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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Jbenitora Jun 11. 2022

이야기라는 것은

호주

학창 시절 나는 이야기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다. 이야기라고 불리려면 그 끝에 무언가가 남아야 하지 않을까? 교훈이 되었든 재미가 되었든 은유가 되었든 비유가 되었든 이야기의 끝은 울림이 필요한 건 아닐까? 옛날 옛적 TV도 라디오도 없던 시절의 이야기꾼들은 이야기를 푸는 어떤 독특한 재주가 있었을지 상상을 할 수가 없었다.


말 잘하는 친구가 있었다. 쉬는 시간에 그 친구가 말을 하면 아이들이 우르르 모여들었다. 어떤 말을 했는지 기억나지 않을 만큼 시간이 지났지만 그때 분위기는 열광적이었다. 별 하찮은 이야기도 그 친구의 입을 거쳐 나오면 웃겼다.


TV에도 말 잘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 당시 주병진, 서세원, 이홍렬과 같이 말 잘하는 개그맨들의 이름이 걸린 토크쇼가 인기가 있었다. 그중 ‘일요일 일요일 밤에’ MC로 “여러분들의 시선을 모아 모아 모아서 출발하겠습니다.”라는 멘트가 독특했던 주병진은 우상이었다. 그가 별것도 아닌 이야기에 양념을 치면 마법같이 웃긴 이야기가 되었다. 예를 들면 이렇다. 가수 김흥국이 결혼한 지 얼마 되지 않아 프로그램에 출연하였다. 그는 얼마 전에 아들이 태어났다고 말했다. 이때 주병진이 “김흥국 씨 아드님은, 태어날 때부터 다른 아기들처럼 울지 않고 ‘아 응애에요’라고 하면서 울었을 것 같아요.”라고 하자 사람들이 깔깔 웃었다. 김흥국은 능청스럽게 직접 “아! 응애에요”라면서 방청석을 웃음바다로 만들었다. 이 말은 아직도 김흥국을 대표하는 유행어이다.


나는 말이 적은 편은 아니었다. 마음속에 쌓아두기보다는 말을 통해 흘러내는 것이 편했다. 어떤 주제로도 말을 할 수가 있었다. 뉴스에도 관심이 많고 책 읽기도 좋아했다. 가족, 동료, 친구 어떤 집단에서도 말을 못 한다는 소리를 듣진 않았다. 하지만 이야기를 잘하는 사람은 아니었다. 


나도 TV에서, 잡지에서, 신문에서 재밌는 이야기를 보면 친구들에게 얘기를 해주고 싶었다. 정확히 얘기하면 그런 얘기를 통해 인기 있는 사람이 되어 보고 싶었다. 아쉽게도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친구들과의 자리에서 내 차례에 나름 벼려온 이야기를 하면 분명 웃겼던 얘기가 진지해지거나 시시해졌다. 


코끼리 한 마리가 등에 개미를 태우고 길을 가고 있었는데 코끼리가 이렇게 얘기했데. “야, 개미야 너무 무겁다. 이제 그만 내려” 그러니까 개미가 “시끄러 인마! 한 번만 더 그 따위 소리하면 밟아 죽인다.”라고 했어. 그걸 옆에서 지켜보던 하루살이가 뭐라고 했게? “거 오래 살다 보니 별일 다 보겠네.”


이야기를 잘하는 사람, 별로 재미없는 이야기도 웃긴 이야기로 만드는 사람들이 주변에 있었지만 나와 나의 이야기는 친구들의 야유 속에 묻힐 뿐이었다


세월은 수십 년이 흘렀다. 어느새 나는 이런저런 경험을 많이 한 어른이었다. 이제 이야기가 그렇게 어렵지 않았다. 술자리에서나 모임에서 이야기 한 자락은 펼 수 있게 되었다. 이야기가 끝나도 야유를 받지 않게 되었다고 하는 것이 맞겠다. 이야기의 비밀을 알았다고 할까? 


그 비밀은 공감이었다. 다른 사람들의 공감을 자아낼 수 있는 여러 에피소드가 나에게 쌓인 것이다. 학생 시절 그렇게 열심히 짜내고 흉내 내며 만든 이야기에서는 나오지 않던 그 울림이 바로 공감이었다. 듣는 이를 파악하고 그들의 공감을 받아야 하는 것이 이야기였다. 내 이야기들은 삶의 경험과 만나 이제야 빛을 좀 보고 있다.


“호주에서 일하며 공부하고 있을 때였어. 그날 굉장히 추웠어. 평소처럼 도서관 문 닫을 시간에 나와 집으로 가고 있었지. 호주는 오후 6시만 넘어도 가게들이 문을 닫잖아. 거리가 을씨년스럽더라구. 깜깜한 밤길이라 가로등 불빛 아래만 밝았어. 주머니에 손을 넣고 어두운 거리를 둘러보니 개미새끼 한 마리 없더라. 


한참 걷는데 저 앞에서 사람이 걸어오는 게 보였어. 워낙 휑한 거리라서 사람이 있다는 것만 해도 뭔가 안심이 되더라. 그도 나처럼 주머니에 손을 넣고 몸을 잔뜩 움츠리고 있었어. 종종걸음으로 이쪽으로 오더군. 가까이서 보니 갓 스무 살쯤 되어 보이는 남자였는데 내가 반가웠는지 멀리서 눈을 마주치니 싱긋 웃더라. 난 평소에 호주에서는 내가 이방인이란 생각을 하고 있었기에 늘 하던 것처럼 미소 지으며 건조하게 그를 지나치려 했지. 우리의 거리가 한두 발자국 정도 일 때 그 남자가 나에게 뭐라고 했어. “콜~ 인잇” 난 알아듣지 못하고 고개만 끄덕였어. 금세 우리는 등을 졌고 각자 가던 길로 발길을 재촉했지. 난 그가 내게 건넨 그 말이 무슨 말인지, 어떤 의미인지 집에 도착할 때까지 생각하고 또 생각했어. 씻고 옷을 갈아입고 잠자리에 누울 때까지 생각은 계속되었지. 스르르 눈을 감으며 그냥 이렇게 생각하기로 했어. 나를 놀린 거구나. 나 어릴 때 흑인을 보면 깜둥이라고 하던 그런 거겠지. 근데 며칠 뒤 그 말의 뜻을 도서관에서 영어 책을 읽다가 우연히 깨닫게 되었어. 무의식 속에 있던 그 말이 머리를 땅 때리는데 답이 그냥 생각이 난 거야. 그게 무슨 말이었을 것 같아? 바로 “It’s cold, isn’t it?”이었어. 영어를 글로 접하던 중학교 때 배운 부가 의문문 바로 그거야. 그 남자는 추운 날씨에 대해 공감대를 형성하려고 했던 것이지. 뜻을 알고 나니 오해를 했던 내가 부끄럽더라. 그때로 다시 돌아갈 수 있다면 그에게 빙긋 웃으며 이렇게 얘기해주고 싶어 “Yes, it’s fucking cold, mate.”


호주 유학을 준비 중인 동생들에게 이야기를 해주니 깔깔 웃었다. 나이가 먹을수록 나는 이야기와 조금씩 가까워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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