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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길에 들면

한 생이 간다(214)

by 봄비전재복


*꽃길에 들면 / 전재복



너무 환해서

가슴이 터질 것 같다


첫사랑

그대 내 앞에

우뚝 섰던 날처럼


나는 이렇게 멀리 왔는데

사랑아

너는 왜 거기 그대로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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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이 더디게 품을 열더니 바쁜 몸짓으로 꽃들을 마구 밀어낸다.

어서 나가라고 나가서 세상의 그늘을 걷어내라고!

기다렸다는 듯 봄꽃들이 우우우 파도처럼 밀려 나온다.

눈치 보며 다문다문 피어나는 복수초, 봄까치꽃을 신호로, 산수유 목련 개나리 동백 복사꽃 앵두꽃 진달래 명자꽃에 이르자 벚꽃이 축포를 쏘아 올리면 세상은 아득한 꽃바다가 된다.

키 큰 나무들 밑으로는 냉이꽃 광대나물 민들레 코딱지나물, 이름 모를 풀꽃들...

뭐니 뭐니 해도 그 절정은 아마도 벚꽃나무의 꽃불이지 싶다.

사람들은 참지 못하고 벚꽃나무 아래로 홀린 듯 쏟아져 나온다.


우리 집은 은파호수공원을 깊숙이 통과하는 곳에 자리하고 있어서 따로 꽃놀이를 가지 않아도 시내 쪽에 일을 보러 나가려면 꽃터널을 지나가게 된다.

이것이 무슨 복인가? 사계절 누리는 이 축복에 하늘님 땅님 조상님 모든 신께 감사하다.


그런데 최근 들어 호수공원으로 슬금슬금 밀고 들어오는 아파트들이 여간 거슬리는 게 아니다.

이러다 덩치 큰 괴물들이 좀비처럼 호수공원을 먹어치울까 봐 걱정이 크다.

왜 시민들의 귀한 숨통인 공원 안으로 아파트가 파고들도록 허가를 내주는지 알 수가 없다.

들리는 말에 호수뷰를 프리미엄으로 깔고 앉은 아파트 가격이 7억대를 웃돈다니,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비싸봐야 3~4억으로 알고 있었는데 이런 난리판이 벌어졌다.

인구는 크게 늘지 않는데 집 값만 솟는 모양이다.


시골살이를 하면서 한적하고 아름다운 공원 길을 오가는 일이 더없이 행복했는데, 급격히 늘어난 자동차들로 서서히 몸살을 앓을 것 같은 불안감이 몰려온다.



지금은 수많은 꽃들을 휘하에 거느린, 벚꽃이 만개한 4월이다. 꽃을 좇아 꽃이 피는 곳이면 어디나 자동차와 사람들이 도로를 메울 것이다.

차를 타고 지나는 꽃물결보다야 못 하지만, 나는 우리 집 뜨락에 핀 왕벚나무 꽃그늘 아래 서서 꽃우산을 우러르며 나른한 꿈에 젖는다.



백목련은 눈물처럼 뚝뚝 지고 벚꽃 너는 찬란하다.

한 생이 오가는 길목, 가슴 저리게 아름다워 눈물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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