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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복을 이기는 건 없다

by CJbenitora

둘째가 10개월이 되었다. 아이는 아침에 일어나면 강아지처럼 거실 책상에 앉아있는 아빠에게 기어 온다. 그 기척에 아빠가 새벽부터 하던 컴퓨터를 끈다. 아이가 아빠가 앉은 책상과 의자를 잡고 일어서서 아빠를 빤히 쳐다보면서 잡은 손을 놓는다. 그렇게 서있다가 아빠가 웃어주면 깔깔 거리며 바닥에 엉덩방아를 찧고 다시 아빠에게 기어 온다. 또 아빠를 잡고 일어서고 잡은 손을 놓고 그렇게 수차례를 하면서 아침시간을 보낸다.


어린이집에 다녀와서도 자기 전까지 한시도 가만히 있지 않는다. 이유식 먹는다고 아기의자에 앉아있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거실과 방을 오가며 관심 가는 물건을 만져보고 빨아본다고 부산하다. 일어서서 빨래 건조대 끝을 잡고 엉덩이를 들썩거린다. 무릎 높이 화장대에 있는 로션 통을 잡기 위해 일어선다. 로션 통을 잡고 이빨로 긁고 나면 다음은 소파 위에 둔 엄마 핸드폰을 잡기 위해 몇 번을 일어났다 넘어지기를 반복한다. 그럴 때마다 조금씩 일어서는 자세가 안정되고 속도와 정확도가 오른다. 며칠 전까진 아무것도 잡지 않고 서서 3초 서있더니 오늘은 30초도 더 서있다.

첫째는 줄넘기에 빠져있다. 최근 어린이집에서 주 3회 줄넘기 시간을 편성했다. 기본부터 가르치는 게 아니라 놀이시간에 하는 거라 줄넘기를 처음 잡아보는 아이들이 많았다. 우리 아이도 가끔씩 아빠 엄마가 줄넘기하는 걸 보기만 했었다. 벌써 몇 년 전에 자기 줄넘기를 사줬는데도 꺼내서 한 적이 없었다. 줄넘기를 처음 하고 온날 아이는 그동안 있어도 없는 것과 같던 줄넘기를 꺼내 달라고 했다. 오늘 줄넘기를 했다며 보여주는데 몸에 힘을 잔뜩 주고 엉성하게 한쪽 팔만 돌렸다. 한두 번 넘으면 줄이 발에 걸렸다. 아빠 엄마가 시범을 보이고 조언을 해줘도 자세는 개선되지 않았다.


"넌 줄 넘을 때 폼부터 바꿔야겠다"

"폼이 뭐야 아빠?"

"줄넘기 뛰는 자세를 폼이라고 하지! 아빠처럼 몸에 힘 풀고 바로 서서 사뿐하게 넘어야 오래 많이 하는 거야"


아이에게 폴짝폴짝 100개 정도 뛰는 모습을 보여줬더니 '아빠가 100개나 뛰다니?' 하는 표정으로 바라봤다.


"아빠처럼 제자리 기본 뛰기 100개 정도 하면 중수라고 할 수 있어"


어린아이라도 초보, 초수, 하수 등의 표현은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래서 중수라는 표현을 써서 일단 100개를 목표로 정해주었다. 잘해봐야 서너 개 뛰어넘는 게 전부인 아이에게는 한 달은 걸릴 거라 생각한 목표였다.


아이는 기본 뛰기가 잘 안 되니 줄을 돌리며 별의별 시도를 하다가 앞으로 뛰어가며 너댓번 넘었다. 그때부턴 제자리뛰기는 제쳐두고 마당을 뛰며 줄을 넘었다. 한두발에 걸리고 서너발에 걸리는 걸 보고 있으니 왠지 줄이 길어서 그런것 같았다. 줄을 줄여주었다. 아이의 실력 향상을 위해 부모로서 할 수 있는 것은 그 정도가 다였다. 줄넘기에 재미 붙여 계속 반복하여 실력을 늘리는 것은 아이가 해야 할 일이었다.


줄넘기 연습은 매일 계속되었다. 아침에 일어나면 해도 안 떴는데 줄넘기하러 마당에 나가자고 하였다. 하원하고도 저녁 먹기 전까지 줄을 넘고 저녁 먹고는 줄넘기 고수의 영상을 수십 번 되풀이해 보았다. 이런 모습에 3년 전 아이가 4살 때 엘리베이터에 꽂혀서 1년이 넘게 엘리베이터만 가지고 놀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때도 엘리베이터 나오는 영상만 보고 엘리베이터만 보면 타자고 하였다. 일부러 엘리베이터를 타러 공항을 가고 역을 가고 고층아파트를 오르내렸다.


기본 뛰기 서너번을 겨우 뛰던 아이는 아빠에게 자꾸 자기 뛰는 걸 보라더니 그 다음 날 10개를 해냈고 그 다음 날은 27개를 했다. 4일째 되는 날은 45개를 뛰었는데 이때부터는 줄넘기 폼이 자리 잡기 시작했다. 많이 뛰게 되니까 몸이 에너지를 적게 소모하는 자세로 자연스럽게 변하는 느낌이었다. 100번 보는 것보다 1번 하는 것이 나은 건 확실했다. 5일째 되던 주말엔 운동장에 가서 64개를 뛰더니 그날 저녁에 집에 와서는 102개를 뛰었다.


"아빠 이제 나 중수지?"

"그래, 대단하다. 며칠 전에는 10개도 못 뛰었잖아! 아빠는 진짜 놀랐다."


아이는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한 말투였고 아빠의 대답에 날듯이 기뻐했다. 월요일 등원할 때 어린이집 선생님께 지난주 아이의 줄넘기 발전사를 얘기하였다. 그걸 듣던 선생님이 "주완이 때문이라도 줄넘기 대회를 열 필요가 있겠네요." 라며 웃었다.


그날 아이가 집에 오더니 12월 9일에 줄넘기 대회를 한다고 했다. 그러고는 저녁 먹기 전에 줄넘기를 하며 마당을 폴짝폴짝 뛰어다녔다. 아이는 대회가 일주일 남은 지금 자기보다 잘하는 몇 명의 친구를 이기기 위해서가 아니라 순수하게 성장하는 재미로 줄넘기를 즐기고 있다.


낙수는 바위를 뚫고 한걸음이 천리길이 된다. 두 아이를 보면서 반복을 이기는 것은 없다는 것을 깨닫는다. 나도 반복할 것이 뭐가 있을지 12월에는 깊이 고민해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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