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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pellie Jul 25. 2019

잔소리와 피드백(+부제)

누구나 할 수 있는 것 vs. 누구나 할 수 없는 것 

동료분들과 이야기를 하다가 '잔소리와 피드백' 이라는 두 단어가 나왔습니다. 버릇처럼 질문을 던집니다.

"잔소리와 피드백의 차이는 무엇일까요?"


잠시 동안의 침묵이 흐르고 다시 서로의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어떤 결론을 내리지는 못했지만 우리들이 암묵적으로 느꼈던 건 잔소리와 피드백이 적어도 외형적으로는 큰 차이가 없는 듯 보였다는 점일 듯 합니다. 외형상 차이가 없어보임에도 우리들 개개인이 갖는 느낌의 차이는 상당히 많이 다르다는 점 말이죠. 


'잔소리와 피드백' 이라는 두 단어를 머리 속 어딘가에 둔 채 퇴근길에 올랐습니다. 책상을 정리하다 눈에 띈 몽테뉴의 수상록이 가방에 있었고 지하철에 올라 목차를 보고는 마음 내키는 페이지를 펼쳐 읽기 시작합니다. 사실 무언가 답이 안나올 때 하는 방법이긴 한데 이렇게 하면 딱히 답이나 생각을 찾으러 책을 펼친 것이 아님에도 생각의 전개에 도움이 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우리 정신의 훈련으로 가장 자연스럽고도 효과가 있는 것은 내 생각으로는 사람과의 대화다. 사람과 이야기하는 것은 우리 인생의 어느 다른 행도보다도 기분좋은 일이라고 본다. 
몽테뉴 수상록, 문예출판사, p146

문장을 읽으며 다음의 생각을 이어갑니다. 

대화를 한다는 것과 말을 하다는 것의 차이
관찰을 하는 것과 보는(보이는) 것의 차이

이어서 어디선가 봤던 어느 기업의 면접 질문과 관련된 이야기를 떠올립니다.

길 가에 아이가 울고 있습니다. 어떻게 하시겠어요?

정답이란 없겠지만 기억을 더듬어보면 이 질문에 두 가지 답변이 예시로 있었던 듯 합니다. 하나는 경찰(?)등의 구조요원을 먼저 부르겠다는 대답이었고 다른 하나는 가서 아이를 먼저 달랜다 라는 답변이었지요. 이 두 답변 모두 충분히 그럴 수 있고 그렇게 해야 하는 상황임이기에 틀리고 맞음을 이야기할 수는 없겠지만 어쩌면 잔소리와 피드백의 차이가 여기에 있는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합니다. 


잔소리는 어쩌면 그 자체로는 옳은 말일 수 있습니다. 혹자는 좋은 의도를 가지고 말을 한다고 주장하기도 하죠. 하지만 그것이 옳은 말이고 좋은 의도를 가지고 있음에 대한 판단을 함에 있어 상대방의 현재 상황이라는 요소를 포함하지 못했습니다. 경제학에서 사람은 '합리적인 존재'라고 말을 하지만 HR을 하는 사람 입장에서 사람에게 '감정'은 생각보다 놀라운 힘을 발휘하기도 함을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119를 부른다'는 답은 AI도 가능하지만 '위로하고 달래준다'는 AI가 할 수 없는 영역이겠죠. 119를 부르는 판단에는 상대방의 감정을 고려할 필요가 없지만 위로하고 달래는 건 상대방의 감정을 고려해야만 가능한 것임을 말합니다. 심지어 우리는 상대방이 옳은 말을 하고 있음을 인지하면서도 그 말을 듣기 싫어하는 경우를 경험하기도 하니 말입니다.


말을 하는 건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다만 대화를 하는 건 상대방을 이해하고 존중할 때 가능합니다. 대화는 일방적인 것이 아닌 상호작용이기에 몽테뉴의 말처럼 '우리 정신의 훈련으로 가장 자연스럽고도 효과가 있는 것'이 될 수 있습니다. 피드백이 되겠죠. 


보이는 것을 보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관찰을 하는 것은 관찰의 대상이 되는 대상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바라보아야 가능합니다. '관찰'에 대한 이야기를 소개할 때 항상 소개하는 이야기는 홈즈 시리즈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셜록이 베이커 가의 계단의 수에 대해 왓슨에게 물어봅니다. 왓슨은 대답을 못하죠. 매일 같이 걸어 오르 내리던 계단의 갯수를 말이죠. 사실 우리들도 그렇습니다. 우리가 매일 스쳐 지나는 무언가에 대해 관심을 갖지 않으면 그냥 스쳐 지나는 것일 뿐이죠. 보이는 것에서 관찰을 하기 위해 우리에게 필요한 건 상대방의 입장을 바라보는 일일 겁니다. 상대방에게 관심을 주는 일 말이죠. 


제가 지나온 시간 중에 어느 분은 스스로를 경청과 피드백을 잘 하는 사람이라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 이야기를 듣는 우리들은 그 분에 대해 우리들의 말을 듣지 않는 사람으로 이해하고 있었지요. 누가 잘못했다고 할 수도 없고 누가 잘못했는가는 사실 큰 의미가 없습니다. 문제해결에 도움이 되지도 않을 뿐더러 잔소리와 피드백이란 결국 상호작용인 까닭입니다. 외형적인 도구는 다룰 수 있었지만 사람을 이해하는 것은 하지 못했던 예가 아닐까 싶습니다. 


결국 우리에겐 누군가 우리에게 '잔소리'를 해도 그것이 '잔소리가 아닌 것', 즉 '피드백'으로 들릴 수 있게 해줄 수 있는 누군가가 필요합니다. 우리가 정말 좋아하는 사람들, 우리가 신뢰하는 사람들 말이죠. 잔소리는 배우거나 경험이 쌓이면서 누구나 할 수 있지만 피드백은 오랜 시간 동안 우리가 의도적으로 만들어 온 무언가를 갖추었을 때 비로소 가능한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공감이란 머리가 아닌 마음으로 하는 것이라는 말로 글을 마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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