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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비전재복 Nov 29. 2022

*詩가 있는 풍경(6)

     - 나무의 지문


*나무의 指紋 / 전재복



무심한 비질에

저문 가을이 내몰린다


설운 이별에

몇 날을 울어 붉은 눈자위,

태생적 천식때문에

쌕쌕대는 기침으로

노랗게 뜬 얼굴,

겁없이 뛰어내려

건들대는 초록의 허세까지

유장한 나무의 지문들이

한곳에 모였다

저마다 빛나는 이력을 들이대며

부시럭거린다

그래도 아직은 아름답구나!


누군들 빛나는 시절이 없었을까


각각의 고단한 생애

고개 끄덕이며

좁은 자리 더 당겨

곁을 내 줄 즈음

우리도 서로

굽은 등을 쓰다듬겠지


끌어안은 시간을 버무려

헤진 지문이 거름으로 승화될 때

온몸에선 달큰한 향기가 날까?

뽀골뽀골 옹기항아리에

술 익는 냄새같은


.<2020년 발표작품>

(떨어져 누운 계절의  더께 위에 내 그림자 포갠다. 고창선운사에서)

***************************************

마당 가득 떨어져 누운 낙엽을 한쪽으로 쓸어모았다.

낙엽으로 내려 앉기 전, 초록의 싱그런 잎사귀라 불리며, 빛나고 당차고 아름다웠던 시절이 있었으나, 영광의 무대는 막을 내리고 갈채도 끝났다.  


이제 조용히 고개를 숙이고 본향으로 돌아갈 채비를 한다.

살과 뼈가 썩어서 거름이 되고, 한 점 남김없이 다 주고 스러진다면 그 또한 눈물겨운 사랑이 아닐지...


  (그대여, 그러면 안녕! 아름다운 나의  날들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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