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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pellie Sep 14. 2016

기다림/여유

기다림/여유가 느껴지는 추석명절을 기대하며

신문기사를 보다가 장애인의 버스 탈 권리에 대한 글을 봅니다. 글을 보다가 문득 검은 사막이라는 온라인 게임의 한 장면이 떠올랐습니다. 모 지역의 끊어진 다리를 가운데에 놓고 두 NPC가 서 있습니다. 서로 손으로 가리키며 큰 소리를 내고 있죠. 그래서 찾아가서 NPC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이렇게 말하죠.

저기 저 반대편에 서 있는 사람이 나보고 화를 내고 손가락질을 한다고.

서로 이야기를 들을 수 없는 두 사람은 애초에 서로의 이야기를 들을 생각이 없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서로에게 화를 내고 요구를 하죠.


프라하라는 도시에 가서 트램을 탔을 때 일입니다. 정류장에 트램이 서고 휠체어를 탄 한 분이 버스 앞에 있었습니다. 트램을 운전하시던 분이 작은 장비 막대를 하나 들고 트램 입구로 와서 바닥의 뚜껑을 열고 발판을 놓고 휠체어를 탄 분이 올라서고 다시 발판을 빼서 바닥에 넣고 뚜껑을 닫고 그리고 트램은 다시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버스에 탄 사람들도 휠체어를 탄 사람도 당연한 듯 그렇게 바라보고 있습니다.


이 이야기에서는 그리 어렵지 않지만 서로 간의 작은 기다림이 두 사람을 만나게 합니다. 어느 한쪽을 위한 완벽한 무언가를 만들지 않더라도 기사님의 수고와 승객의 기다림, 휠체어 탄 분의 자연스러움이 그냥 그대로 어우러집니다. 몇 년이 지나도 잊혀지지 않는 소중한 기억입니다.


대학시절 자원활동을 다닌 적이 있습니다. 장애 우분들의 봄 소풍 지원을 나가기도 했죠. 그때 느낌은 그랬습니다. 그냥 같은 사람들이라고. 손수 음식을 해와서 우리들에게 건네던 분들을 아직 기억합니다.


누가 옳고 누가 그르다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이건 그렇게 이야기할 수 없는 주제죠. 사회에 나와 11년 가까이 쉬지 않고 왔던 요즘의 '나'에 대해 이런 생각을 하곤 합니다. 사람에게서 '여유'가 사라졌다고. 그래서 일부러 '여유'를 가지려고 생각하고 행동하지만 마음속에 남은 '느낌'은 여전히 '여유'가 부족하기만 합니다.


 서로가 서로에게 요구를 하고 그 요구가 하나의 합의점으로 가기 위해서 필요한 건

트램 속 승객과 트램을 타려고 하는 휠체어를 탄 승객이 보여준 기다림과 여유가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합니다.

이런 말을 하는 저도 조금 더 노력을 해야겠네요. 생각이 현실로 조금 더 다가갈 수 있도록.


추석입니다. 아침 마트를 오가는 길에서 보이는 장거리를 보면서 그래도 추석은 추석이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한 편으로는 다행이라는 생각도 하구요. 모든 분들이 여유를 가질 수 있는 명절 연휴가 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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