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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pellie Aug 01. 2019

우리가 사용하는 단어에 대하여

나는 정말 알고 있는걸까 라는 자문을 하며

책을 보고 있습니다. 일반적인(?)책이라면 다 읽고 나름의 책 이야기를 남겨보겠지만 이번에 산 책 두 권은 책을 받아본 순간 외칩니다. "아직 학기가 시작하지도 않았는데 왜 대학교재를 샀을까?"라고 말이죠. 그래서 책 이야기보다는 순간 순간 느끼는 것들을 하나씩 이야기로 풀어보려 합니다.

읽고 있는 책 정보는 아래와 같습니다. 

도서명: 철학적 분석은 어떻게 하는가? 
저   자: 존 호스퍼스 지음
출판사: 서광사
사실상 우리는 "슬라이스"의 사전적 의미, 즉 "클럽의 앞면이 공의 정면을 비껴 안쪽으로 끌어당긴 결과, (오른손잡이의 경우) 공이 오른쪽으로 휘어서 날아가게 치는 것"이라는 것을 전혀 알지 못한 채 수년간 골프를 치기도 한다.
- 철학적 분석은 어떻게 하는가? P65, 존 호스퍼스, 서광사

대학 졸업 이후 오랜만에 만난 친구는 졸업 후 일하면서 틈틈히 다양한 분야의 공부를 하고 있었습니다. 학교 때부터 워낙 머리가 좋은 친구이기도 했지만 전혀 다른 전공분야를 공부한다는 게 참 신기했지요. 그 친구가 공부하던 분야 중 하나에는 한국어가 있었습니다. 그 친구는 말합니다.

 "우리 말이 이렇게 어려운 지 몰랐어." 

몇 십 년을 매일 사용했음에도 사실 우리가 모른 채 사용하는 것들이 많았음을 의미합니다. 


실제 우리들의 삶 속에서 위 책에서의 '슬라이스'와 마찮가지로 그 의미를 잘 모른 채 남들이 사용하니까 혹은 자주 듣다보니 익숙해져서 등의 이유들로 무심코 사용하는 단어들이 생각보다 많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어릴 적부터 상급자가 전하는 정답에 익숙했던 우리들에게 사실 "그런데 슬라이스가 뭔가요?" 내지 "왜 이번에는 슬라이스가 아니라 훅이 났다 라고 말을 하죠?" 와 같은 되물음을 하는 연습이 잘 안되어 있기도 하고, 한편으로 우리 자신이 가지고 있는 '모름'을 솔직히 드러내는 것에 대한 불편함 등으로 인해 그냥 조용히 웃으며 지나가는 경우도 있을 겁니다. 그리고 간혹 우리도 잘 모르지만 상대방이 잘 모르는 단어를 사용함으로써 우리 자신의 우월함이나 무언가를 뽐내는 경우도 있을 겁니다. 물론 HR분야도 예외는 아니겠지요. 


제가 HR을 하면서 나름 열심히 공부한다며 여기 저기 쫒아다니던 시기에 어느 모임에서 저보다 훨씬 많은 경험과 사고와 지식을 갖추신 당시의 어느 부장님은 스터디에 모인 우리들에게 이런 이야기를 하셨어요. 

"HR을 하지 않는 사람들에게까지는 알아야 한다고 강요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HR담당자라면 HR에 대한 기본적인 개념들을 알고 있어야 한다."

 이 이야기가 나왔을 때 우리가 마주하고 있었던 건 '직위' '직급' '직군' '직책' 등의 단어들 이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솔직히 책을 볼 땐 고개를 끄덕이다가도 실무를 하면서 자꾸 그 경계를 넘나들고 있는 아이들이기도 합니다. 글을 쓰다가 다시 책을 뒤적거리기 시작합니다. 

직위(position)란 과업 수행에 있어 직원 개인의 의무나 책임을 포함한 직책상의 지위나 분담을 뜻하는 것 (중략) 직급이란 직무의 책임 수준 정도에 따라 직무나 직원들을 분류해 놓은 하나의 단위 ~ 직급은 연봉이나 월급지급의 기준이 되기도 한다. p43 / 인적자원관리 / 이춘우 / 무역경영사

순간 뜨끔했습니다. 지금 제가 HR실무를 하면서 이 단어의 개념을 제대로 활용하고 있는가? 라는 질문에 살짝 부끄러운 마음이 고개를 들었습니다. 


몇 번 이야기했던 KPI라는 개념 역시 이런 맥락으로 볼 수 있습니다. 진단이 아닌 판단을 위한 도구로 사용하면서 본래 KPI가 무엇인가에 대한 고민없이 판단도구로서 활용했다고 할까요. 그러고 보면 참 부끄러운 일들이 많습니다. 2008년에 처음 만난 MBO와 KPI를 놓고 그 전까지는 이론이나 누군가가 만들어 놓은 장표들을 통해서 간접적으로만 익혀오면서 '알고 있어'를 외치다가 정작 작성하고 가이드를 줘야 하는 상황에서는 제 자신도 어떻게 해야 하는가에 대해 스스로 확신을 갖지 못했던 경험들처럼 말이죠. 


몇 년 전에 인사시스템을 만들기 위한 사전 준비 단계에서 일종의 논쟁(?)이 벌어진 적이 있습니다. 하나의 시스템을 만들기 위해서 우선 각 사들이 서로 다른 의미로 사용하고 있던 같은 단어의 '현재상태'를 1단어 1개념으로 정리하는 작업, 나름 인사마스터 표준화 작업이라 불렀던 작업을 하는 과정에서 였지요. 예를 들어 A사는 직위를 '호칭'의 개념으로 사용하고 있었고 B사는 직위를 '직급'의 개념으로 사용하고 있었던 식입니다. 그 단어의 개념이 제대로 사용되고 있는지 여부에 관계없이 이미 각자에 익숙해진 단어가 맞음을 주장하는 각 담당자분들과 1:1로 면담하고 조정하는 과정을 진행하면서 일종의 절충안(?)이 나왔던 경험이었습니다.


『이제부터 이 낱말을 이 의미로 사용할 텐데. 이렇게 새로운 의미를 규정하는 것은 명확성 때문이야.p43』

아마도 제가 글에서 무언가를 이야기할 때 개념을 종종 찾는 이유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저 역시나 삶 속에서 위에서 언급한 '슬라이스'와 같은 형태로 사용하고 있는 또 다른 무언가가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에서 자유롭기는 어려우리라 생각합니다. 


『"시간"을 어떻게 정의할 수 있을까?p65』라는 질문에 매 순간 시간 속에 사는 존재임에도 어쩌면 그 정의를 내리지 못할 수도 있겠지만 "시간"이 무엇일까? 에 대해서 그리고 비단 '시간' 뿐 아니라 그 자리에 다른 단어들을 넣은 질문에 대해서 좀 더 돌아볼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철학적분석은어떻게하는가? #우리가사용하는말중우리가정말제대로아는말은얼마나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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