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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Jbenitora Apr 01. 2023

세상에 쉽게 볼일은 하나도 없다

 쪽파를 손질하다 검지를 베었다.


 손가락 첫마디와 둘째 마디 사이의 살점이 떨어지고 푹 패인 상처에는 천천히 피가 차올랐다.

흙과 제거된 파뿌리 사이에 떨어진 살점은 찾을 수 없었고 당황한 나는 상처를 빨며 욕실에서 흐르는 물에 손을 씻고 즉시 상처부위에 후시딘을 묻히고 굵은 밴드를 꺼내 상처를 봉했다.


 칼, 이 녀석은 고대로부터 있어왔으며 짐승과 사람의 목숨을 수도 없이 뺏을 정도로 위험한 녀석인데 너무 쉽게 보았다. 최근에 칼을 만지는 일이 적기도 했지만 날이 무뎌있다고 착각했다. 무엇보다 금속날이 주는 섬뜩함이 없어 자주 쓰는 날이 흰 세라믹 칼에 베였다는 점에서 충격이었다. 무딘 세라믹칼이라고 방심한 것이었다.


 어머니가 밭에서 직접 뽑아오신 쪽파의 뿌리를 잘라내고 흙을 씻어냈다. 시들하고 먹기 어려운 부위를 다듬었다. 옆에 가위도 있었는데 빨리 손질을 끝내겠다는 마음에 쓰지 않았다. 오후에 외근이 있었기 때문에 얼른 손질하고 준비를 해야 했다. 꽤 오랜 시간 했는데 손질한 양은 얼마되지 않았다. 아직 남은 양이 훨씬 더 많았다. 내일 할 것을 덜어두었다.


 '이 속도로는 안 되겠는데...'


 파뿌리들을 잡고 일도양단(一刀兩斷)을 했다. 파뿌리가 쑥쑥 잘려나갔다. 몇 번을 그러다 이 사달이 난 것이었다.


 밴드를 바르고 20분쯤 지나 피가 멎자 피를 닦고 다른 밴드로 다시 상처를 감쌌다. 마음이 안정되자 손질하던 파를 대충 씻어 냉장고에 넣고 못 다듬은 파들은 다시 포대에 담았다. 통증은 거의 없었지만 이렇게 응급조치만 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옷을 갈아입고 밖으로 나왔다.


 의사가 상처를 보고는 혀를 끌끌 찼다.


"이대로 집어버릴 수도 없고 살이 차오를 때까지 기다려야겠네요. 혹시 최근 10년 내에 파상풍 주사를 맞은 적이 있나요?"

"없는 것 같습니다."

"그럼 주사 한 대 맞으시고 상처를 소독하고 밴드로 감아드릴 테니 며칠 동안은 매일 들르세요."


의사의 말 한마디에 안심이 되었다. 시간이 베인 상처를 낫게 해 줄 일만 남은 것이었다.


 불현듯 '원숭이도 나무에서 떨어진다'는 속담이 생각났다. 까불다가 실수한다는 뜻의 이 속담이 다르게 다가왔다. 나무 타기 전문가인 원숭이도 삐끗해서 나무에서 떨어지는데 높은 곳에서 떨어지면 무척 아프다는 것이다. 거꾸로라도 떨어지면 반신불수나 사망에 이를 수도 있는 것이다. 다행히 별로 다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자신감이 많이 떨어진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을 하며 피식 웃었다.


'나는 원숭이도 아닌데 원숭이 인척 하다가 이런 일을 겪었으니 얼마나 오만하였던가'


 앞으로 한동안은 칼을 만질 때 장갑을 낄 생각을 했다. 도마를 사용하고 칼을 조심히 다룰 것이다.


 큰 사건들은 언제나 작은 일이라고 쉽게 보다가 생긴다. 하나를 하더라도 그것에 온전히 신경 쓰고 집중하여야 한다. 잘못되었을 때 그 일이 초래할 위험성을 미리 생각해둬야 한다는 것을 피를 보고서야 깨닫는다.


 세상에 쉽게 볼일은 하나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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