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ight Direction / Ways n Communication
잠시 쉬는 시간을 갖게 되어서 그동안 HR이라는 일에 대해 생각의 흐름대로 이야기하는 시간을 다시 가져보려 합니다. 늘 그렇듯 생각이 멈추는 순간 이야기도 멈출 수 있습니다. HR에 대한 제 머릿속을 정리하는 과정이기도 합니다. 그 다섯 번째 이야기 주제는 HR 제도입니다.
어릴 적, 그러니까 제가 주니어 시절에 HR제도를 만드는 것의 목적은 최종 의사결정권을 가진 분의 OK 사인을 받는 것이었습니다. 의사결정권을 가진 그분이 OK를 하고 '수고했어' 혹은 '좋아'라는 반응을 하면 그 제도는 이로서 완성된 것으로 간주되었습니다. 제도를 실행할 땐 그냥 '그분이 결정했어'라고 말하기만 하면 되었습니다. 그렇게 경험들을 마주하면서 무언가 허전함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어떤 제도를 시행했을 때 현장에서 들리는 이야기들이 긍정이나 공감보다 부정적인 반응들이 더 많았기 때문입니다. 대부분 싫지만 어쩔 수 없이 한다는 반응들이었지요. 제가 느낀 허전함은 이렇습니다. 제도가 실제 '성공'이라는 단어로 이어질 수 있으려면 그 제도의 실행을 통해 기업이 확보하고자 하는 상태를 달성해야 하는데 그 달성을 위해서는 실행이라는 과정이 필요하고 그 실행의 주체는 HR프랙티셔너가 아니라 그 제도를 활용하는 구성원분들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라는 질문이죠. 만일 그렇다면 HR프랙티셔너로서 우리들은 경영진에 대한 보고라는 소통 과정 이외에 구성원과의 소통 과정이 필요할 겁니다. 제도 institution에 대한 관심의 시작점입니다.
제도에 대한 정의는 매우 다양합니다. 제도경제학자인 North는 인간이 상호작용을 하는 데 있어 작용하는 모든 형태의 제약들을 제도라 정의하고 제도는 인간이 질서를 창조하는 기본도구로서 인간의 상호작용에서 불확실성을 줄여 주며 게임의 규칙으로서 역할을 한다고 말합니다. 이는 제도경제론자들의 입장으로 인간의 행동을 규제하는 규칙들을 제도의 주된 요소로 이해합니다. 반면 Scott이나 Meyer 같은 제도 사회학자들은 공유된 의미체계를 제도로 정의합니다. 이들에게 제도는 독특한 행위자와 정당한 활동 루틴을 정의해 주는 표현적, 구성적, 규범적 규칙과 규제 메커니즘을 포함하는 상징과 행위의 체계라 할 수 있습니다.
바라보는 관점의 차이는 있지만 이들이 제도에 대해 공통으로 이야기하고 있는 건 제도가 구성원의 인식과 행위에 영향을 주어 이들이 공통의 모습을 나타나게 한다는 점일 겁니다. 이를 우리는 동형화 isomophism이라 말합니다. 제도가 효력을 미치는 물리적 경계로서 조직에 속한 구성원의 행위에 영향을 줌을 말합니다.
이는 HR프랙티셔너로서 우리들이 제도에 초점을 맞출 필요가 있음을 이야기합니다. 우리가 제도를 어떻게 설계하고 운영하며 그 과정에서 소통을 어떻게 하는가가 그 제도가 본래의 목적 달성을 위한 실행 과정에서 구성원의 행동에 영향을 줄 수 있음을 말합니다. 이런 관점에서 HR제도는 일종의 플랫폼 platform의 기능을 수행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기업 구성원이 일을 할 수 있는 환경이 되겠지요. 개인적으로 인사팀의 역할을 설명할 때 '기업과 구성원이 성장하는 환경을 구축하는 역할' 혹은 'Employee Environment'라고 표현하기도 하는 이유입니다.
앞서 HR구성요소를 이야기하며 각 구성요소들이 만나는 지점을 HR의 업무들로 표기를 했었습니다. 그리고 그 영역에 공통으로 'communication'이라는 단어를 넣었습니다. 여기에서 소통은 연결성의 다른 표현입니다. 제도를 통해 경영진과 구성원을 연결하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제도를 설계하는 HR프랙티셔너는 그 제도를 왜 하는지를 다른 구성원분들에게 설명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냥 좋은 거야 라거나 다른 스타트업들이 하는 거니까가 아니라 그 제도가 우리 기업에서 꼭 필요한 이유를 설명할 수 있어야 합니다. 조금 달리 보면 제도를 만드는 건 HR프랙티셔너와 경영자이지만 그 제도를 소비함으로써 제도를 완성하는 건 구성원들입니다. 제도의 완성 관점에서 보면 구성원은 또 다른 의미의 고객이 될 수 있습니다. 아무리 좋은 기술과 생각도 고객을 설득하지 못하면 우리 기업의 문화로 자리잡기 어려울 수 있습니다.
만일 제도가 구성원분들에게 제대로 전달되어 그 본래의 목적을 발현하고 있다면 어떨까요? OKR을 하는 목적이 잘 전달되어 구성원분들이 스스로 그 필요성은 인식하고 각자 관련된 행동들을 보이고 있다면요? 일주 월별로 강제적인 시행을 하지 않아도 수시로 상호 피드백을 하고 정보를 공유하고 있다면요? 이런 상태에서 우리가 굳이 일 단위, 주 단위, 월 단위로 시간을 잡아서 OKR미팅을 하라고 해야 할까요? 굳이 스프린트 미팅이나 부스팅 미팅 등의 용어들이 필요할까요? 어쩌면 굳이 필요 없지 않을까요? 이미 본래의 목적을 달성하고 있으니까요. 그래서 이야기합니다. 제도를 시행하는 궁극적인 목적은 그 제도가 더 이상 필요 없는 상태를 만드는 것이라고 말이죠. 그리고 이러한 궁극적인 상태를 만드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건 제도를 시행하는 데 있어 올바른 목표 right direction과 올바른 방법론 right ways, 그리고 소통 communication이라 말합니다.
제도를 설계하고 운영하는 HR프랙티셔너로서 우리들은 우리가 만든 제도가 고객으로서 구성원에게 이 제도가 정말 좋은 제도임을 어필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를 위해 우리는 우리가 만든 제도가 올바른 목표와 방법론을 제시하고 있음에 대해 스스로 확신을 가질 수 있어야 하며(이를 본 글에서는'진정성'이라 표현합니다) 그 진정성을 구성원에게 전달(소통, communication)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를 통해 우리는 연결자로서 HR프랙티셔너의 역할을 보다 온전히 수행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인사팀이 없고 그래서 인사평가 등이 제대로 운영된 적이 없는 기업에서 평가제도를 설정하고 구성원분들을 대상으로 설명회를 하고 제도를 운영했던 경험이 있습니다. 처음 보는 양식과 다소 생소한 용어들, 인사평가제도라는 다소 딱딱하고 어쩌면 일부는 다소 부정적인 인식을 가지고 있을 수 있는 제도를 운영하면서 항상 했던 말이 있습니다. "궁금한 게 있으시면 언제든 오셔서 말씀 주세요."입니다. 실제 누군가가 왔을 때 제대로 응대하는 경험을 만들어가면서 평가제도와 관련된 소통을 늘리는 과정이었습니다. 해당 기업을 나온 후 시간이 지나 한 분으로부터 연락을 받았습니다. 안부 문자였는데 제가 했었던 인사평가가 그립다는 이야기였습니다. 물론 제가 했던 인사평가제도 역시 어려우셨으리라 생각합니다. 전공책이라 불릴 정도로 다소 원칙적인 제도를 운영해왔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그런 문자를 받았던 건 제가 했던 소통의 노력이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누구든 궁금하면 언제든 와서 물어볼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었다고 할까요.
제도라는 단어는 참 어렵습니다. 제도가 올바른 방향성을 가지고 올바른 방법론을 제시할 수 있다면 어쩌면 우리가 만들고자 하는 바람직한 조직의 모습을 만들 수 있겠지만 HR프랙티셔너 역시 제한된 합리성을 가진 사람의 하나이기에 우리가 만드는 제도는 언제나 조금은 불완전한 모습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 부족함을 채우는 과정에서 중요한 것이 있다면 '소통'일 겁니다. 그리고 이 소통이 보다 잘 이루어지기 위해서 우리는 제도를 설계함에 있어 올바른 방향성과 올바른 방법론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합니다.
조금 바꾸어 말하면 올바른 방향성과 올바른 방법론을 제시하고 이를 다른 이들에게 온전히 전달할 수 있는 역량을 우리들 HR프랙티셔너들이 갖추어야 할 역량이라 이야기할 수 있겠지요.
지금까지 일종의 개론으로 HR이 무엇인지 이야기하고 우리가 다루어야 할 대상으로서 HR의 구성요소들, 그리고 HR프랙티셔너로서 우리들과, HR프랙티셔너가 활용할 수 있는 도구로서 제도에 대한 이야기를 조금씩 살펴보았습니다. 다음 글부터는 각론을 조금 이야기해보려 합니다. 첫 번 째 각론의 주제는 다들 짐작하시는 채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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