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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정은 Oct 23. 2021

육아-힘들지만 이왕 할꺼라면

내 인생 돌려도

육아를 하면서 편하게 밥을 먹어본 적이 없다.

아니 밥뿐 아니라 커피 한잔도 제대로 마셔본 적이 없었다.

결혼 전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게 커피였는데 지금은 커피를 마실 시간은 사치가 돼버렸다.

물만 끓어놓고 잊기 일쑤고 운 좋게 커피까지 타더라도 뒤늦게야 다 식은 커피를 원샷했다.

이렇게 시간이 없을까?

아이 세 명을 돌보느라 내 몸을 돌볼 시간 조차 없다.

끈적끈적한 땀 냄새와 질끈 묶은 머리는 내 하루를 어떻게 보냈는지 증명하는 흔적이다.

그나마 신랑이 정시 퇴근하는 날에는 제일 먼저 욕실에 들어가서 씻고 옷을 갈아입는다.

피로감을 조금이라도 줄이기 위해선 무조건 씻는 게 최고였다.

그것도 한 달에 두세 번 정도였다.

아이들 잘 때까지 씻지 못하는 날에는 내 불쾌지수도 상승했다.

여름에 에어컨을 틀어도 소용이 없었고, 나시를 입고 다녀도 내 땀 냄새는 진동했다.

그나마 아이들이 밥이라도 일찍 먹어주면 좋으련만, 반찬투정에 울기라도 한 날에는 내 입안에 밥을 넣는 건 있을 수 없었다.

늘 굶는 게 일상이 돼버린 나에게 어느 날 마트에서 식사 시간이라는 선식 가루가 눈에 띄었다.

이거라도 사서 물처럼 마시자..

이게 나의 유일한 식사시간을 줄일 수 있는 방법이다.

사실 배가 안고프면 굶기라도 하겠지만 배에서 꼬르륵 나는 소리는 매번 들렸다.

그렇게 선식을 물에 타서 마시니 포만감이 생겼다.

그런데 왠지 모를 슬픔이 밀려왔다.

이렇게 배를 채워야 하나...

친구가 자랑하듯 말하는 스테이크 집이 생각나서 그날 하루 종일 우울했다.

이렇게 먹고사는 게 힘든가?

나도 피자, 햄버거, 치킨 먹고 싶은데..

아이 셋을 키우며 이런 것조차 사치구나..

누군가의 반찬이 그리운 밤이었다.

엄마의 역할이 이런 건가?

내 인생 없이 오로지 가족에게 올인하며 살아야 하는 건가?

나도 한때는 잘 나가는 리즈 시절이 있었다.

응급실 간호사로 일하면서 의사의 고백을 받기도 했었다.

멋진 외제차를 타고 분위기 있는 곳에서 저녁을 먹기도 했고, 밤하늘의 별을 보며 스키를 타기도 했다.

그런 나의 시절과는 달리 지금은 열심히 독박 육아를 하면서 헐떡이는 내 모습만 보였다.

내 인생 이러려고 결혼했나?

다시 결혼 전으로 돌아갈 수 없나?

이런 생각이 들 때 아이들이 엄마, 오늘 유치원에서 편지 썼어.

읽어봐..

엄마 저를 잘 키워주셔서 감사해요.. 사랑해요..

내일이 어버이날이라서 쓴 편지였다.

갑자기 감동의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래, 나는 누가 뭐래도 세 아이의 엄마였지..

내가 엄마가 아니었다면 결코 느끼지 못했을 이 감정을..

아이는 엄마를 생각하며 쓴 편지를 고사리 같은 손으로 접어서 나에게 주었다.

그리고 종이로 만든 카네이션을 선물이라고 했다.

내 인생 지금은 아이를 위해 시간을 보내고 있지만 이 시간 또한 소중했구나..

그제야 나는 느꼈다.

힘든 내 인생,,,

아이들을 책임지고 지켜줘야 할 엄마라는 사실을..

그렇게 그날 나는 한 가지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힘들 때마다 기억하자..

나는 자랑스러운 엄마라는 걸..

내가 지켜야 할 가족이 있다는 걸...

비록 밥 먹을 시간도 목욕할 시간도 없지만 괜찮다고...

충분히 잘하고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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