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연함을 잊지 말자
딩크족이라는 말이 있다. 결혼을 한 남녀가 각자 벌이(Double Income)를 하며 의도적으로 자녀를 두지 않는 경우(No Kids)를 지칭한다. 1980년대 미국에서 젊은 도시 전문직(Young Urban Professinal), 약어로 여피(yuppy)가 생겨났을 때 유행처럼 번지던 풍조인데 2010년대 이후 한국에서도 심심찮게 들려오는 말이다. 아이를 키우고 안 키우고는 각 가정의 선택이고 가정마다 아이를 못 갖는 사정도 있기 때문에 충분히 이해되는 말이었다. 딩크족이 애완동물을 키우면 딩펫족이 되는 것도 받아들여졌다.
그런데 올해 싱크족이란 말을 듣고는 나도 모르게 고개가 갸웃했다. 맨 앞의 영어철자 Double을 Single로 바꾸면 되는 싱크족은 남자 혹은 여자 혼자서 벌면서 아이도 갖지 않는 경우이다.
내 주변에서 비혼주의자, 솔로, 돌싱, 재혼 등 수많은 경우를 볼 수 있다. 그중에 싱크족도 한 커플이 있다. 싱크족이란 말을 듣자마자 그들이 떠올랐다. 5년 전에 결혼한 그 커플은 지인 형이 혼자 돈을 벌고 그 형과 동갑인 형수님은 돈을 벌지 않는다. 가끔 애들을 가르치는 자리가 오면 한두 번씩 가서 몇 시간 일하고 일당을 받아오는데 그것도 10만 원을 넘기지 못한다.
형이 결혼을 하고 얼마 안 되어 그를 만난 나는 무례하지만 계속 생각해 온 질문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이를 낳지 않는데 왜 나이 40이 넘어서 동갑과 결혼을 했어?"
"형수님이 그렇게 매력이 있었어?"
"그럼 형수님은 하루종일 뭐 해?"
지금껏 살아온 내 상식에는 전혀 이해가 되지 않았다.
'혼자 나이들어가는 여자를 데려와서 밥 먹이고 재워주는 것 아닌가?'
형은 그런 나에게 차근차근 설명했다.
"결혼하고 싶으니까 결혼했지."
"나도 애 키울 생각이 없고 니 형수도 애는 안 낳겠다고 만날 때부터 얘기했다."
"자기 하고 싶은 거 하지. 골프도 치고 강아지랑 산책도 하고."
알고 보니 형네도 강아지를 키우는 싱펫족이었다.
더 이야기하면 정말 시비를 거는 것이 될 수 있어서 질문을 멈췄다.
'나는 무엇에 경악을 한 것인가?' 두 사람이 협의해서 그렇게 살기로 했다는데 3자인 내가 왜 따지고 있는건지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가만히 먹고 노는 사람이 부러워서가 아닐까'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결혼을 하면 의례히 아이를 낳고 부부가 서로 알뜰살뜰 절약을 하고, 하고 싶은 것을 참아가며 살아가야 하는데, 그게 아닌 사람을 보니 배 아파서 그런 것이었다. 육아의 힘듬은 나중의 보람과 바꾸기 위해 나와 내 아내가 선택한 것이고 집에서 노는 것은 어떤 이유가 있던 형수님이 선택한 것이었다. 싱크족에 비하면 LGBTQ+(레즈비언, 게이, 양성애자, 트랜스젠더, 성정체성 모호자, 기타 성소수자)라고 하는 부류가 더 머리로 이해되지 않는 사람의 부류였다. '그런 그들도 대한민국에서 당당히 살아가지 않는가?'
약 17년 전 대통령선거에 후보로 나온 한 분이 '국회의원 자격고시', '출산수당 3천만 원'의 파격적인 공약을 했을 때 정신 나간 자의 헛소리라고 생각했고 그분이 2년 전 다시 후보로 나와 '국민배당금 150만 원 평생지원', '결혼하면 결혼비용 1억 원에 주택자금 2억 원 지원', '출산 시 5천만 원 지원'을 약속했을 때도 '여전하군!'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런데 대한민국 합계출산율이 세계 최저인 0.6대로 진입하고 길거리에 아이들이 안 보이기 시작하고 서울경기를 제외한 지방에서 젊은 사람들이 사라지자 '헛소리가 아닌 현실적 공약일 수 있겠다'로 인식이 바뀌고 있다.
시대는 변한다. 시대가 원하는 사람도 변하고 그 시대의 주류도 변한다. 수십 년 전의 통념을 가진 옛사람으로 살 것인가, 새로운 세상을 받아들이는 유연한 사람이 될 것인가, 그것은 개인이 선택하기 나름이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유연한 사람이 되지 않는다면 과거에 남아 변화된 상식을 거부하는 답답한 사람만이 남을 뿐이란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