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12월 해운대 여행 2일 차
새벽에 깨었다. 어제 그리 일찍 잔 건 아니었지만 몸이 가벼웠다. 오늘 일정을 미루어보면 이른 아침에 뛰지 않으면 뛸시간이 없었다. 반팔에 장갑, 운동복바지를 입고 밖으로 나갔다. 동적스트레칭으로 몸을 풀어가며 길거리를 뛰었다.
어제 사람이 들어차 있던 시장은 모두 셧터가 내려져있었다. 몇몇 24시간 국밥집들만이 불이 켜진 채 손님을 맞이하고 있었다. 신호를 건너서 들어선 해운대 해변은 어둠 속에서도 활기가 있었다. 오늘은 40분 정도 회복 조깅을 하는 날이었다. 광장에서 웨스틴조선호텔 쪽으로 천천히 뛰었다. 사람들이 많지는 않지만 제법 산책을 하고 있었고 나 외에도 달리는 사람이 보였다. 호텔에 다가가니 모래사장 쪽으로 나있는 입구가 사람들로 분주했다. 1인용 간이텐트가 몇 개씩 있고 그 옆에는 전신수영복으로 환복하고 몸을 푸는 사람들이 있었다. 바다수영 동호회 분들이 새벽 수영을 준비하는 것이었다. 새벽 6시가 안 되어 여명도 없는 시간에 얼음장 같은 바닷물에 들어가려는 그들이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응원의 마음이 생겼다. 따지고 보면 지금 시간에 반팔 입고 조깅하러 나온 나도 새벽 운동을 안 하는 일반인들이 보기에는 이해가 되지 않을 것이었다.
호텔을 끼고돌아 동백섬 주차장에 들어섰다. 웨스틴조선호텔의 정문으로 올라가야 동백섬 입구가 나오는데 초행이라 그냥 쭉 직진을 한 것이었다. 끝이 막혀 있는 듯해서 사잇길 계단으로 올라가니 동백섬 메인 도로가 나왔다. 해변과는 달리 이곳에는 확실히 걷거나 뛰는 사람들이 많이 보였다. 빙 둘러 뛰어봐야 1km 정도의 짧은 거리라 한 바퀴 가볍게 돌고, 다음 바퀴는 해안에 좀 더 가까이 있는 둘레길 나무데크에서 뛰었다. 확실히 바다 가까이에서 뛰니 여행 와서 조깅하는 느낌이 났다. 그렇게 외곽으로 한 바퀴를 뛰고 다시 입구로 오니까 동백섬을 가로지르는 오르막길이 보였다. 신라시대 대학자인 최치원을 기리는 유적지로 조성된 곳으로 꼭대기에는 최치원 동상이 있었다. 꽤 가파른 오르막을 올라가자 동상이 있었고 그 앞에는 태극권 수련을 하는 일련의 아저씨 아주머니들이 있었다. 그들 주위를 한 바퀴 돌고 반대편으로 내려가니 아까 주차장에서 올라온 길이 보였다.
사람들에게 방해가 되지 않게 길가 끄트머리에 붙어서 역방향으로 잠시 달린 뒤에 입구 쪽으로 내려왔다. 아까 동백섬에 처음 발을 디딜 때와 달리 어둠이 많이 걷혔고 조깅하는 사람들의 수도 배는 늘었다. 해운대 광장으로 돌아오면서 보니 바다수영하던 분들도 수영을 끝내고 다시 올라오고 있었다. 해가 뜨기 직전이라 광장에는 일출을 보러 나온 사람들이 많이 모여있었다. 총 거리 7km를 미처 못 채우고는 멈춰 몸을 풀어주고 숙소로 향했다.
방에 들어왔더니 아이들이 깨어 있었다. 아내에게 산책 갔던 무용담을 얘기하자 아침 먹기 전에 다 같이 산책 나갔다가 오자고 했다. 씻지도 않고 애들을 외출복으로 갈아입혀서 다시 밖으로 나왔다. 아까는 반팔로 돌아다녔지만 이제는 산책하러 나온 것이라 제대로 옷을 갖춰 입었다. 둘째는 여전히 강아지와 같이 산책한 사람들이 보이면 그쪽으로 쫓아갔다. 강아지가 가버리면 비둘기를 쫓아갔다. 잘 유도해 가며 해운대 광장에 다시 서니 이미 한참 올라온 해가 보였고 모여있던 사람들은 뿔뿔이 흩어져서 각자 산책을 하고 있었다. 동백섬의 산책데크가 잘 꾸며져 있어서 걷기 좋다고 했더니 첫째와 아내는 그쪽을 향했다. 둘째는 엄마나 형아는 생각하지 않고 자기만의 놀이에 빠져있었다. 솔밭에 앉아 쉬고 있던 비둘기는 아이 덕에 날아서 도망가기 바빴다.
그 모습을 따라가며 보고 있다가 잠시 한눈판사이 소나무 숲에 들어간 아이가 갑자기 사라졌다. 분명히 좀 전까지 새를 쫓던 아이였는데 안보이자 마음이 바빠졌다. 우선 도로로 나가면 큰일이니 그쪽과 주차장 쪽을 살펴보았다. 이어 산책로로 나갔을 수도 있어 해변 쪽도 살펴보았는데 안보였다. 아이를 시야에서 놓친 장소에서 멀리 갈 수도 없어 큰소리로 아이의 이름을 부르며 찾았다. 1분이 1시간인 것 같은 느낌이었다. 아이 엄마에게 아이를 잃어버렸으니 빨리 와서 같이 찾자고 전화하려고 전화기를 꺼내는데 산책로 저 멀리에서 아까 강아지를 산책시키던 남자분이 아이손을 잡고 이리로 오고 있었다.
"아이가 다른 강아지 따라서 달려가고 있었어요. 아까 우리 강아지에게 인사하던 아이라서 부모님이 안보이시길래 여기까지 데려왔어요."
"감사합니다. 안 그래도 잠깐 눈을 돌린 새에 없어져서 한참을 찾았거든요."
은인이 따로 없었다.
아이를 두고 10m 이상 간격을 벌린 것을 자책하며 가슴을 쓸어내린 후 아이를 업고 동백섬으로 향했다. 아이는 아빠마음은 모른 채 그저 신이 난 표정이었다. 위치를 파악하기 위해 아내에게 전화를 했더니 첫째와 흔들 다리에서 놀고 있다고 했다. 아까 조깅할 때 지난 곳이라 장소를 알고 있어 바로 그쪽으로 갔다. 아내를 만나 아까 있었던 일을 얘기해 주고 앞으로는 둘째를 보는 사람은 아이 옆에서 5m 이상 떨어지지 말자는 다짐을 했다. 첫째와 둘째는 그사이에 떨어진 소나무 가지를 주워 들고 마법지팡이 놀이를 하고 있었다. 최치원이 새겼다는 해운대 석각을 보고 아까는 내려왔던 길로 최치원 동상이 있던 곳으로 올라갔다. 둘째는 보이는 솔방울을 다 주워서 품에 안았다. 다람쥐 밥 줘야 한다며 달래서 중간에 모아두게 했지만 또 올라가다 보면 솔방울을 한 아름 줍고 있었다. 다람쥐 밥을 곳곳에 몇 무더기씩 쌓고야 정상에 도착했다.
정상 곳곳에 적힌 최치원의 생애와 업적에 대한 글들을 읽으면서 당시 대제국인 당나라 안팎에서 유명한 대문장가로 이름 떨친 그가 자랑스러웠다. 아이들에게 우리의 중시조가 고운 최치원 선생님이라는 말을 해주었더니 첫째는 깜짝 놀랐다. 그리고는 다시 동생과 나뭇가지로 장난치는 평범한 아이로 돌아갔다. 반대편 길로 내려가는데 중간에 휘어진 소나무가 나오고 곳곳에 도토리들이 떨어져 있었다. 아이들은 도토리를 줍고 나무에 기어올라갔다. 1시간을 생각하고 온 산책이 2시간도 넘게 걸리고 있었다. 맛난 것을 사주겠다고 유혹하여 숙소로 돌아오다가 아침부터 문을 연 분식집을 보았다. 각자 원하는 게 달라서 첫째는 닭꼬치를 둘째는 핫도그를 사주었다. 그 자리에서 먹어치우고는 걸 보곤 숙소아래 편의점에서 컵라면과 주전부리를 더 사서 숙소로 들어갔다.
아이들을 씻기면서 같이 샤워하고 나와서 아내가 씻는 동안 컵라면 물을 받고 아침 먹을 준비를 다 해두었다. 나는 곧 점심 모임에 가면 식사를 할 것이라서 바로 나갈 준비를 했다. 아내도 준비가 끝나서 아이들을 앉혀두고 밥을 먹이는 것을 보고 숙소를 나섰다. 이제는 아내는 체크아웃을 하고 아이들을 데리고 키즈카페로 갈 것이었다. 나는 지하철 해운대 역을 향했다. 약속시간까지는 50분의 여유가 있었다. 동해남부선 동래역에 내려 온천천을 걸어 약속장소인 식당에 도착했더니 아슬아슬 11시 반인 약속시간을 맞췄다. 일행들과 만나 인사를 하고 식사를 한 뒤 주변 카페에 들러 한참을 얘기했다. 오후 4시가 다되어 헤어졌고 아내에게 전화를 했더니 곧 차를 몰고 나타났다. 아이들 둘 다 얼마나 놀았는지 한잠이 들어있었다. 부산으로 갈 때와는 다르게 집으로 오는 길은 막히지 않았고 이렇게 우리의 1박 2일 가족여행은 마무리되었다.
"아이들 놀린다고 고생했어요."
차를 몰고 나타난 와이프를 보고 처음 한 말이며 이번 여행을 대표하는 한마디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