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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Jbenitora Sep 03. 2023

갑자기 찾아온 공황장애

숨이 잘 쉬어지지 않았다. 방문을 열었다. 무작정 뛰었다. 굽이진 골목길을 돌았다. 큰길이 나왔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보였다. 멈췄다. 허리를 굽히고 서서 무릎에 손을 올렸다. 고개를 올려 바삐 걷는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심호흡을 하였다. 비로소 마음에 평화가 찾아왔다.


한국 땅을 다시 밟은 지 3개월째가 되자 괜스레 마음이 급해졌다. 공무원 공부는 내 열정을 전혀 깨우지 못했다. 세계를 상대로 영업을 하거나 아니면 사람들을 깨우치고 가르치는 지식 서비스 직종에서 일을 하는 것이 다음 계획이었지만 그런 곳은 날 받아주지 않았다.


모 통신회사는 서류를 통과하고 1차 전문성 테스트, 2차 적성검사까지 통과하였으나 최종 면접에서 떨어졌다. 모 의류회사는 서류와 1차 면접까지 통과하였으나 2차 임원면접에서 중국어를 잘하는 나보다 8살 어린 여직원을 제칠 수 없었다. 그 면접장에서 한 임원이 나에게 한 질문은 아직도 그 답을 하기 곤란하다.


"OOO 씨는 4년이 넘는 직장 경력이 있으신데 해당 분야로 가시지 않고 굳이 저희 회사에 들어올 생각을 하신 이유가 있습니까?"

"저는 더 넓은 세상에 대한 동경이 있었고 국내와 다른 환경을 경험하기 위해 일과 여행을 병행하며 지난 2년을 해외에서 보냈습니다. 제가 경험한 직장생활과 해외에서의 경험을 가장 잘 활용할 수 있는 곳이 이곳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우리가 채용을 한다고 해도 현업에 가시면 선배들이 OOO 씨보다 나이가 더 적을 텐데 잘 적응할 수 있겠어요?"

"네, 저는 해외에서 나이가 10살도 더 어린 친구들과도 잘 어울렸습니다. 단체 생활에 잘 맞출 수 있습니다."

"아니, OOO 씨 말고 그 선배들 말입니다."

"네? 선배들이 저에게 말입니까?"


나는 그 얘기를 듣고는 머릿속에 아무것도 든 것이 없는 사람처럼 멍해졌다.

'내가 선배의 입장이 되어서 대답을 하란 말인가?'

자신 있는 목소리로 거침없이 대답을 해야 하는데 머리가 하얬다. 

'내가 선배라도 나보다 예닐곱 살 많은 신입이 들어오면 당황스러울 거야!'

전혀 생각지 못한 질문에 한 대 맞은 나는 결국 중언부언하면서 "선배들도 제가 잘 따르고 열심히 하면 시간이 지나면 인정해 주지 않을까 합니다."라는 요지의 말을 뱉었다.


며칠 뒤 당연하듯 날아온 불합격 통보 문자에 마음이 급 울적해졌다. 어디로든 가야겠다고 생각하고 집을 나섰다. 그동안 취업걱정하느라 서울에 있으면서 한강도 제대로 보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하철을 한번 갈아타고 6호선 월드컵경기장역으로 갔다. 거기서 조금만 걸으면 하늘공원이었다. 쓰레기 매립장 위에 세워진 공원이라는 의미도 있지만 거기서 보는 한강의 물줄기는 호쾌했다.


머리카락을 휘날리게 하는 거센 바람에도 한참을 강을 바라보며 서있었다. 강의 북쪽과 남쪽에 펼쳐진 빽빽한 빌딩숲을 보면서 인구 천만명이 사는 서울 땅에 나를 받아줄 회사 하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씁쓸했다. 공원을 내려오면서 어디든 취업부터 하고 보자고 다짐했다. 업종과 연봉에 관계없이 최대한 낮은 자세로 철저한 을의 처지가 돼야만 하나 싶어 스스로가 처량하게 느껴졌다.


지하철 역사로 들어가 불광역으로 가기 위해 올 때와 반대방향의 승강장에 섰다. 금방 지하철이 들어왔다. 자리가 많이 비어있는데 서있는 사람도 몇몇 보였다. 문 옆자리가 비어있길래 앉았다. 열차는 앞뒤시간을 맞추려는지 바로 출발하지 않았다. 


그때 갑자기 가슴이 꽉 막힌듯한 기분이 들었다. 무언가가 가슴을 짓누르는 느낌과 동시에 구토가 나올 듯 어지러웠다. 곧 문이 닫힌다는 안내가 나왔다. 문이 닫히면 객차에 갇혀서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문이 치익하며 닫히려는 순간 용수철처럼 밖으로 튀어나갔다.


열차는 출발했고 나는 승강장에 서서 식은땀을 흘리고 있었다. 객차 밖으로 나오니 답답했던 기분이 좀 풀렸다. 벤치에 앉아 태어나서 처음 느껴 본 이 느낌에 대해 생각했다.

'이게 공황증상이라고 하는 것인가?

'나는 다음 열차를 탈 수 있을까? 집까지 걸어갈까?'

열차 몇 대를 그냥 보내면서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나니 몸과 마음이 편해졌다.


집까지 거리가 멀었기에 다음 열차를 탔다. 아까와 같은 압박은 없었다. 역시 자리가 많이 비어있었지만 앉기는 겁이 났다. 손잡이를 잡고 서서 집으로 돌아왔다.


주말이 지나고 월요일이 되었다. 월요일은 도서관이 쉬기 때문에 집에서 공부를 해야 했다. 동생이 출근하고 반지하방에 홀로 앉아 책을 폈다. 그러나 공부가 될 리 없었다. 혹시 하는 마음에 얼마 전에 이력서를 넣었던 회사의 채용홈페이지를 들락거렸다. 도서관이 아니면 갈 곳이 없어 방안에만 처박혀 있는 내 신세가 처량했다. 갑자기 사람이 그립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도서관에 가더라도 나와 얘기할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하루종일 말없이 책을 보다가 집에 와서 동생과 몇 마디 하다 자는 게 전부였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책을 다시 보는데 숨이 잘 쉬어지지 않았다.

'어, 이건 뭐지?'

급히 방문을 열었다. 여기서 뛰쳐나가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강렬한 느낌을 받았다.

신발을 신고 밖으로 나갔다. 골목길을 무작정 뛰었다. 사람이 보이지 않았다. 굽이진 골목길을 돌아 큰길로 나왔다. 이제야 비로소 지나가는 사람들이 보였다. 헥헥 거리며 멈춰 서서 무릎에 손을 올렸다. 사람들을 바라보며 심호흡을 하였다. 비로소 마음에 평화가 찾아왔다.


'이제 여기서 버티는데 한계가 찾아왔구나!'

더 이상 서울에 있을 수 없겠다는 결론이 나왔다. 아직 결과 발표가 안 난 3군데 업체에서 채용결과가 나오는 즉시 본가로 내려가기로 결정했다. 지금까지의 선례에 비추어 남은 세 곳도 채용이 될 리 만무했다.


공황장애는 예고 없이 찾아온다. 마음이 약해져 있고 자존감이 바닥을 칠 때는 반드시 힐링의 시간을 가져야 한다. 쨍쨍 내리쬐는 햇볕을 보거나 친한 친구와 수다를 떨거나 동경하는 사람에게 멘토링을 요청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런 사람이 없다면 가까운 보건소나 정신보건 네트워크(1577-0199)에 전화하여 상담을 받는 것도 괜찮다. 좀 나아졌다면 그냥 방치하지 말고 반드시 공황을 불러일으키는 그 근본적인 원인을 정확히 알아내서 빠른 시일 내에 원인을 제거해야 한다. 세상은 당신을 반드시 필요로 한다. 다만 지금 당장 그 자리가 보이지 않는 것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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