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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비전재복 Apr 09. 2023

*나의 시모님, 故 양정임여사

     쓰담쓰담 나를 응원해(63)

(따뜻하게 위로해주신 많은 분들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거리마다 온통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더니 한사흘 고운 봄비에 꽃잎이 날개를 접은 나비인 양 하늘하늘 땅으로 내려앉았습니다.

그러나 은파 호반길은 아직도 반 넘어 벚꽃 차일이 드리워져 있었네요.  어머님 가시는 길을 배웅이나 하려는 듯이요.


거의 한 달 가까이 병원에서 수술을 기다리며 애를 태웠고, 겨우 수술까지 받았는데...

골절된 부분은 수술이 잘 되었다는데도 의식은 영영 못 깨어 나신 회생가망이 없다는 병원측의 통보에 기가 막혔습니다.

고령에 오랜시간 병고에 시달려 체력이 너무 떨어진것 같았습니다.

심장판막 시술까지는 잘 견디셨고 예후도 좋았습니다.

퇴원하셔서 세 끼 식사 꼬박꼬박 비우셔서 얼마나 다행인가  싶었습니다.

그러다가 예기치않은 골절상을 입고 코로나까지 서 힘든 시간을 견디셨습니다.

그렇게 골절부분에 대한 어떤 조치도 받지 못한병원에 3주 넘게 입원해 계셨습니다.


어머님은 당신을 자식이 버린 줄로 오해하시고, 몸부림을 치고 소리를 지르고 몸에 부착된 소변줄 등 호스를 뽑아버려서, 병원측의 요청으로 하는 수없이 손발을 묶어야는 어이없고 참담한 대우를 받아야 했습니다.


여러가지 환자의 몸상태에 맞춰 수술날짜가 계속 밀리다가 3월31일에야 고관절 골절수술이 진행되었답니다.

그리고는 영영 의식을 회복하지 못 하신, 6일간이나 중환자실에서 가족의 면회도 맘대로 못하고 격리되어 계셨습니다.

결국 회생이 어렵겠다고 요양병원으로 모시면 좋겠다는 병원측의 선심(?)에, 불야불야 집에서 가깝고 깔끔한 요양병원을 알아본 후, 4월6일 중환자실을 벗어났습니다.


의식은 깨어나지 못 했지만 치렁치렁 매단 줄을 떼고, 한 발자국이라도 집 가까이 모셔오기 위해, 요양병원으로 거처를 옮겨드렸네요. 그런데 옮겨드리고 불과 서너시간 만에 어머님께서는 큰아들과 막내아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조용히 숨을 거두셨습니다.

한식이자 청명인 4월6일 밤이었 습니다.

하루 사이에 대학병원, 요양병원, 결국엔 장례식장으로 세 번이나 거처를 옮기시느라 얼마나 힘드셨을까요? 기력도 다 소진하신 망백의 어머님이...


그리고 어제 봄비가 쓸어간 차분한 봄길을 달려 아침일찍 승화원으로 모셔서 이승의 무거운 옷을 벗으셨습니다.  구십 여 성상 움켜쥐고 오신 무거운 업보가 활활  불꽃이 되어 한 줌의 재가 되셨습니다.


돌아보면 시어머니와 며느리로 만나 부대끼며 살아온 세월이 어느덧 마흔 일곱 해입니다.

열여덟 살 나이 차이인 며느리를 보셨으니 동생같기도 했으련만,

쉽게 곁을 내주시지 않는 어머님과, 살림에 서툴고 몸도 약해 빠진데다 달랑달랑 귀엽게 다가서지 못하는 며느리~ 어렵기만 했었습니다.



애증의 관계!  

젊어서는 이 단어조차 생각나지 않았는데, 일흔이 훌쩍 넘어 이제와 생각하니 참 적합한 단어인것 같네요.

맏며느리 자격이 너무 부족한 사람이 직장과 육아와 가사를 책임지며 사는 일은 정말 쉽지 않았습니다.

한참 젊고 고우신 어머님과

(어머님도 어려서는 가난때문에 고생을 하셨다 들었습니다.), 생활의 무게에 짓눌려 비쩍 마른 며느리~ 상상이 안가겠지만, 난민같은 몰골의 애기업은 여자의 사진이 서랍속 어딘가에 아직  쳐박혀 있을 겁니다.


어쨌거나 홀로 남으신 어머님을 우리 집으로 모셔서 완전한 합가를 이룬지 올해로 10년이 되어갑니다.

그런데 10년을 다 못 채우시고, 이 봄에 어머님은 17년 전 떠나가신 아버님께로 가셨습니다.


임실 호국원으로 향하는길, 길가의 벚꽃나무들은 어린 새의 부리같은 연초록 잎새와 섞여 절반 쯤 남은 꽃송이들을 간추려 손을 흔들고, 멀리 스쳐가는 산등성이엔 산벚꽃이 환하게 피어 있었습니다.


요양원은 죽어도 싫다 하시던 어머님, 당신의 소원대로 요양병원에는 겨우 서너시간 머무셨다 길을 뜨셨습니다.

생전에 그렇게도 사랑하고 좋아하셨던 아버님 곁에 누우셨으니 얼마나 행복하실까요. 탁 트인 전망 꿈의 정원같은 호국원에서 아버님과 손잡고 걸으시며 도란도란 밀린 얘기도 나누시고 더없이 행복하시겠지요.



황망히 어머님을 떠나보내고 내가 맞이할 시간과 공간들이 한동안은 많이 낯설듯 합니다.

장례를 치르며 좀더 다정하고 살갑게 다가가지 못했던 지난 날의 후회가 물밀듯 밀려와 많이 울었습니다.

한집에 살며 미운 정 고운 정이 든다는 말이 맞나봅니다.

끝내 시원스레 마음을 열어주지는 않으셨지만, 이제부터 웬지 큰며느리의 앞길을 환히 열어 주실것 같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호국원으로 출발하는 날 아침, 집에 급한 볼일이 있어서 급히 차를 운전하고 오가는데, 어쩌면 그렇게 한 번의 막힘없이 신호가 딱딱 떨어지는지, 누군가 앞장서서 길을 열어주는거 같았거든요.


故 양정임 여사~ 나의 시어머님, 의식이 살아 계실 때는 언제나 곱게 화장 하시고, 예쁘게 치장하는 것을 무척 좋아하셨는데,

고운 모습 그대로 아버님과 만나 행복하시기 기도드립니다.

편안히 영면하세요. 어머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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