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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Jbenitora Oct 02. 2023

그해 가을, 대학축제에서 얻은 것

대학 축제로 캠퍼스는 시끌벅적했다. 축제기간 한정으로 기숙사에서 학생식당으로 가는 길 옆으로 노점이 허용되었다. 지난 축제에서 주전부리를 사 먹는 수요가 많았기에 이번 축제에는 우리 팀도 노점을 열기로 했다.


학교 밖 슈퍼마켓에서 떡볶이며 부침개를 만들 재료를 샀다. 학교가 외따로 떨어져 있어 버스로 15분은 나가야 장을 볼 수 있다 보니 한번 나갈 때 대량으로 사야 했다. 재료가 떨어졌다고 두 번 세 번 왔다 갔다 할 수는 없었다. 한아름 산 물건들을 박스에 넣어 포장하면서 과연 팔릴까 하는 마음 반, 모자라면 어쩌지 하는 마음 반이었다. 안 팔릴 때를 대비해서 배달도 하기로 했다. 기숙사에서 나오기 싫은 사람들이나 도서관에서 공부하다가 맥을 끊고 싶지 않은 사람들이 타깃이었다. 손님이 원하면 우리가 만든 음식과 함께 학교매점에서 장도 봐서 같이 전달한다고 홍보를 했다. 맞춤형 서비스였다.


처음 하는 장사다 보니 꼼꼼하게 계획을 짰다. 이틀 치 재료를 준비하고 각자 맡을 분야를 정했다. 누구는 전을 부치고 누구는 떡볶이를 만들고 누구는 호객을 하고 누구는 서빙과 배달을 하기로 했다. 축제 첫날, 허기가 시작되는 오전 11시 즈음에 시작한 장사는 지인 찬스와 적극적 호객으로 성황리에 시작되었다. 나는 기숙사 방을 같이 쓰는 친구(일명 방돌이)와 배달을 맡았는데 주문이 쉴 새 없이 밀려들었다. 노점에서 사가거나 앉아서 먹는 사람들은 점심시간이 지나자 곧 뜸해졌다.


한데 배달은 늦은 점심을 찾는 수요가 남아있어 오후 2시가 넘어도 계속되었다. 남자기숙사는 방마다, 여자 기숙사는 층 입구까지 배달을 하고 돌아오면 또 다른 배달이 기다리고 있었다. 남은 배달을 다 마치고 4시가 되어서야 남은 떡볶이와 부침개로 늦은 점심을 먹고 흩어졌다. 나는 너무 고단하여 기숙사로 돌아와 간단히 씻고는, 해도 지지 않은 시간부터 쓰러져 잤다.


다음날도 우리 음식은 여전히 잘 팔렸다. 점심장사만 했을 뿐인데 이틀 만에 우리 팀이 준비한 재료들이 다 소진되었다. 남은 떡볶이 국물에 식당에서 사 온 김밥을 찍어 간단히 점심을 먹고는 기분 좋게 철수를 하였다. 전날은 장사 후유증이 너무 컸는데 둘째 날은 적응이 되었는지 힘이 아직 남아있었다. 게다가 아직 3시밖에 되지 않아 축제를 즐길 시간도 있었다. 남은 축제 스케줄을 살폈다. 영화 동아리에서 어제부터 하던 릴레이 상영은 볼만한 건 다 끝나있었다. 애니메이션 동아리의 애니 전편 몰아보기 행사도 처음부터 보지 않으면 의미가 없었다.


살펴보는 도중 총학생회에서 주관하는 골든벨 대회가 눈에 띄었다. 시간은 1시간 쯤뒤였고 장소는 학교강당이었다. 참가신청은 현장에서 받았다. 상식선에서 맞힐 수 있는 시사와 역사, 우리 대학교 관련 주제로 한 문제가 준비되어 있다고 적혀 있었다. 지난 축제 때는 대부분의 시간을 친구들과 기숙사에서 게임하며 보냈는데 이번에도 그러면 허무할 것 같았다. 마음 맞는 친구들과 함께 시간에 맞춰 강당으로 향했다.


늦은 오후라 캠퍼스에는 농구하는 몇 명을 제외하고는 사람들이 보이지 않았는데 강당 안에 들어서니 사람들이 바글바글했다. 총학생회에서 준비한 행사라 규모도 제법 크고 무대 앞에는 참가자들에게 나눠줄 상품들이 쌓여 있었다. 우리는 입장하는 순서대로 번호를 부여받고 바닥에 쓰인 숫자에 맞춰 앉았다. 큰 기대 없이 간 자리라 마음이 편했다. 누구를 밟고 올라가서 상품을 쟁취하려고 온 것이 아니니 얻는 것이 없어도 사람들과 어울려 놀면 그만이었다.


시간이 되자 준비해 놓은 자리에 사람들이 모두 앉았다. 말발 좋은 사회자가 분위기를 띄우고 나도 덩달아 박수와 고성(高聲)으로 답했다. 문제가 시작되었다. 첫 문제는 학교의 개교연도였다. 우리 학교는 95학번이 가장 첫 학번이기 때문에 틀릴 수가 없었다. 전원이 통과했다.

'점점 어려운 문제가 나오겠지?'


두 번째는 학교의 슬로건을 묻는 문제였다. 이걸 물을 거라 생각하진 않았지만 우리 학교 학생이라면 모를 수가 없었다.

"Why not change the world"

이 정도면 50문제까지는 못 가도 20문제까지는 가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문제는 어느덧 열개가 넘어가고 나는 아직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이제 문제는 학교의 교조(校鳥)를 맞혀야 하는 단계까지 와 있었다. 평소에 어떤 새가 우리 대학을 상징하는지 알 이유는 전혀 없었지만 자리를 지키려면 어떻게든 알아야만 했다. 주변을 둘러보니 나처럼 고민하는 사람이 많았다. 내 앞에 옆에 앉은 학우가 뭔가를 적기 시작했다. 슬쩍슬쩍 보이는 글자가 갈매기인 것 같았다. 어차피 아무것도 안 적고 틀릴 거면 갈매기를 쓰고 틀리기로 했다. 갈매기가 아니면 플레이어에서 구경꾼으로 자리만 바꾸면 되는 거였다.


"정답은 갈매기입니다. 틀린 분들은 보드를 들고 왼쪽으로 나가주세요."


사람들이 한차례 쑥 빠졌다. 다음 문제는 교화(校花)를 맞히는 문제였다. 사회자가 이 꽃에 대해 설명을 해주는데 평소 꽃에 문외한이라 들어도 떠오르는 것이 없었다. 나의 구세주인 앞에 옆에 친구도 고개만 갸웃거릴 뿐이었다. 학교에서 자주 보는 꽃은 벚꽃이지만 이건 아닌 것 같고, 장미와 같은 대중적인 꽃도 우리 대학의 이미지와는 달랐다. 고민고민 하다가 틀려도 좋으니 튀기라도 하자는 생각에 무궁화를 적고는 보드판을 높게 들었다.


다른 사람들이 써놓은 걸 보니 온갖 꽃들이 다 나왔다. 압도적으로 많이 적힌 꽃이 없는 것을 보니 나처럼 질러본 학생들이 많아 보였다. 그래도 무궁화는 나 혼자 쓴 것 같아서 기분이 좋았다. 틀릴 거라면 당당하게 틀리는 것이 설렁설렁 놀러 온 사람의 즐거움이었다. 사회자가 "정답이 뭘까요?"라고 묻자 큰소리로 "무궁화!"라고 외쳤다. 사회자가 다가왔다.


"학생은 무궁화라고 썼네요. 왜 그렇게 생각하시나요?"

"무궁화는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꽃이고 우리 대학도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대학이 될 것이니까 무궁화가 정답이 확실합니다."

머릿속에서 나오는 대로 씩씩하게 말하고 나니 강당에 모여 구경 중인 학생들이 모두 "와~!" 하면서 손뼉 치고 호응해 주었다.

그 순간만큼은 1등이 되어도 이렇게 즐겁지는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답이 발표되었다. 답은 해당화였다. 역시나 대부분이 틀렸고 나를 포함하여 틀린 답을 적은 사람들이 썰물처럼 빠졌다. 자리에 남아있는 학생은 10명도 되지 않았다. 단 두 문제 만에 파장 분위기가 되자 사회자는 25번째 문제쯤에서 진행하려고 했던 패자부활전을 당겨서 진행했다. 패자부활전은 OX퀴즈로 진행되고 3문제를 전부 맞추면 살아남는 것이었다.


모르는 문제가 나오면 사람들이 가장 많이 서있는 쪽으로 가겠다는 생각으로 퀴즈에 임했다. 정말로 3문제 모두 알쏭달쏭 한 문제였다. 원칙대로 사람들이 많은 쪽에 섰다. 그 결과 나는 내 번호가 써진 자리에 다시 앉을 수 있었다. 나를 포함한 2/3의 인원이 다시 자리에 앉자 분위기가 다시 살아났다. 다음 문제부터는 시사상식 문제였다. 연이어 고사성어, 역사와 같이 평소 관심 있어하던 분야의 문제들이 나왔고 43번 문제까지 전부 살아남았다. 이제 남은 사람은 8명 정도였다.


다음 문제는 "불이 나면 119, 경찰은 112, 그럼 OOO 할 때는 몇 번일까요?" 이런 식의 문제였다. 지금 돌이켜봐도 정확한 문제가 기억이 나지 않을 만큼 전혀 모르는 문제였다. 요즘이야 범죄신고는 112로, 재난과 구조신고는 119로, 그 외 민원이나 상담전화는 110으로 통일되었고 너무 급하여 셋 중 아무 번호나 누르더라도 상황에 따라 필요한 기관에 자동 연결해 주는 세상이지만 새로운 밀레니엄을 앞둔 그 시점에는 상황마다 번호가 달랐고 외우고 있는 사람도 거의 없었다.


이때 내 주변 8칸 안에는 살아남은 사람이 없었고 구경꾼들의 시선을 받고 있어 남의 도움을 받을 수 없었다. 그냥 틀린다고 생각하고 아무 번호나 적었다. 사회자가 정답을 발표하였고 나는 살아남았다. 정말 운이라고 밖에 할 수 없었다. 이제 남은 사람은 나 외에 2명이었다. 사회자는 우리를 앞으로 불렀다.

"무궁화 학생 지금까지 살아남았네요?" 사회자는 나를 보며 손을 펴 들었고 나는 그의 손에 하이파이브를 하였다.

"네, 저도 제가 여기까지 온 것이 신기합니다. 하하"


참가 당시 목표한 20문제 맞히기의 2배를 넘기는 성과를 이뤘다. 더할 욕심이 없다 생각했는데 막상 TOP 3에 들어가니 떨렸다.

'내 무대라 생각하지 않은 곳에서라도 주목을 받고 있으면 이런 기분이 드는구나!'


평소 게임도 하지만 역사책을 읽으며 상상하길 좋아하고 다양한 지식을 새로 알아가는 것을 즐기는 습관이 오늘 기대하지 않는 성과를 내준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고 나니 그간의 별 볼 일 없이 보내던 일상이 마치 오늘을 위해 준비한 시간처럼 느껴졌다.


남은 3명은 짧게 현재의 소감을 말하고 다시 자리로 돌아가 앉았다. 문제는 이어지고 우리는 모두 48번까지 살아남았다. 사회자가 49번 문제를 냈다. 최근 발생한 뉴스에 관한 문제였다. 어디서 봤던 주제다 했더니 얼마 전 야식을 먹으며 기숙사 공용 TV를 볼 때 나온 내용이었다. 자신 있게 답을 적었다. 다른 두 명의 보드판에는 다른 답이 적혀있었다.

'이렇게 쉬운 걸 모른단 말이야?'

결국 마지막 문제는 혼자 살아남았다. 실력도 있었겠지만 옛말대로 운칠기삼(運七技三)이었다.

'며칠 전 야식을 먹지 않았다면 나도 탈락했겠지?'


50번 문제를 맞히던 맞히지 않던 상품을 타게 되었다. 사회자는 내가 50번 문제를 맞히면 황금종을 울리게 되고 최신 전자사전의 주인공이 된다고 하였다. 그리고 못 맞추게 되더라도 오늘의 최종 우승자가 되며 S사에서 만든 최신 잉크젯프린터의 주인공이 된다고 하였다. 전자사전이 더 좋은가 프린터가 더 좋은가 하는 행복한 고민 속에서 마지막 문제에 임했다.


들어보니 마지막 문제의 답은 A 아니면 B였다. A가 답인 것 같은데 B일 수도 있는 그런 상황에 B에다 남은 나의 운을 걸었다. 결국 정답은 A였고 나는 황금종을 울리지 못하였지만 최종 우승자가 되었다. 본 행사를 준비한 총학생회 사람들과 다른 참가자들과 함께 상품으로 받은 프린터를 들고 사진을 찍었다.


행사를 마치고 프린터를 들고 친구들과 함께 기숙사 방으로 돌아왔다. '마지막 문제에서 A를 골랐으면 전자사전을 들고 가볍게 걸을 텐데...' 하는 생각을 했지만 프린터도 유용하게 쓸 수 있을 것이었다. 뒤늦게 나의 우승사실을 안 친구들이 모두 방으로 몰려와서 골든벨 우승을 축하해 주었다. 이렇게 축제로 인해 우리 팀 사람들은 노점으로 돈을 벌어 주머니가 두둑해졌으며 전용 프린터가 생겨서 도서관에서 돈을 내고 프린트하지 않아도 되었다.


그간의 내 머릿속의 대학교 축제는 먹고 마시고 떠들고 노는 시간이었다. 돈과 시간을 즐거움과 바꾸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번 축제는 돈과 즐거움을 같이 얻었다. 남들이 놀 때 땀을 흘려 돈을 버는 경험은 인상적이었다. 남들이 귀찮아서 혹은 번거로워서 하지 않는 일(배달)을 대신해 줌으로써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었고 보람과 함께 주머니가 두둑해졌다. 또한 뜻하지 않은 골든벨 우승은 평균학점 2점대를 벗어나지 못하는 나의 대학생활을 위로해 주었다. 수업시간에 배운 지식은 충분히 소화되어 시험 점수로 나오지 않았다 하더라도 그 외에 대학에서 경험하고 배운 지식이 적지 않았다는 걸 알게 되었다. 내가 보낸 모든 시간은 헛되지 않았던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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