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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정은 Feb 08. 2021

인성은 바라지도 않습니다.


격리실에서 아버지의 고통을 지켜보면서 머릿속은 온갖 생각들이 스쳐 지나갔다.

분명 1주 전 동네 병원에서 바이러스 간염이라고 했는데..

그때 정밀 검사를 했더라면..

그때 내가 모시고 갔더라면..

그때 큰 병원을 갔더라면..

온갖 후회를 해보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지금은 패혈성 쇼크로 고열과 장기기능부전에 빠졌다.

당신이 의료인입니까?

라는 질문에 그 의사가 나를 쏘아붙이며 내가 신이냐?라는 대답은 그날 응급실 내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그렇게 코로나 검사 결과 음성임이 나오자, 그때부터 항생제, 각종 처치가 들어갔다.

물론 내가 소리를 지르고 나서 처치가 신속하게 이루어졌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전 8시에 응급실에 들어왔는데 내가 도착한 오후 2시까지 수액만 달고 있었기 때문이다.

열이 나면 해열제를 염증이 있으면 항생제를 뭔가 적절한 조치가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만 코로나 검사 결과만 지켜봐야 한다는 대답뿐이었다.

코로나로 응급환자를 기다리게 한 게 화가 났지만, 당시 상황에서는 어쩔 수 없었다는 걸 잘 안다.

다만, 성의 없이 기다리세요.. 귀찮다는 듯 말하는 그 의료인의 태도에 화가 났다.

의료인이 아무렇게나 내뱉는 말에 보호자인 내 가슴은 피멍이 들었다.

해열제와 항생제가 투여된 후 고통스럽게 신음 소리를 내던 아버지는 조금은 안정이 되었다.

다만 혈압이 급속하게 떨어져 승압제를 달아야만 했다.

예정된 ct 검사는 혈압하강으로 2시간이 연기되었다.

초조하던 응급실에서의 상황은 그야말로 전쟁통이었다.

소리를 지르며 여기 환자 못 받아요..

다른 곳으로 모시고 가요.. 라며 119 대원에게 소리 지르는 의사도 보였다.

나는 12시간 동안 응급실에서 머무르면서 많은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한때 나 역시도  응급실에서 일하다 보면 교통사고 환자가 10명씩 들어올때면  응급실은 피 바닥이 되었다.

심폐소생술실에는 죽어가는 사람을 살리겠다는 의료진의 땀방울로 범벅이다.

옆에서 실신하는 보호자를 끌고 나가야 했고, 한 명의 환자라도 살리겠다며 뛰어다녔던 시절이었다.

초조해하는 보호자에게 조금이나마 힘이 돼주려고 했고, 골든 타임을 놓치지 않기 위해 119 대원의 무전기를 받으면 대기하고 있었다.

그때의 나는 그게 당연한 의료인의 자세라 생각했다.

지금은 의료인이 아닌 보호자의 입장에 서보니 나는 미쳐 보이지 않았던 걸 볼 수 있었다.

보호자의 마음을 읽어 달라고 하진 않겠습니다.

의료인에게 인성 같은 건 바라지도 않겠습니다.

그 역시 사람임을 저도 잘 압니다.

그들도 지금 무척 힘들다는 걸 잘 압니다.

그들 역시 점심도 못 먹고 물 한 모금 마시지 못하는 걸 잘 압니다.

다만 보호자는 의료인만을 바라본다는 걸 알았으면 좋겠습니다.

지금은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습니다.

보호자는 오늘 한 끼도 먹지 못했습니다.

보호자는 지금 의료인에게 달려가 애원하고 싶습니다.

보호자는 의료인에게 환자의 상태를 듣고 싶습니다.

보호자 역시 사람입니다.

보호자는 의료인들에게 최선을 바랄 뿐입니다.

인성 같은 건 바라지도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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