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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4. 피드백은 속도가 아니다

by Opellie
『작품 속 인물 및 사건에 대한 안내』

이 이야기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 장소, 단체, 사건은 작가의 상상력에 기반한 허구입니다. 현실 속의 실제 인물이나 사건과 유사하더라도 이는 순전히 우연의 일치이며, 어떠한 의도나 사실과의 연관도 없음을 밝힙니다.


SCENE 1 - 디자인 팀 회의실 / 오전 11시

(카메라가 조용한 회의실 천장에서 내려오며 시작된다. 태블릿 위에 슬랙 창이 열려 있고, 화면 속에 짧은 메시지가 새로 도착한다. 초점은 천천히 메시지로 이동한다.)


Slack from 장민혁

[가을 / 이번 B안 시안] 속도 개선 필요. 반복적 패턴 있음. 디벨롭감 부족.


(카메라가 천천히 ‘서가을’로 이동. 고개를 살짝 기울여 화면을 바라보던 그녀는 눈썹을 찌푸리지도, 한숨도 쉬지 않고, 그저 조용히 노트북을 닫는다. 정적 속에 노트북 커버가 탁 소리를 낸다.)


서가을(속내, 조용한 내레이션)

피드백이라기보단… 공지 같았다.
이번에도 나는 "충분히 빨라야 한다"는 말을 다른 방식으로 들은 것 같다.


(그녀의 손엔 접힌 스케치북과 자필 UX 흐름 노트가 있다.

낙서처럼 휘갈긴 단어들: ‘직관’, ‘노인 사용자’, ‘보조 화면 진입 속도’.

정성스럽지만 주눅이 든 흔적이 보인다.)


동료 1 (옆자리에서 살짝 쳐다보며 속삭이듯)

가을님, 오늘 또 혼났어요? 리더님 메시지 좀… 거칠죠.


서가을 (작게 웃지만 눈은 모니터를 향한다)

혼난 건 아닌데... 그냥, 단정 지어지는 기분이에요.

속도보다, 제가 느린 사람 같다는 기분.


*(그녀는 다시 노트북을 켜고, 피드백 창을 띄운다. 천천히 메시지 내용을 복사해 개인 노트에 붙여 넣는다.

제목은 **“받은 말, 남긴 마음”*으로 저장된다.)


서가을(속내)

매번 이런 메시지를 보관하는 내가 이상한 건가.
그럼에도 뭔가 놓치지 않으려는 마지막 끈 같아서.


(카메라는 그녀의 화면 안, 저장된 수많은 피드백 목록을 클로즈업한다.
전부 비슷한 단어들로 가득하다: 속도, 디벨롭, 즉시성.)


SCENE 2 - 인사팀 회의실 / 오후 1시

카메라는 회의실 유리문 너머로 빛이 스며드는 장면에서 시작한다. 테이블 위엔 상시 피드백 제도의 정기 리뷰 보고서, 노란 형광펜으로 밑줄 그어진 문서들, 아이패드와 종이 노트가 뒤섞여 있다.)


한도윤 (페이지를 넘기며)

이번 분기 피드백 열람 응답률이 72%.
좋은 숫자처럼 보이지만, 이상하지 않아요?


정지우

... 응답률은 높은데, 수정 요청이나 추가 피드백 제안은 거의 없어요.
사람들이 그냥 ‘받고 끝내는 피드백’에 적응한 거예요. 대화가 아니라 공지처럼요.


이윤호 (화면 공유하며)

이번에 가장 빈도가 높은 피드백 키워드는 ‘속도’, ‘즉시성’, ‘결정력’.
문제는 그 단어가 구체적인 행동과 연결되지 않고, 거의 자동화된 말로 쓰인다는 거죠.


정지우 (작은 한숨을 쉬며)

디자인팀 가을 님도 그 피드백을 받았어요.
“속도 개선 필요. 디벨롭감 부족.” 그 외엔 아무 설명도 없었고요.
그런데… 알고 보니 그녀는 사용성 개선을 위한 전처리 과정을 혼자서 따로 진행 중이었어요.
말하자면, 속도보다 밀도를 선택한 건데, 그게 반영되지 않은 거죠.


한도윤

흔한 일이죠. 피드백은 정보가 아니라 태도입니다.
전달하는 사람의 시선이 좁으면, 받는 사람의 성장은 멈춰요.
그런 피드백은 그냥 ‘판단’이지, 성장을 위한 말이 아니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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