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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pellie Dec 03. 2017

일상 돌아보기(2)

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상 아는 것이 그리 많지 않은 우리 일상에 대하여

1.
신호등이 보내는 싸인을 인식하고 횡단보도의 끝자락에 섰다. 포수가 직구를 요구했는데 투수가 OK 싸인을 보내고는 변화구를 던지면 빠지는 공을 잡는 포수는 화들짝 놀랄지도 모른다. 신호등도 그랬을 지도 모른다. 빨강색 신호를 보낸 그에게 '알고있음'을 시전해 놓고는 불쑥 횡단보도를 건너는 누군가를 보면서 말이다. 적어도 난 신호등에게 그런 당황스러움을 주지 않아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매일 아침 같은 시간에 자신을 향해 오는 어떤 아이만큼은 그가 보내는 신호를 인식하고 그 신호에 맞게 움직여줄 거라는 믿음, 이건 일종의 신뢰에 대한 이슈다. 그 상대방이 신호등이건 사람이건. 


2.
같은 시간 같은 번호에서 지하철을 타다 보면 매일 같이 보게 되는 사람들이 생긴다. 아침마다 만나니 얼굴을 모를 리 없건만 그렇다고 서로 인사 한 번 한 적 없는 그런 사이. 그(그녀)의 이름을 알지 못하니 부를 수도 없고 부를 수 없으니 그(그녀)가 나에게 의미로 다가오지 못하는 건 당연한 일일까. 그러면서도 가끔 한참동안 아침에 보이지 않으면 그가 궁금해질 때가 있다.
3.
나는 명자나무입니다. 
아파트 화단의 한 켠에 팻말이 말한다. 매일 오가며 보던 화단 속 나무의 이름이 '명자'라는 걸 오늘 아침에야 알게 된 내 둔함과, 매일 같이 나에게 이야기하고 있었음에도 이제서야 눈치 챈 것에 대한 미안함을 전한다. 세상 살다보면 자신의 목소리를 강하게 이야기하는 사람을 만나곤 한다. 사실상 많은 경우 그 목소리들이 좀 더 많이 반영되는 것도 현실이다. 하지만 그 현실 속에서 살아온 나는 믿는 게 하나 있다. 자신의 소리를 내는 1%의 사람이 아닌 묵묵히 자신의 일을 하고 있는 99%의 사람이 더 가치있는 세상이 되리라는 것.
4.
사회에 나와 지금의 일을 하면서 책을 보기 시작했다. 그리 많이 본다고는 할 수 없지만 한 달에 2~3권은 보려고 노력을 한다. 책을 보는 모습을 보고 내 책상에 쌓여있는 책을 보면서 누군가 말한다. 책을 많이 보시니 아는 것도 많겠다고. 그럴 때면 혹시나 오해를 없애기 위해 난 이렇게 이야기를 한다. 
'모르는 게 많아서 책을 봐야 합니다' 라고
그런데 여기에는 헤어나올 수 없는 함정이 하나 있다. 책을 보면 볼수록 내가 무언가를 알았다는 것보다 내가 모르는 게 더 많다는 사실을 더 정확하게 알게 된다는 점이다.
5.
누군가 보는 것을 내가 볼 수 없음으로 인하여, 
내가 보는 것을 누군가 볼 수 없음으로 인하여,
우리의 대화는 늘 평행선이다. 
누군가 보는 것을 내가 볼 수 있다면,
내가 보는 것을 누군가 볼 수 있다면,
어쩌면 우리, 한 발 혹은 두 발만큼 더 가까워질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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