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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비전재복 Dec 27. 2022

*새해를 주시려거든

    - 시가 있는 풍경(27)

*새해를 주시려거든  /  전재복



넓지도 않은 땅덩어리

어디는 저수지 바닥이

늙은 나무 껍닥같이 쩍쩍 갈라지고

어디는 느닷없는 물폭탄으로 난리가 아니네요


묵은 해 쓸어 담고 새해를 주시려거든

제발 그러지 마세요

비도 골고루 내려주시고

햇살도 적당히 보내주셔서

불쌍한 사람들 자꾸 울리지 마세요

벼랑으로 내몰지 마세요

피해는 늘 없는 사람들 차지네요

권력이든 돈이든 많이 가진 사람들은

하늘님도 살살 비켜가더만요


섬기는 신이 딱히 없어서

그냥 하늘님 땅님 조상님께 부탁드려요

뭇 사람들에게 가없는 사랑과 자비를 베푸시는

예수님 부처님 성모님도

외면하지 말아주세요


나랏님 코빼기는 어디 붙었는지 몰라도

낮에는 일하고 밤 되면 잠자고

묵묵히 제 할 일 찾아 하며

거칠어도 먹을 수만 있다면

식솔들 뉘일 방 한 칸만 있으면

자식 커가는 재미로 살던 때가 태평성대라 하데요

콩 한 쪽도 나누며 살았데요


그런데 지금은요

가진 것은 너무 많은데

더 가지려고 눈이 붉고

남의 것도 뺏어다 제 앞에 놓느라 숨이 차데요


하늘님 땅님 그 밖의 전능하신 어른님

새해에는 사람들 마음 속에

순한 강물이 흐르게 해주세요

참지 못하는 조급함도 눌러주시고

벌컥벌컥 치솟는 분노도 잡아주세요.

생명을 가볍게 여기지 않게 해주시고

서로를 안쓰러이 여기게 해주세요


첫 말문을 여는 갓난 아기의 어휘처럼

간결한 말로도 소통하게 하시고

수없이 넘어지다 첫 걸음 내딛는 환희에 찬 아이의 성취처럼

능력만큼 일하고 일한 만큼 인정받게 해주세요

그러나 청년의 꿈은

드높고 멀리 가져도 좋다고

북돋아 주세요



한해의 끝자락에 서면 누구라도 글로든 마음으로든 반성문 비슷한 걸 쓰지 않을까 싶다.

나 또한 연초에 먹었던 마음대로 잘 걸어왔는지 찬찬히 되짚어 본다.

크게 이룬 것도 없지만 왕창 어긋난 것도 없으니 무난하게 살아왔다고 본다.

어쩔 수 없이 또 한 해 만큼 낡아졌겠지만 ^^


다시 미개봉상태의 새해가 문 앞에 이르렀다. 마음 깃을 여미고 겸허히 맞아 들여야겠다.


어떤 神도 나의 기도를 우선적으로 들어줄 만한 든든한 빽은 없지만, 사회적 규범을 거스르거나 인륜적 도리를 배반하지 않았다는 자긍심으로 가만히 두 손을 가슴에 모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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