌쩍 넘긴 나이에 구십 넘은 시어머니를 모시고 사는데, 차마 대놓고는 못하지만 이렇게 당신들이 못 듣는 대나무 숲에서 소리라도 질러봐야 오랫동안 막혀있던 숨통이 트일 것 같다.


사람들이 말하는 "나중에 복 받을 것"이라는 말 하나도 고맙지 않다. 내가 있을지 어떨지도 모르는 나중이라는 시공간에 받는 복보다, 지금 내게 필요한 건 따뜻하게 건네는 한마디 위로의 말이며, 내 나이에 걸맞는 평범하고 여유로운 일상이다.

먹고 싶으면 먹고, 먹기 싫으면 건너 뛰고, 어디 건 가고 싶으면 가볍게 떠났다 돌아오고, 앞서거니 뒤서거니 다정한 노부부의 모습으로 여유를 즐기기도 하고...


오래 전에 어머님의 아들로 되돌려드린, 칠십 중반의 의 편인 남자는  오늘도 어머니의 뜻을 받드느라 청년처럼 달리고 있다.



얼마 전에 발표한  詩 '만약에'를 읽고 공감하는 사람들이 꽤 있어서 소개한다.

시 낭송가의 감정을 살린 목소리로 들어보니 근사하게 들렸다.

깊은 뜻이야 있겠는가? 그냥 내 맘이 그렇다는 것이지~ㅎ

 



*만약에   /  전재복



만약에 시간을 거슬러

전생 어디 쯤에 살아진다면

사대부 양반가의 정경부인 따위

나는 싫소


가슴에 불도장을 수천 번 찍어

거북등 같은 딱쟁이에

심장을 가둔 공로로

허울 좋은 또 하나의 족쇄

효자문 열녀문에 갇히는 건

더 더욱 싫소


시간을 거슬러

내 맘대로 살아진다면

詩畵歌舞에 뛰어난 기녀가 되고싶소

自足에 눈먼 사내들 눈 아래에 두고

참 멋을 아는 이 아니면

실눈도 뜨지 않으리


사랑 하나에 목숨걸고

뜨겁게 불타올라 죽어도 좋으리


청암절벽 높푸른 솔이 되어

걸림없는 바람을 품어보고

창공을 찌르는 대나무 되었다가

맑은 곡조 풀어내는

퉁소가 되어도 좋겠소


나 전생의 어디 쯤 살아진다면

너 아니면 죽겠다는

당신을 꼭 만나

빠꿈살이같은

철부지로 살아도 좋겠소

욕심없이 소박한 사랑에

눈 멀어 살아도 좋겠소


https://youtu.be/aSw0KrApeL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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