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CJbenitora Oct 19. 2024

이미 지고 시작하였다

하프마라톤을 2시간 안에 들어오는 방법

지난 6월부터 매일 외치는 긍정확언의 맨 처음 문장은 "나는 꾸준한 달리기로 체력을 키워 하프마라톤을 2시간 안에 완주했다."이다.


작년 가을부터 조깅을 평생 운동이라 생각하고 달렸지만 많이 달려도 한 달에 50km를 넘기는 수준이었다. 그러다 추워지면 거의 못 달리고 더워지면 한참을 쉬었다. 격일로 5km를 뛰는 것이 목표였지만 하루 2km만 넘겨 달려도 만족하곤 했다.


아직 목표한 1년은 한참 남았기에 간절함 없이 숙제처럼 확언을 외치고 있었다. 그래도 매 반기별 달리기 대회 2개씩 뛰기로 한 다짐은 숙제로 남아있었다. 지난봄에 10km 2번 뛰었듯 이번 가을에도 짧은 거리의 산악마라톤과 하프마라톤에 참가 신청을 했다.


2주 전에 있었던 산악마라톤은 절반은 걸어서 완주하였다. 체력은 바닥이었고 허벅지는 터져나가는 듯했다. 그 대회를 마치고 몸살 증상에 일주일을 그냥 보냈다. 그다음 일주일이라도 격일에 한 번은 뛰어야 했지만 새벽에 조깅을 안 할 핑계는 너무 많았다. 결국 이틀 전 저녁에 5km 한번 뛴 것이 전부였다. 준비 없이 참여하게 된 것이었다.


금요일 저녁에 뛰었더니 토요일 하루를 푹 쉬었는데도 몸은 평소의 컨디션을 회복하지 못했다. 일요일 아침이 되어 아침 7시에 미리 대회장에 나가서 몸을 풀었다. 같이 뛰기로 한 동생이 30분쯤 뒤에 나타났다. 아직 찌릿찌릿한 다리를 풀고 나서 가볍게 운동장 한 바퀴를 돌았다.


요란한 행사와 축사가 끝나고 8시 30분에 맞춰 하프선수들이 뛰기 시작했다. 이번 코스는 반환점이 총 5개가 되어서 선두 선수들이 얼마나 가고 있는지 볼 수 있었다. 길은 고저차가 거의 없어 오르막도 평지처럼 뛸 수 있었다. 첫 반환점에서 선두그룹이 돌아 나오고 두 번째 반환점에서 또 만났다. 선두그룹은 내가 세 번째 반환점으로 달리고 있을 때 이미 한참 전에 돌아서 나오고 있었다. 그리곤 다시 만날 수 없었다.


뛰면서 계속해서 언제 걸을까를 고민하고 있었다. 작년 첫 하프마라톤에서는 1분 걷고 9분 뛰기 작전으로 완주를 이뤄냈는데 이번에는 뭔가 차별화가 있어야 했다. 11km 지점에 있는 세 번째 반환점을 넘고 나면 걷는 것으로 마음속에서 미리 결정을 했다. 그리 힘들지는 않았는데 준비가 덜 되어 있다는 생각 때문에 몸은 자꾸 걷기를 원했다. 반환점을 돌고 약간의 오르막이 보이자 걷기를 시작했다. 1분만 걸을까 했는데 2분을 걸었다. 뒷목이 뻐근했고 허리도 풀리면서 자극이 왔다. 다시 뛰는 것이 겁이 났다.

'그냥 걸어서 완주할까?'


그러기에는 천천히라도 뛰는 사람들이 뒤에서 나를 앞서갔다. 뛰다 걷다를 반복하며 4번째 반환점까지 도착했다. 힘내라는 진행요원들의 말에 뛰다가 응원이 멀어지면 다시 걸었다. 뛰기 전날 이온음료를 한통을 마시라거나 아침에 충분히 스트레칭을 하라는 등의 조언대로 전부 준비했지만 연습부족을 상쇄할 만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작년 첫 하프 출전에는 겁이 나서 한 달 전부터 동네를 누비며 뛰었는데 그때가 지식은 없을지언정 훨씬 더 준비된 몸이었다.


어느새 시간은 2시간이 지나있었고 마지막 반환점이 보일 때부터는 걷지 않기로 마음을 먹었다. 아무리 힘들어도 걸을 수 없다고 몸에 경고를 하고 옆에서 누가 걷든 말든 입을 꽉 다물고 뛰었다. 절대 걸을 수 없다는 규칙을 세워두니까 몸은 그에 맞춰 반응하였다. 빨리 편해지는 방법은 빨리 도착하는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나와 같이 뛰는 그룹은 걷고 뛰기를 반복하는 그룹이고 다섯 번째 반환점을 돌고 나서 보이는 내 뒤에 따라오는 사람들은 완주만을 목표로 하는 사람들이었다.


마음을 다르게 먹지 않으면 끝까지 그들처럼 그리고 아까의 나처럼 달려야 하는 것이었다. 당장 쓰러질 듯 헉헉 거리며 출발했던 종합운동장으로 들어가는데 이미 하프 마라톤을 마치고 메달을 받아 나오는 사람들이 보였다. 부러운 감정과 함께 조금만 더 뛰면 나도 간식을 먹으며 편하게 앉아 지금을 추억처럼 여길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 피니시 라인까지 운동장 반바퀴가 남았다. 다시 한번 걷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지만 앞에 뛰는 사람들을 보며 달렸다. 곡선 주로를 넘으니 직선 주로 끝에 피니시 라인이 눈에 들어왔다. 끝이 보이니 몸에서 없던 힘이 생겼다. 대여섯 걸음 앞에서 뛰고 있던 커플을 제쳤다.

'조금만, 조금만 더'

속으로 계속 외치며 결승점을 통과하였다.


평소라면 조금 더 뛰다가 걸었겠지만 더 뛸 힘이 없었다. 바로 뜀을 걸음으로 바꾸며 생수부스에서 생수 한 병을 받아 순식간에 반 병을 마셔버렸다. 간식과 메달이 든 봉투를 받아 나오니 이미 20분 전에 도착해서 쉬고 있던 동생이 반겨주었다. 달리면서 어땠냐고 물었다. 들어보니 동생은 걷지 않았던 것만 나와 다르지 달리면서 든 생각은 나와 같았다. 점점 느려지는 속도, 끝이 보이지 않는 거리, 나를 제치며 앞서가는 사람들, 모든 게 동일했다. 그 상황에서는 체력의 유무가 성적을 좌우하는 것이었다. 2시간 3분 대의 동생과 2시간 24분 대의 나의 차이는 걸었냐 걷지 않았냐였다.


이번 시합엔 목표도 연습도 없었다. 의례히 접수한 것이고 시간만 보냈다. 끝나기 전에 이미 지고 시작하였다. 그나마 수확이라면 하프마라톤 2시간 이내 완주는 매달 누적 달리기 거리를 늘여서 한 번에 21KM를 달릴 수 있는 체력을 확보하느냐의 싸움이란 걸 알게 되었다는 점이었다.


이제 깨달음이 실행력이 되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내년 대회까지 체력 늘이기에 돌입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11.2km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