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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Jbenitora Oct 01. 2024

11.2km

제3회 염포산 마라톤을 뛰다

시작

개회사가 울려 퍼졌다. 운동장 곳곳에 흩어져 있던 사람들이 무대 쪽으로 모여들었다. 일부는 몸이 덜 풀렸는지 트랙을 왔다 갔다 했다. 국회의원, 구청장, 시의원, 구의원까지 축하의 말을 하려고 아침부터 양복을 입고 참석했다. 주최 측 사무국장이 대회 유의사항을 알려주었다. 힘들면 더 달리지 말라는 게 요지였다. 간단히 몸을 풀고 시작지점으로 이동했다. 사람들의 설렌 마음이 느껴졌다. 도로가 통제되었다.


1km

9시 정각에 학생부와 청년부가 출발했다. 5분 뒤에 장년부와 여성부가 출발할 터였다. 44살의 청년은 뱀과 같은 행렬의 중간에 있었다. 동네사람들 몇몇이 구경하고 있었다. 안전통제요원들과 경찰, 모범택시 운전사들은 만에 하나 생길지 모를 사고를 막기 위해 도로 곳곳에 서있었다. 통제구역 반대편 차로에서 달리던 차 하나가 퍽 하는 소리와 함께 멈췄다. 달리는 장면을 보다 애꿎은 도롯가 난간에 앞범퍼가 부딪힌 것이었다.


2km

비슷한 속도의 사람들이 무리를 지었다. 게 중에서도 미세하게 빠른 사람들은 격차를 벌려나갔다. 기록을 위해 참여한 것이 아니었다. 한 번도 안 가본 염포산 정상을 마라톤을 핑계 삼아 가는 것이었다. 또한 2주 뒤 하프마라톤을 위한 사전 연습이었다. 사람들이 앞서가도 다리에 더 힘을 주어 뛸 필요가 없었다. 뛴 지 얼마나 되었다고 걷는 사람들이 보였다. 초등학생으로 보이는 아이, 몸무게가 많이 나가 보이는 청년이었다.


3km

햇볕이 구름 사이로 얼굴을 내밀었다. 출발 전에 선크림을 왜 바르지 않았을까 생각했다. 최근 아는 사람에게서 얼굴이 왜 이리 초췌하냐는 이야기를 들었다. 눈밑이 거뭇하고 나이 든 티가 난다는 말이었다. 안 그래도 올여름 선크림 없이 보낸 날이 많아서 뜨끔했다. 장년부, 여성부 선두들이 성큼성큼 지나갔다. 나와 비슷한 속도로 달리던 한 청년이 장년부 1등의 속도에 맞춰 50m쯤 달리더니 금방 제 속도로 돌아왔다.


4km

도로구간도 오르막과 내리막 구간이 있었다. 오르막에서는 보폭을 줄였다. 내리막에서는 보폭을 늘였다. 오르막에서는 앞질러 가던 사람을 내리막에서는 따라잡았다. 에너지가 덜 드는 구간에서 더 뛰고 더 드는 구간에서 덜 뛰어야 된다는 상식이 나만의 상식일 수 있었다. 마라톤 동호회에서 온 사람들은 옷을 맞춰 입어서 티가 났다. 구경꾼들이 간간이 그들에게 인사를 건넸다.


5km

1차 급수대를 지났다. 급수를 담당하는 사람이 네 명 있었다. 미리 컵에 물을 따라 놓지 않고 물 마시러 오면 물을 따랐다. 미리 깔아 놓지 않은 것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목이 마르지 않아 그냥 지나쳤다. 도로 구간이 끝나가고 있었다. 저 멀리서 사람들이 우측으로 꺾어 오르막 구간에 접어드는 모습이 보였다. 점점 나에게도 그 구간이 다가왔다. 이를 꽉 물었다.


6km

평소 차로 밖에 다녀보지 못한 오르막을 빠른 걸음과 진배없는 속도로 달리며 올랐다. 몇몇이 하는 것처럼 이 구간을 걸을까 생각했지만 포장된 도로에서는 걷지 않기로 했다. 오르막 끝 지점에서는 숨이 턱까지 찼다. 평지를 달리니 체력은 다시 채워졌다. 몇몇 여성분들이 천천히 달리는 나를 스쳐 지나갔다. 단련된 느낌이 없는  평범한 몸의 참가자들이었다. 


7km

본격 산악길로 접어들었다. 등산객들이 많았다. 오르막과 내리막이 계속 이어졌다. 걸었다가 뛰었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였다. 그룹을 벗어나 멀리 앞서가는 경우는 생기지 않았다. 속도가 비슷한 무리에는 여성분들도 몇 분 있었다. 그중 검정 타이즈와 레깅스를 입은 사람이 눈에 띄었다. 오르막을 잘 오르기에 따라잡길 포기했는데 내리막에서 속도를 내어 달리다 보면 다시 만났다.


8km

오르막을 걸어 오르는데도 다리에 힘이 풀렸다. 빨리 걷는 것은 고사하고 걷고라도 있는 것에 감사해야 했다. 허리를 굽히고 무릎에 손을 짚고 걸어도 편하지 않았다. 그렇게 에너지를 다 쓰고 오르막을 오르면 십여 걸음을 더 걸어야 뛸 에너지가 생겼다. 방구석에서 머리로 뛸 때는 누구나 용감하다. 실전에 참여해 보면 그것이 얼마나 덧없는 일인지 알게 된다. 급수대에서 스포츠 음료 한잔을 마시니 힘이 좀 생겼다.


9km

진행요원복을 입은 한 아주머니가 오르막이 끝나는 지점에서 힘내라고 외치고 있었다. 멀리서 들을 때는 이게 한국말인가 싶었다. 동남아시아에서 온 여성분 발음이었다. 가까이서 보니 한국분이었다. 조금만 더 힘내라며 앞사람과 하이파이브를 하였다. 나도 반사적으로 눈을 마주치고 손을 들어 살짝이 하이파이브를 했다. 응원이 한 발짝 한 발짝 옮기는데 큰 힘이 되어주었다.


10km

이미 시간은 출발한 지 1시간 15분이 넘어가고 있었다. 결승선이 다가오는 것이 느껴졌다. 저 멀리 운동장에서 둥둥거리는 음악소리가 들렸다. 뭘 먹지도 않았는데 끝이 다가온다는 기대감에 힘이 났다. 아직 오르막은 걸어 오르지만 내리막은 질주하였다. 아직 도착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모르는 아내로부터 전화가 왔다. 받을 수 없었다. 포식자가 되어 앞서가던 사람들을 하나씩 추월하는 재미에 빠져있었다. 


도착

마지막 내리막에서 결승선까지 전력질주를 하여 앞에서 뛰던 십여 명을 모두 제쳤다. 넷타임제라 의미는 없었다. 참여하는 달리기 대회마다 마지막 질주를 하는 습관이 발휘되었을 뿐이었다. 작년 하프마라톤 때처럼 정신이 아득해지거나 눈앞이 까매지는 현상은 생기지 않았다. 물한병과 간식주머니를 받아서 구석으로 갔다. 아내에게 전화로 도착했음을 알렸다. 핸드폰 문자로 기록을 확인하였다. 1시간 28분 23초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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