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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치아, 슬픈 사랑의 종말

*실화를 바탕으로 한 비극(221)

by 봄비전재복



스승의 날인 15일, 생존해 계신 두 분 중, 한 분의 은사님 타계소식을 듣고 울적한 마음이 쉽게 가시질 않는다.


어제는 내 마음 같이, 아침부터 날씨가 흐리더니 점심 무렵부터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심란한 마음을 떨쳐내려고 몇 날 며칠 미뤄뒀던 장농이나 정리하기로 했다.

대형 비닐봉지 4장을 가져다 놓고 우선 한쪽 농 속에 켜켜이 쌓아놓은 옷가지를 꺼내 놓고 보니 와! 많아도 너무 많다.

막상 입으려면 입을 게 없어서, 늘 입던 옷만 번갈아 입었는데, 입지도 쓰지도 않는 것들을 왜 이렇게 쌓아 두었을까?

매번 버리자고 해도 아까워 못 버리던 것들 이번엔 작심하고 버리기로 했다. 준비한 4개의 봉지가 꽉 찼는데도 아직 멀었다.


휴대폰 문자 들어오는 소리에 확인을 해보니, 글쓰기 단톡방에 금일 저녁 7시 30분 오페라 티켓 필요한 사람 손들라는 문자가 떴다.


밖에 추적추적 비는 내리고, 벌여놓은 일은 아직 멀었는데, 시간은 4시를 향해가고...

그래! 맘도 울적한데 가보자 싶어서 티켓을 주시겠다는 김동*선생님께 전화를 걸었다.

티켓 두 장을 얻기로 하고, 늘어놓은 옷가지는 대충 장농 속에 다시 밀어 넣었다.


남편은 비까지 오는데 오페라구경? 당연히 싫다 하고, 퇴근 준비하고 있을 딸에게 전화했더니 바로 OK다.

빗줄기는 더 굵어졌지만 무슨 상관이랴!



<람메르무어의 루치아 Lucia di Lammermoor>

출연진의 프로필이 화려하다.


이 작품은 스코틀랜드의 작가 월트 스코트(Sir Walter Scott.1771~1832)가 실화를 바탕으로 쓴 소설 <라머무어의 신부>을 토대로 대본작가 실바토레 카마라노가 이탈리아어로 오페라 대본을 썼다.


스토리는 대충 로미오와 쥴리엣의 이룰 수 없는 사랑이야기와 비슷하지만, 루치아는 그 분위기가 훨씬 어둡고 음습하다.


람메르무어의 젊은 영주 엔리코는 기울어 가는 가문을 일으키기 위해 여동생 루치아를 부유한 세력가 귀족 아르투르와 결혼시키려 한다.

그러나 루치아에게는 따로 사랑하는 연인 에드가르도가 있고, 급한 일로 프랑스로 떠나는 그에게서 결혼을 약속하는 반지를 받았다.

에드가르도는 '람메르무어가' 와는 원수 집안이었으니, 오빠 엔리코는 누이동생 루치아와 에드가르도의 사랑을 결코 용납할 수가 없다.


강압과 속임수로 루치아는 마음에도 없는 아르투로와 결혼하게 되고, 뒤늦게 피로연장에

루치아의 연인 에드가르도가 들이닥친다.

사랑의 약속을 지키지 않은 여자라고 오해한 그는 루치아의 손에서 반지를 빼앗아 집어던지며 비난한다.

엔리코와 그 집안사람들이 에드가르도를 죽이려 하자 정신이 없는 상황에서도 루치아는 그를 살려달라고 애절하게 외친다.


결국 에드가르도는 살아서 그곳을 빠져나가고 사람들은 축제를 이어가지만, 첫 날밤 신방에 든 루치아는 새신랑을 칼로 찔러 죽이고 실성한 체 연회장으로 나와 광란의 아리아를 부르다 칼로 목을 긋고 쓰러진다.


한편 슬픔과 좌절에 빠져, 엔리코와 결투의 시간을 기다리고 있던 에드가르도는, 루치아가 첫 날밤 신랑을 죽이고 그녀도 죽어가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오열한다.

결국 루치아의 죽음에 에드가르도는 '날개를 펴고 하늘로 날아간 그대여'를 노래하며, 단검으로 자신의 가슴을 찔러 루치아 곁으로 간다.



무대조명은 시종 어두웠다.

출연 배우들의 복장도 검거나 회색이거나 흐린 보라계열이어서 무거웠다.

딱 한 번 루치아가 흰색 웨딩드레스를 입고 나오지만, 그것도 금방 피로 얼룩진 옷으로 바뀐다.


아! 정말 미안하고 창피하지만, 그 어둠을 틈타 무대 위에서는 슬프고 비장한 이야기가 전개되는데, 나는 깜빡깜빡 졸다가 깨다가를 반복했다는... !!


사실 은사님 타계소식에 상심이 너무 컸었고, 무더기로 쏟아져 나온 장농 속의 물건들이 나를 지치게 했었다.


어쨌든 비몽사몽간에 극은 끝나고, 출연진들이 모두 나와 인사를 했고.

끝날 것 같지 않은 박수와 '브라보'가 대공연장을 가득 메웠다.

(공연 중에는 촬영금지였기에 얼른 폰카메라를 꺼내 끝인사 장면 몇 장 찍었다.)


주차장으로 나오니 번갯불이 번쩍번쩍하고 장대비가 쏟아졌다.


하룻밤 자고 나니, 바람은 살랑살랑~

초록이 너무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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