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를 보내며( 222 )
유난히 빽빽하게 들어찬 섬기고 기념해야 할 날들이 많았던 달, 퍽이나 무거웠을 짐을 군말 없이 안고 업고 손 잡아서, 꼭 맞는 그 자리에 내려주고 개운한 얼굴로 서 있는 5월을 보낸다.
콧등에 송골송골 땀방울은 맺히지 않았는지, 종종걸음 치느라고 발바닥도 뜨거웠을 텐데...
애썼다고 고마웠다고 가만히 두 팔 벌려 안아주고 싶었는데, 등이라도 가만가만 쓸어주고 싶었는데...
아! 다행이다. 내 맘을 읽은 듯, 한 사흘 빗줄기가 다녀갔다. 희뿌옇게 시야를 가리던 미세먼지, 노랗게 쌓이던 송홧가루, 눈발처럼 날리던 나무들의 홀씨까지도 깨끗하게 씻어 내렸다.
온 세상의 초록을 초록답게 닦아주었다.
좍좍 세찬 빗금을 그으며 내리는 빗줄기에 묵은 먼지로 숨 막혀하던 방충망과 유리창까지 시원하게 때를 벗고, 까닭 없이 무겁고 우울하던 내 맘도 한 꺼풀 맑아졌다.
더러 사람이 예측하지 못한 허술한 곳이 비 피해를 입은 곳도 있었지만, 어쨌든 주어진 책임을 성실하게 수행하고 떠나가는 5월과, 잔치마당의 끝자락을 말끔히 설거지한 빗줄기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밤새 드리워진 어둠을 걷어내고 맞이한, 비 개인 아침 풍경은 그야말로 맑고 싱그럽고 찬란했다.
살랑살랑 불어오는 바람결에 초록잎새마다 내려앉아 반짝이는 햇살, 깨끗하게 빨아진 상쾌한 공기, 멀리 가까이 뻐꾸기와 작은 새들이 주고받는 지줄거림, 수탉이 훼치며 때를 알리는 정겨운소리...
오월이 남기고 간 여리고 싱그럽고 사랑스러운 색깔과 소리와 생김새를 그대로 받아 안고, 호국의 달 유월이 장미 울타리를 넘는다.
유월이 들어와 문패를 달고나면, 이제 숲은 더 깊어지고 나무마다 더 넓게 그늘을 드리울 게다.
들판은 날로 푸르게 윤기를 낼 것이고 생명 있는 어린것들은 쑥쑥 자랄 것이다.
다시 똑같은 오월을 만날 수는 없겠지만, 닮은 꼴로 찾아올 또 다른 5월을 기다리며 아쉬운 작별을 적는다.
그리고 또 하나의 새 페이지를 열어 금계국 망초꽃 환하게 깔아놓고, 장미 울타리에 앉은 유월을 조용히 손짓해 맞아들여야겠다.
(이 글은 2년 전에 쓴 글이다. 그때는 브런치를 몰랐던 때라 카카오스토리에만 썼는데, 오월을 보내는 내 맘이 잘 담겨있어서 이곳에 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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