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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Jbenitora Nov 29. 2023

꾸준한 달리기는 배신하지 않는다

첫 번째 하프마라톤


결전의 당일이 밝았다. 내 마음은 전쟁터에 나가는 군인과 같았다. 내가 한 번도 가보지 못한 21km라는 거리를 뛰는 것이었다. 두려움반 기대반이 아니라 90%가 두려움이었다. 지난 두 달간 가장 긴 거리를 뛴다고 해봐야 7km였는데 그 3배가 되는 거리를 완주나 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었다.


엊그제 내린 비로 바깥기온이 영하에 가깝게 내려가 있었다. 새벽부터 눈이 떠졌다. 핸드폰을 잡고 추운 날씨에 달리기 위해 필요한 것에 대해 검색했다. 검색된 영상을 보다가 겨울에 반바지로 뛰던 유튜버의 노출된 다리피부가 빨갛게 변한 것이 눈에 띄었다. 입고 있던 짧은 조깅 바지 위에 긴 추리닝 바지를 껴입었다. 이렇게 하면 괜히 벌벌 떨 것 없이 뛰다가 더우면 잠시 서서 바지를 벗으면 되는 일이었다. 워치를 손목에 차고 휴대폰과 지갑, 장갑은 미리 받은 대회참가 기념품인 슬링백에 넣었다. 모자 달린 후드를 입고 러닝화를 신은 뒤 대회장으로 출발했다.


대회장 주변에 차를 대고 걸으니 사람들이 구름처럼 모이고 있었다. 몸을 예열시키기 위해 미리 뛰고 있는 사람, 사회자의 말에 호응하는 사람, 단체로 와서 동료들과 화기애애하게 이야기 나누는 사람 등 수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나도 인파 속에서 동생을 만났다. 동생이 짐을 맡긴다고 하여 내 후드티를 같이 넣어서 짐 맡기는 부스에 맡기기로 했다. 슬링백은 같이 맡길까 하다가 매고 뛰기로 했다. 나보다 체력이 좋은 동생이 일찍 도착해서 짐을 찾아버렸는데 서로 길이 엇갈리면 전화라도 해야 될 것이었다.


짐 맡기는 줄이 너무 길어 시작 시간이 임박했는데도 출발선으로 갈 수없었다. 그러다 갑자기 앞에 서있던 사람들이 비닐봉지에 쌓인 자기 짐에 스티커를 하나씩 붙이고 짐을 부스에 그냥 던져댔다. 우리도 그들을 보며 뭔가 긴급한 일이 벌어졌나 싶어 급하게 번호 스티커를 받아 짐에 붙이고 그 번호를 동생 번호판에 적었다. 짐을 던져놓고 출발선으로 뛰어가보니 이미 하프가 출발하고 2분이 흐른 뒤였다. 사람들이 그토록 서두른 이유가 이것이었다. 우리 형제도 잠시 뒤 출발하려고 기다리고 있는 10km 주자들을 헤치고 달리기를 시작했다.


몸을 본격적으로 풀지도 못했고 화장실도 미리 가지 못 했다. 엉겁결에 뛰다가는 안 되겠다 싶어 길가에 보이는 화장실에 미리 들르기로 했다. 출발 1분 만에 동생과 같이 화장실에 들러 볼일을 보고 약간의 준비운동을 한 후 다시 뛰었다. 시간 단축이 아닌 완주가 목표라 잠시 발걸음을 멈춘 것이 오히려 마음을 안정시켜 주었다.


본격적으로 뛰기 시작했다. 우리처럼 뒤늦게 출발한 사람들도 꽤 있었다. 물론 얼마가지 않아 우리 그룹에서도 각자의 페이스에 따라 앞서는 사람과 뒤로 처지는 사람이 생겼다. 나는 2km 지점에서 속도를 내는 사람들을 앞으로 보냈다. 지난 2개월의 경험으로 나의 평균 페이스를 알고 있었기 때문에 무리하지 않기 위해서였다. 워치를 보면서 1km 당 6분 30초 페이스 보다 빠르지 않도록 조절하였다. 이 속도가 이전에 풀코스를 뛰어 보기고 했고 하프도 2번 정도 뛰어본 경험자인 동생에게는 느릴 수 있었기 때문에 언제든지 앞서가도 된다고 말해두었다.


동생은 나와 같이 대화를 하면서 천천히 뛸 생각을 하고 있었다. 동생에게도 하프가 만만한 것이 아니기에 미리 준비하려 했지만 다니는 직장에서 일이 몰려서 그다지 많은 준비를 못 했다고 했다. 주말마다 달린 정도라 네댓 번 뛴 것이 고작인 것 같았다. 그래도 동생은 최근에는 운동을 하지 않지만 2~30대에는 운동으로 먹고살던 사람이라 기본 체력이 나와는 달랐다. 


십리대밭을 한 바퀴 돌아 태화강변을 뛰면서 일요일 아침의 평화로운 풍경을 즐겼다. 얼마 전 비슷한 코스를 달릴 때 헉헉 거리던 것을 생각하면 장족의 발전이었다. 동생과 하루 건너 하루씩 새벽 조깅을 꾸준히 하니까 저질 체력도 나아진다는 일상얘기, 요즘 사무실 분위기는 어떠냐는 직장얘기, 곧 이사하려는 계획은 어떻게 되어가냐는 근황얘기 등을 하였다. 그러는 중 10km 선두주자들이 우리를 따라잡았다. 무서운 속도로 달려오는 그들을 보며 언제 저렇게 뛸 수 있을까 하는 경외감 마저 들었다. 


6km 지점에서 10km 코스와 하프코스가 나뉘어 사람들이 반으로 갈라졌다. 하프 코스의 찐 하위그룹의 윤곽이 완전히 드러났다. 허리에 스웨터를 묶어 뛰고 있는 젊은 여성(스웨터), 머리를 양갈래로 묶은 추리닝 여성(양갈래), 동호회에서 옷을 맞춰 입고 온 아주머니 2분 (동호회 1,2)이 우리의 옆에서 뛰고 있었다. 우리 그룹에 한동안 속한 사람도 있었지만 꾸준히 비슷하게 달리는 것은 이 4명이었다.


 8km 지점쯤에서 오르막이 나왔다. 나는 이전 오르막에서는 그냥 뛰었는데 이번 오르막에서는 걷기로 하고 동생을 먼저 보냈다. 동생과 얘기하며 뛰는 것이 점점 힘들어지는 것도 있었지만 어느 유튜버가 시간을 정해서 걷고 뛰기를 병행하면 나중에 아낀 체력으로 완주는 물론 기록도 단축할 수 있다고 얘기한 것 때문이었다. 그가 추천한 것은 6분 뛰고 1분 쉬는 것이었는데 이미 50분이나 뛰었기 때문에 일부러라도 걷기로 한 것이었다. 오르막 구간을 빠른 걸음으로 걸으니 1분이 조금 넘게 걸렸다. 평지가 나오자 다시 뛰었다. 확실히 힘이 충전된 느낌이었다. 그사이 스웨터와 양갈래는 앞 그룹으로 가버렸고 동호회 1과 2는 스무 보폭 앞에서 뛰고 있었다. 동생의 모습은 이미 보이지 않았다. 이번 달리기는 나와의 싸움이지 이들과 싸움은 아니기 때문에 따라잡겠다는 생각은 없었다. 


반환점을 돌아서 반대편에서 뛰어오는 하프의 선두그룹과 마주했다. 아까 나를 앞서간 10km의 선두들과 별 차이 없는 속도로 뛰어오는 그들을 보며 아까와 비슷한 경외감이 들었다. 아직 반환점은 차례 멀었는데 반대편에서 뛰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졌다. 

'하위 90%의 위치에서 상위 10%를 바라보는 느낌이 이런 것이구나!'

아예 별세계 사람들이었다.


반환점이 가까워지자 숨이 가빠왔다. 이제 힘듦이 느껴졌다. 그래도 꾸준하게 페이스를 체크하면서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게 맞추다 보니 이미 초기의 페이스가 무너진 스웨터를 앞지를 수 있었다. 양갈래는 몇 발자국 앞서있을 뿐이었고 동호회 1은 나보다 조금 앞에 동호회 2는 나보다 뒤에 있었다. 이미 몇 분 전에 반환점을 돌고 나오던 동생이 조금만 가면 반환점이라고 얘기해 주었다. 다시 힘을 내서 얼마를 더 뛰니 반환점이 보였다. 아침을 안 먹고 와서 출출하길래 반환점에 준비되어 있는 초코바와 바나나 1/3개를 먹으며 잠시 걸었다. 물 한 모금으로 입안을 씻어 '꿀꺽' 삼키고는 다시 뛰었다.


그사이 스웨터가 반환점에 도착했다. 이미 나의 상대가 되지 못하는 그녀를 반대편에서 스쳐 지나갔다. 저 앞에는 양갈래가 뛰고 있었다. 점점 양갈래와 거리가 가까워지는데 오르막이 나왔다. 많이 지쳐있었기 때문에 완주를 위해 오르막은 무조건 걷기로 마음먹었다. 양갈래는 다시 저만치 앞서나갔다. 


나보다 앞선 그룹에 있던 사람들이 속속 나에게 추월당했다. 자신의 페이스를 몰랐거나 오버 페이스 한 사람들이라 이들은 완주가 어려울 수도 있어 보였다. 


아까 하프 선두와 만났던 지점을 지났다. 이제 남은 것은 7km 남짓이었다. 이쯤 오니 다리가 저려오기 시작했다. 쥐가 나는 것은 아닌데 피가 몰려서 저린 느낌이었다. 평소 뛰는 거리의 2배가 넘는 거리를 뛴 것이니 몸에 탈이 나는 것도 이상한 것은 아니었다. 허리에 불편한 느낌이 있고 어깨도 경직되어 갔다. 이런 상황은 나만 그런 것은 아닌지 나와 비슷한 속도로 뛰는 사람들 모두 페이스를 올리지 못하고 있었다. 동호회 1과 나는 앞서거니 뒤서거니 했고 양갈래는 한번 내 뒤로 가더니 나를 앞서지 못했다.


급수대에서 물을 한잔 마시는데 진행요원들이 파이팅을 외쳤다. 그들의 오버스러운 응원이 왠지 힘이 되었다. '오르막 좀 나와라'

응원의 힘은 잠시이고 빠진 체력은 회복이 되지 않았다. 걸을 수 있는 오르막을 고대하며 관성으로 뛰었다. 

'나만 힘든 게 아니다. 옆에 이 사람들도 나보다 힘들면 힘들지 덜 힘든 게 아니야.'

그렇게 뛰다 보니 마지막 급수대가 나왔다. 콜라며 이온음료며 초코바, 바나나가 널려있었지만 나는 아무것도 먹고 싶지 않았다. 아니 잠시라도 멈추면 이 페이스를 잃을 것 같았다. 급수대를 지나쳐서 뛰는데 뒤에서 동생 목소리가 들렸다.


"형, 괜찮나?"

"어, 니가 왜 뒤에서 나오노?"

"화장실 잠깐 들렀다가 급수대에서 바나나 먹고 있었지."

"그렇나? 나는 아무것도 못 먹겠다. 니는 다리 안 저리나?"

"저리지는 않은데 무릎이 아파서 잘 못 뛰겠다."


벌써 저 앞으로 간 줄 알았던 동생이 뒤에서 나와서 놀랐지만 지금은 그걸 곱씹어볼 여력이 없었다. 2km 정도 남은 거리를 다리가 버텨주길 바랄 뿐이었다. 


길가에는 다리에 쥐가 내려서 더 이상 뛰지 못하고 주저앉은 사람이 보였다. 동료들이 옆에서 다리를 주물러주고 운영요원에게 전화하는 모습을 보니 조금이라도 오버페이스 했다면 '이게 내 모습 일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끝이 보이기 시작했다. 십리대밭교를 건너면 바로 도착지점이었다. 십리대밭교로 올라가는 하프코스의 길과 그대로 직진하는 풀코스의 길이 나뉘었다.

"여기서 나보고 풀코스 길로 직진하라고 한다면... 끔찍하군!"

십리대밭교로 올라가고 있는 현 상황이 행복하게 느껴졌다. 


십리대밭교를 빠른 걸음으로 오르고 있는데 양갈래가 언제 따라왔는지 나를 앞섰다. 힘들어도 걷지 않는 양갈래와 힘들면 걷되 최대한 페이스를 유지하자는 내가 마주 선 순간이었다. 슬쩍 웃음이 났다.

'뛰면서 오르면 에너지가 소모될 텐데... 오르막이 끝나고 봅시다!'


다리 위에 올라섰다. 잠시 걸었다고 그사이 힘이 조금 충전되었다. 양갈래를 누워서 껌 씹듯 따라잡았다. 다리를 건너 내리막을 뛰어 내려오니 길 안내 하는 분들이 이제 다 왔다며 응원해 주었다. 

'지금쯤 막판 스퍼트를 해야 하나, 좀 더 있어야 하나?'

거의 다 온 것 같은데 아직 도착점이 풀숲에 가려 보이지 않았다. 어중간 한 거리에서 스퍼트를 했다가는 마지막에 힘이 떨어져 기어 들어갈 수가 있었다. 산책을 나와서 달리는 것을 구경하는 사람들의 눈에는 어떻게 보일지 몰라도 나는 마지막 남은 체력을 쥐어짜면서 달리고 있었다. 도착지점의 구조물이 보였다.


'지금이닷!'

마음을 먹고 다리에 힘을 주었다. 나는 100m 달리기 주자가 된 것처럼 지금껏 아껴둔 체력을 모두 써서 스퍼트를 했다. 내 앞에는 따라잡을 그 누구도 없었지만 상관없었다. 후회 없는 달리기의 정점은 막판 스퍼트에 있었다. 사회자가 도착지점에 서서 내 가슴팍에 붙여둔 번호와 이름을 불러주며 랩타임을 불러주었다.


'드디어 완주했구나."

막판의 질주로 인해 눈앞이 잠시 흐려졌지만 완주했다는 충족감이 가득하여 몸이 힘든지는 잘 느껴지지 않았다. 부스에 놓인 생수 한 병을 들고 완주메달과 간식을 받았다. 동생이 들어올 때까지 잔디밭에 앉아 다리를 풀어주었다. 잠시뒤 동생이 들어오면서 출발 전에 맡긴 짐을 찾아왔다. 간식을 먹으며 스마트폰을 꺼내니 대회를 완주했음을 알리는 문자가 와있었다. 클릭하니 내 기록이 떴다.


2시간 21분 47초


동생은 나보다 정확히 3분이 늦었다. 완주증을 캡처해서 본가와 처가 카톡방에 완주소식을 전하고 동생과 사우나로 이동했다. 달리기 후의 사우나는 천국에 온 듯한 기분을 느끼게 해 주었다. 사우나를 마치고 식사를 하러 가는데 동생이 아픈 무릎 때문에 계단이동을 어려워했다. 나는 다리가 약간 뻐근한 것 말고는 괜찮았다. 10년 전 10km 달리기 때와 정반대의 모습이었다.


이번 달리기를 통해 달리기 초보도 대회에 맞춰 준비를 하면 하프마라톤 완주를 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완주로 인정되는 3시간 안에만 들어오면 좋겠다는 생각이 2시간 20분대 성적을 낼 수 있는 결과로 나타나서 놀랍고 뿌듯했다. 몸은 지쳤지만 매년 하프마라톤에 참가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꾸준한 조깅이 그때는 어떤 성과로 돌아올지 기대가 되었다.


'뭐든지 꾸준히 자신의 페이스에 맞게 한다면 이룰 수 없는 것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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