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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정은 Feb 07. 2021

당신은 의료인 아닙니까?

4시간을 달려 광주 터미널에 도착했다.

화장실을 가지 못해서 방광은 터질 듯했고, 점퍼 하나 걸친 탓에 온몸에 한기가 돌았지만 참았다.

택시를 타기 위해 긴 줄을 서는데 언니의 전화가 걸려왔다.

아버지 상태가 안 좋아..

코로나 검사 결과 나와야 CT를 찍을 수 있대

응급환자임에도 코로나로 인해 적극적인 검사가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걸 짐작했다.

그렇게 택시를 기다리면서 지금의 내 사정을 얘기하면 양보를 해줄까?

삼삼 오오 모여 웃고 떠드는 학생들, 서로 껴안고 있는 연인들, 추위를 막아주는 아이의 엄마들 사이에서 나는 안절부절못했다.

그렇게 20분의 시간이 흐르고 드디어 택시에 올랐다.

**병원 응급실로 가주세요.

버스 안에서 울었던 탓에 눈이 잘 떠지지 않았고, 눈의 피로감이 몰려왔다.

하필 오늘 광주에서 가장 큰 대학병원에서 코로나가 터진 바람에 응급실이 폐쇄돼서 원하는 병원에 갈 수도 없었다.

119 대원도 어디로 가야 하냐 고민하다 아버지 상태를 보고 그나마 2번째로 큰 대학병원으로 들어왔다고 했다.

그렇게 **병원 응급실로 가는 길은 숨 막히게 초조했다.

제발,, 제발,,

살아있기를..

상태가 나빠지지 않기를...

코로나로 보호자 출입제한이라 언니 혼자 아버지 옆을 지키고 있었다.

오빠네도 세종에서 부랴부랴 왔지만 병원 앞에서 들어가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핸드폰의 충전도 못하고 온터라 배터리는 3프로밖에 남지 않았다.

택시 기사에게 다급하게 핸드폰 충전 좀 부탁드려도 될까요?

택시기사는 자신의 핸드폰을 빼며 얼른 주세요..라고 말했다.

그분은 나의 다급한 마음을 대충 짐작한 듯했다.

그렇게 ** 응급실에 도착한 나는 언니에게 전화를 걸었다.

손 소독, 주소를 남기고, 열 체크 후 보호자 출입증을 언니에게 받았다.

보호자 출입증은 한 개만 발급이 되었고, 보호자도 한 명만 들어갈 수 있었다.

언니와 교대 후 나는 재빨리 아버지 옆에 갈 수 있었다.

아버지는 격리실에서 땀범벅에 신음소리를 내며 아픔을 호소했다.

가슴엔 EKG 모니터링을 달고 포도당 주사를 맞으며 온몸으로 고통을 표현했다.

코로나 검사 결과가 나올 때까지 격리실에 있어야 한다고 했다.

나는 응급실 중앙에서 컴퓨터 화면을 보고 있는 의사들을 보며 저기요..

저기요.. 를 외쳤다.

다급하게 선생님,, 선생님,, 선생님,, 애타게 불렀다.

컴퓨터를 보는 중앙에 있는 의사는 나를 보며 입으로만 말씀하세요..

눈은 모니터를 보고, 귀챦다듯 말하시라고요..라고 했다.

저희 아버지 너무 힘들어하는데,, 무엇 때문에 그러죠?

피검사 결과는 나왔나요?

몇 초의 적막함이 흐른 후 그 의사의 대답은 이랬다.

가서 기다리세요..

네?

저기, 제가요... 간호사거든요..

아버지가 너무 힘들어하는데요.

피검사 결과는 어떤가요?

다시 한번 묻자 의사는 나를 한번 쳐다보더니, 지금 수치가 다 안 좋아요.

신부전에 간부전, 그리고 CK-MB 수치도 높고요.

상황이 안 좋습니다.

왜 그런 거죠?

일주일 전에 바이러스 간염이라고 약도 드시고 있었는데..

갑자기 뭐가 문제일까요?

의사는 짜증 난다는 표정으로 기다려요. 기다리라고요..

코로나 결과 나오면 CT 찍을 거예요. 짜증 나는 말투였다.

근데 신부전이 있어서 CT 찍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네요.

성의 없는 답변뿐이었다.

나 역시도 대학병원 응급실에서 일한 적이 있다.

정말 힘들고 고된 시간이었다.

일도 힘들었지만, 무엇보다 화장실 갈 시간조차 없었다.

방광염을 달고 약을 먹으며 살았다.

식사시간도 넘기기 일쑤여서 늘 속 쓰림을 달고 지냈다.

어느 날 갑상선염까지 와서 병원을 그만두게 되었다.

그런 경험이 있기에 나는 누구보다도 응급실에서 일하는 의료인들의 고생을 잘 안다.

그러나 그날, 나는 그 의사의 말투, 행동을 보며 참을 수가 없었다.

지금 내가 어떤 심정인지 너희들이 알아?

나는 그 의료인을 보며 당신 의료인 아니야?

를 외쳤다.

아무리 바빠도 이렇게 애절하게 물어보는데 답변이 고작 기다리라는 말이냐?

순간 주위의 시선이 나를 향했다.

지금, 그게 의료인으로서 할 말입니까?

상황이 안 좋은 건 알지만, 이렇게 성의 없이 말하는 게 의료인의 자세입니까?

그날 그분은 나에게 내가 신이냐? 를 외치며 지금 상황이 안 보이냐?

라는 말을 했다.

밖에 119 몇 대가 더 대기 상태였고, 병원 안으로 들어오지 못한 환자들은 자연스레 죽음을 받아들여야만 했다.

그날 누군가는 죽음을, 누군가는 지푸라기라도 잡을 수 있었다.

운이 없다고 생각한 아버지 역시도 어쩌면 병원 격리실이라도 들어온 게 다행이다 싶은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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