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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정은 Feb 07. 2021

당신의 부모님은 안녕하십니까?

주말 아침, 모처럼 쉬는 토요일이다.

코로나로 밖의 출입이 자유롭지 못하다 보니 하루 일과가 집에서 이뤄진다.

오늘은 무엇을 하며 하루를 보낼까?

영화? 만들기? 요리? 아이들이 각기 다른 의견을 제시한다.

그 순간 전화 한 통이 울렸다.

언니의 다급한 목소리였다.

아버지가 쓰러 지셨다는데 지금 내가 가고 있거든.

119를 지금 불러야 하나, 내가 가서 상황을 보고 불러야 하나?

드디어 걱정하고 우려했던 일들이 벌어졌다.

아버지의 연세는 80세가 넘었고, 늘 이곳저곳 아프다고 했던 터라 걱정이었다.

1주일 전 통화를 하는데, 아버지의 힘없는 목소리에 어디 편찮으시죠?라고 묻자 아버지는 괜찮다. 괜찮다만 말하고 전화를 끊었다.

늘, 자식들에게 폐를 끼칠까 봐 아파도 안 아프다고 말하는 분이었다.

나는 얼른 119를 부르라고 다급하게 말했다.

내가 바로 옆에 살았더라면 당장 달려갔겠지만, 4시간 거리의 부산에 있다 보니 전화로 말하는 거 외엔 방법이 없었다.

사실 아버지가 쓰러지기 몇 주전에 아버지는 병원에서 바이러스 간염이라고 했다며 약을 받아왔다.

그때 당시 나는 담당의에게 전화해서 아버지의 상태를 자세히 설명 들었었다.

간수치도 높고, 열도 있다면서 바이러스 간염이 의심된다고  했다.

약을 1달 정도 먹어야 한다고 해서 별 의심 없이 전화를 끊었다.

그 후 1주일이 지났는데, 아버지는 119로 실려갈 만큼 상태가 좋지 않았다.

오진인가? 포커스를 잘못 맞춘 건가? 별생각이 들었다.

언니에게 당장 119를 부르고, 빨리 집으로 가라고 말했다.

옆에 있는 엄마는 아버지를 부축하느라 전화를 받지도 못했다.

그렇게 나는 아이들과의 약속을 저버리고 점퍼 하나 걸치고 터미널로 뛰어갔다.

그때의 초조함이란 겪어보지 않는 사람은 모를 것이다.

집에서 입는 낡은 반팔티에 헐렁한 바지, 그리고 겨울 파카를 걸치고 미친 듯 뛰었다.

터미널에서 광주 가는 표를 끊고 1시간을 기다리는데, 정신이 멍해졌다.

만약, 아버지가 돌아가시면 어떡하지?

혼자 남은 어머니는?

사실 어머님은 나 어렸을 적부터 병원에서 사셨을 정도로 많이 아프셨다.

지금도 늘 누워계시며 겨우 집에서 생활하는 정도다.

그러다 보니 모든 집안일은 아버지가 다 하셨다.

그런 아버지가 지금 쓰러지셨단다.

한평생 고생만 하신 아버지.

어릴 적에도, 언니의 병환으로 병원비 1억을 갚을 때도, 우리 대학 보낼 때까지

아버지는 한평생 고생만 하셨다.

그런 아버지에게 효도도 하지 못했는데..

갑자기 터미널 앞 의자에 앉아서 펑펑 울기 시작했다.

지나가는 사람은 추운 의자에서 아줌마가 우는 모습이 안쓰러웠는지 힐끗 쳐다보았다.

그런 시선조차 신경이 쓰이질 않았다.

그렇게 버스가 도착하고 의자에 앉는 순간 또다시 눈물이 났다.

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간 어릴 적 아픈 기억들, 아버지라는 가장으로서의 외로움, 아파도 걱정할까 봐 말도 안 하는 강인함, 이런 생각에 가슴이 쓰려왔다.

11월 14일 오전 10시의 고속버스의 창밖의 세상은 참 냉혹했다.

아픈 기억들만 떠올라 참고 참았던 눈물이 폭포수처럼 쏟아졌다.

내 옆의 젊은 군복을 입은 총각은 유튜브를 보며 웃음을 참아내느라 안절부절이다.

나는 울음을 참기 위해 창밖을 보며 연신 휴지로 눈물만 닦는다.

누군가에게는 4시간의 즐거운 시간이었고, 나에게 4시간은 아픔의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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