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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Jbenitora Jun 21. 2024

내가 아파트에 살지 않는 이유

층간소음과 부실시공

작년 가을에 처남이 혁신도시로 이사를 갔다. 지난 2년 동안 살던 아파트를 팔아보려 했지만 부동산 경기가 안 좋은 탓에 결국 전세를 주고서야 새 집을 산 것이었다. 원래 살던 아파트도 입지가 좋았지만 이사 간 아파트는 혁신도시 내에서 가장 입지가 좋았다. 아내도 그 아파트에 욕심이 있었는데 사정상 한동안 지금 집을 떠날 수 없기도 하고 돈도 한참 모자라기도 해서 우리는 지켜만 보던 곳이었다.


인테리어 하기 전에 처가식구들과 집구경을 갔을 때 잠시 둘러본 아파트는 전망이 좋았다. 집의 구조는 보통의 30평대 아파트였다. 아이들은 가구하나 없는 넓은 집을 보고 흥분해서 실내를 마구 뛰어다녔다. 이래도 되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아니나 다를까 몇 분 뒤에 관리실에서 인터폰이 왔다. 시끄럽다는 이웃의 항의 전화였다.


'맞아, 내가 살면서 애들이 마음껏 뛰어다녀도 괜찮던 아파트는 본 적이 없었지!'


우리는 쫓겨나듯 집구경을 마쳤다. 그리고 여우가 못 먹는 포도를 신포도로 생각하듯이 내 형편이 안되어 못 사는 아파트지만 층간소음 때문에 사지 않는 것이라 생각하며 정신 승리를 했다.


반년이 더 지나서 정식으로 처남집에 초대를 받았다. 장인어른께서 늘 가보고 싶어 하셨고 아이 둘 키우는 집에서 층간소음 문제는 어떻게 해결했는지 나도 궁금했다. 정한 날짜에 아파트 앞에 있는 감자탕 맛집에서 저녁을 먹고 처남집으로 갔다.


아이들 키우는 집이라 작은방 하나는 장난감으로 꽉 차서 창고방이 되어있었다. 깨끗한 안방과 정리된 다용도실, 냉장고 2대가 자리 잡은 주방은 여느 집과 같았다. 아이들이 주로 노는 현관입구부터 마루까지 모든 바닥은 전부 조립식 스펀지 장판이 깔려있었다. 꽤 두툼해서 아이들이 뛰어도 아랫집에 소리가 전달되지 않을 장판이었다.


처남댁이 준비한 후식을 먹었다. 그사이 아이들은 마룻바닥에서 닌텐도 스위치로 링피트 게임을 하며 뛰어다녔다. 장판 덕분에 아이들의 신바람은 계속될 수 있었고 어른들은 위아래집의 신경을 거스를까 봐 걱정하지 않아도 되었다. 그날 집들이는 즐겁게 마무리되었다.


최근에 컨설팅을 받기로 한 고객의 전화를 받았다. 본인이 지금 집에 있는데 주변에 만나서 얘기할만한 카페가 없으니 그냥 집에서 보자고 하였다. 종종 이런 일이 있기 때문에 집주소를 물었다. 신도시의 한 아파트였다. 이분은 시내에 사업장이 있긴 하지만 명목상이고 실제 업무는 전부 자택에서 하고 있었다. 4살짜리 아들을 키우고 있는 집답게도 들어서자 온 집안에 쫙 깔린 스펀지 장판이 반겨주었다. 갑자기 서글픈 생각이 들었다.

'왜 다른 물건은 소비자가 갑인데 아파트는 을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일까?'


우리나라 건설사는 분양가를 비싸게 받아서 상당한 이익을 남기면서도 자신들이 해결해야 할 층간소음이나 주차장 넓이와 주차 간격, 층고 등에 대한 하자는 집을 산 사람들에게 넘기는 경향이 있어왔다. 돈을 먼저 냈기 때문에 거금을 내고도 소비자는 을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 보니 코로나시기를 지나면서 점점 심해져서 '을'도 아니라 '호구'로 보는 작태가 벌어졌다. 원자재값 폭등을 이유로 시공비를 줄이려 무게를 받쳐주는 지지기둥의 철근을 빼거나 제대로 씻지 않은 자갈을 사용하여 콘크리트를 만들었다. 그 결과 누수가 발생하고 곰팡이가 끼고 건물 외벽으로 철근이 튀어나오는 경우가 생겼다.


설계도와 다르게 시공한 부실시공으로 인한 민원은 국민권익위원회에 따르면 2020년 6월부터 2023년 5월까지 3년 동안 민원분석시스템에 수집된 건만 해도 41만 8535건이었다. 뉴스에 날만큼 심각한 사건으로 치면 2022년 HDC현대산업개발이 시공하던 ‘광주 화정 아이파크 2단지’의 201동 아파트 붕괴, 2023년 GS건설의 ‘인천 검단신도시 안단테’ 아파트 지하 주차장 붕괴 사고가 있었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2023년에 인허가를 받은 신규주택 10 가구 중 9 가구가 아파트이고 2022년 기준으로 전국의 총주택에서 아파트의 비중은 64.1%를 넘는다. 이런 상황에서 아파트 부실시공은 언젠가 큰 재앙을 불러올 것이 자명하다.

[지진발생추이, 기상청 날씨누리]

대한민국은 지진발생률로 보면 청정국이다. 기상청에서 제공하는 지진발생추이를 보면 지난 45년간 진도 5를 넘은 지진이 손에 꼽을 정도이고 6을 넘은 것은 전무하다. 그래서 우리나라의 내진기준은 일부 댐들이 7 이상으로 지어지긴 했지만 진도 6에 맞춰진 곳이 많다. 진도 5 이상의 지진이 연평균 100회가 넘게 발생하는 일본이라면 이런 부실 아파트가 팔리기나 할까 싶다.


더 슬픈 것은 뉴스에서 다룬 큰 부실시공이라도 입막음식 보강공사 몇 번으로 유야무야 되고 입주가 시작되면 집값 떨어질 것을 우려한 주민들의 단체 행동 탓에 부실시공 사실까지 숨겨지게 된다. 사고가 나지 않으리라는 막연한 희망을 안고 거주해야 하는 집들이 이렇게 늘어간다.


층간소음을 줄이는 방법은 건설사들이 더 잘 알고 있다. 바닥 내장재를 바꾸면 된다. 건축비를 아끼려고 법을 위반하지 않은 선에서 시공을 하니 애꿎은 입주자들만 추가비용을 들여 스펀지 마룻바닥을 사서 까는 것이다.


"자신이 살집이라면 이렇게 지을 것인가?"


유명연예인이 미소 띠며 창밖을 내려다보는 최상의 가치를 주는 아파트는 현실에선 찾을 수 없다.

반년 전에는 정신승리로 아파트에 대한 부러움을 숨겼지만 이젠 주변에 아무리 비싼 아파트에 사는 사람이 있어도 전혀 부럽지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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