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봄비전재복 Jun 10. 2023

*은성이 가라사대

쓰담쓰담 나를 응원해(81)




"건강 챙기시라고 드리는 거잖아요?"


허~참! 기가 막혀서...

일곱 살짜리 아이가 하는 말치고는 너무 여물었다.


아침에 귀찮기도 하고 딱히 다른 재료가 없어서 양배추를 채 썰고 납작 납작 썬 오이를 소스에 버무린 너무 단출한 샐러드를 놓고 오가는 말이었다.

김치, 꽈리고추조림, 우엉조림...

가지 안 되는 반찬이 두 채소다.

샐러드를 달랑 한 젓가락만 덜어가는 남편에게 좀 더 드시라고 말하자 "채소도 너무 많이 먹으면 안 좋다"라고 하시는 할아버지의 말씀에 똑순이 은성이가 거들고 나선 것이다.


"오호라!  그런 것이야?"

그래서 또 한 번 웃음 양념을 얹은 말 한 접시 추가했다.


초등학교에 들어가면서 요즘 들어 은성이의 어휘가 눈에 띄게 늘어났다. 자기주장도 더 강해지고 자기 생각을 분명하게 어필한다.

등교준비를 하면서 그날의 옷차림과 머리스타일을 가지고도 할머니와 실랑이를 한다.


은성이의 지나친 스마트폰 사용문제, 달고 짭짤한 스낵류의 과잉섭취 문제 등은 할머니와 할아버지의 이견 때문에 늘 티격태격하는데, 이럴 때는 찰싹 할아버지 편에 서서 제 실속을 챙기는 얄미운 녀석!


할머니가 언짢은 기색인 것 같으면 슬쩍 다가와서

"할머니 사랑해요~" 하면서 귀여운 두 손으로 하트를 날리거나 품을 파고드는 내 사랑 은성이~


행여라도 조부모의 무조건적인 사랑으로 버릇없는 아이로 자랄까 봐 남편과 나는 반대편으로 나누어 맡은 역할에 충실해야 한다.

손녀의 말이라면 무조건 "yes"를 날리며 무한 사랑을 주는 할아버지와, 때로는 눈물이 쏙 빠지게 야단을 치고 일거수일투족에 매서운 감시의 눈초리가 따르는 할머니 사이에서 영악하게 줄타기를 잘하는 미운 일곱 살 우리 은성이!


종일 쫑알거리고, 낮잠도 없이 힘이 넘치는 아이, 밤이면 옆에서 쌔근쌔근 잠든 아이의 작은 엉덩이와 등을 토닥거리고, 가슴에 안기는 한없이 보드랍고 따뜻한 느낌에 행복해한다. 햇살처럼 환하게 깃드는 이 충만한 기쁨에 한없는 사랑과 감사의 마음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할머니는 은성이 앞에서 훈육부장처럼 눈에 힘을 줄 수밖에 없다.


거절당할 만한 요구사항을 슬쩍 흘리고는, 할머니나 고모가 브레이크를 걸면


"그건 할아버지께 한 말이거든요?"


"그건 고모한테 한 말이 아니거든요?"


하고 엎어 친다. 여지없이 할머니의 불호령이 날아간다.

고운 말, 예의 바른 태도에 어긋나는 일을 즉시에 바로잡아 주는 일 또한 훈육부장이 할 일이므로!



알맞게 여문 꼬투리 속의 예쁜 완두콩을 까면서도, 은성이의 재잘거림과 깔깔대는 웃음소리가 옥정리 뜨락에 환하게 번져나갔다.


"아이코, 완두콩이 또 도망쳤어요. 이번엔 할머니 무릎 밑에 숨었어요.ㅎㅎㅎ~"


"아이 참, 이번엔 쇼파 밑으로

굴러갔어요."


도망치고, 높이 뛰고, 날아가고, 굴러가고, 숨고... 은성이의 말 차림은 끝이 없었다는  ~^^



keyword
작가의 이전글 *현충일 미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